3월 17일 새벽예배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 까 두려워하고 (히 12:15)
녹취자: 이한슬
몇 절에 걸쳐서 계속 두려워하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라 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앞에 나온 그 격려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징계 받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또 그렇다고 해서 징계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모든 것들을 경고와 위로로 동시에 받아들이면서 그러면서 실제적으로 두려워해야 될 것이 있다라고 서술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첫째는 두 가지를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보고 두려워하라 입니다. 그래서 은혜에 이른다라고 하는 것은 쉽게 이야기 하면은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붙잡혀서 믿음생활 해 나아가는 그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거기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그리고 거기로부터 끊어지는 것 그런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에서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사는 그 신앙생활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가 주의하여 보고 두려워하라입니다. 요즘 은혜안에 사는 것이 예외적입니다. ‘누가 은혜를 받았대, 누가 요새 신앙에 그렇게 열심을 내내, 아 정말 감사한 일이구나’. 그런데 그것은 매우 특별한 것이고, 대부분 은혜에서 미끄러져서 부패한 상태에서 사는 것이 보편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매우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어느 한사람이 은혜에서 물러가 뒤로 부패하는 그것이 그 사람 개인의 문제일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잘 섬기고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최고의 비결은 자기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은혜로부터 물러나서 부패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는 이신 예수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커다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가졌으니 우리가 은혜를 받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이미 받은 은혜를 하나님 앞에서 잘 보전하는 것도 새롭게 은혜를 받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예전에 은혜를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은혜에서 미끄러진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미끄러진 사람들, 미끄러진 사람들을 보면서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미끄러진 것에 대해서도 두려워하고 너희들이 그들처럼 미끄러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도 두려워하고 그래서 신앙의 세계에서는 ‘이젠 됐다, 다 이루었다 온전히 붙잡았다’ 그런건 없다는 것입니다. 항상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온전히 이르기를 힘쓰고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이미 붙잡았다 함도 아니라 그런 자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만약에 촛불을 켜 들고 밖으로 나아가서 그 촛불을 켜진 채로 일정 거리를 들고 와서 옮긴다고 할 것 같으면 그냥 들고 달려 뛰면 몇걸음도 안가서 꺼집니다. 아마 손으로 그 불꽃을 가리고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리고 걸음도 살살 걸으면서 옮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이미 이루었다 함도 아니오 이미 붙잡았다 함도 아니라 이런 자세를 가지고 우리들이 매일 매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헤벌쭉하고 열고 방심하면은 그러면 이전에 은혜를 이루었다한 사람도 즉시 미끌어져서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신앙생활의 은혜의 원리입니다.
두번째는 쓴 뿌리가 날 것을 주의해라입니다. 쓴 뿌리라고 하는 것은 은혜에서 멀어진 정도가 아니라 은혜에서 멀어진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쓴 뿌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뭐 사도가 그런 것을 언급하여 구원과 관련시켜서 쓴뿌리들이 구원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 그런 것을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쓴 뿌리라고 이야기 할 때는 무엇이냐 하면은 사람들이 은혜가 떨어지면 악해지고 또 마음이 굳어지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면 이렇게 쉽게 돌아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쓴 뿌리의 사람들은 깊이 그 악이 베고 마음이 극도로 강퍅해져서 웬만한 은혜에도 쉽게 돌아오지 않는 본질상 아주 깊이 악에 빠진 본성적인 죄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거듭나고 나서도 그런 상태가 될 수 있고 또는 아예 처음부터 거듭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상태일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뿌리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은 쉽게 뽑히지 않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그런 것 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뭐가 마음에 잘 안듭니다. 그래서 휙 그 교회를 떠나 보내거나 아니면 신앙생활을 그만둬버리는 사람들을 쓴 뿌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뿌리는 계속 박혀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교회에 계속 눌러 붙어 앉아서 그 쓴 뿌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그 교회에 있으면서 쓴 뿌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쓴 뿌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식물이라도 제때 비가 내리고 그다음에 토양이 좋은 그런 것에서 자라나는 식물이 있고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이 다릅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이 선인장같은 것도 널따란 이파리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시로 변했다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다릅니다. 각자 자기의 환경에 훌륭하게 적응을 합니다. 그러니까 쓴 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주 은혜를 받는 사람들은 악한 부패성이 남아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런 쓴 뿌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러면서 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악이 베어서 그래서 어떻게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그런 깊은 뿌리박힌 악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 쓴 뿌리라는 그 표현 자체는 뿌리는 죽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뿌리라는 것 자체는 싹뚝하고 잘라서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영향력이 행사되어서 다시 싹이 나고 그렇지 않습니까? 쓴 뿌리가 그런 것입니다.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굉장히 위험하고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너무 불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최고의 재앙은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굉장히 교회에 있어서는 치명적입니다. 큰 건물 없고 뭔가 부족한 것이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역사해서 사람들이 변화될라 치면 그러면 교회는 계속해서 악한사람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부패해서 뒤로 물러가지만 내일은 은혜를 받고, 오늘까지도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 모레는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고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긴 세월이 흘러서 사람들이 이제 저 사람은 변화되지 않으려나보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가 살아 역사하는 사람은 변화됩니다. 그것이 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말하자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쓴 뿌리를 두려워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것은 오염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더럽힐까 두려워하라 자신만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이렇게 보면은 교제 같은 것, 교제 같은 것들이 참 신기합니다. 은혜가 다 떨어져서 고갈된 사람이 은혜가 충만한 성도들과 함께 사귀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은혜가 사람이 고갈되고 마음이 굳어지면 악에 빠진 사람하고 교제가 쉽게 이루어집니다. 참 신기합니다. 사실은 그렇게 되지 말고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이 마음이 굳어지고 은혜로부터 멀어지면 은혜를 많이 받은 성도들, 마음이 온유하고 말씀에 공급을 풍부히 받는 그런 성도들과 함께 교제를 해야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은혜로부터 멀어지거나 하면 꼭 시험에 드는 교인들과 교제를 하고 그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마음이 굳어지고 나면은 이런 쓴 뿌리와 같은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자신 속에 은혜가 충분히 유지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과 더불어 교제해도 첫째는 사리 정확한 판단이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뭐냐하면 혹시 동의되는 바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은혜가 있어서 그러한 은혜가 되지 않는 대화나 생각들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혜 안에서 소화시키는, 영향을 받지 않는, 쉽게 이야기 하면은 죄와 악한 것들에 대한 저항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판단력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나면 그러면은 그 쓴 뿌리와 같은 사람들과 교제를 통해서 밀려들어올 때 저항할 수가 없습니다. 아주 쉽게 마음이 부패해지고 함께 쓴 뿌리가 되는것입니다. 이런 것은 굉장히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리고 옳지 않은 일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주의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심하면서 살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의 악이나 유혹 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교제도 역시 조심하고 주의하고 사려 깊어야 합니다. 사람을 가려야 한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자신이 은혜 안이 있지 아니하면 이렇게 쓴 뿌리와 같은 교인들을 만나서 도미노와 같은 현상을 일으키면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를 하는 목사들에게는 가장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간에 생사를 걸고 그리고 결국은 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동료들이나 후배들을 만나면 제가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숨을 걸고 말씀을 전하고 생명을 걸고 교회의 하나님의 은혜 부어주시는 그 샘이 막히지 않도록 매달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몸부림치지 않는 것이 잠시는 편하지만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은혜가 떨어지고 성도들이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나면은 부메랑이 되어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부메랑 아십니까? 옛날에 인디언이 썼다는 휙 던지면 짐승이나 이런 것을 못 맞히면 그게 정확하게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신이 그렇게 크게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마음 아픈,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샘이 막혀서 모든 사람들이 그 은혜로부터 멀어져서 기갈하는 가운데 고통하는 것 보다는 샘이 막히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그것이 훨씬 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곡창지대이고, 우리 한 30년 전에 보면은 전라도 지방에 크게 가뭄이 들어가지고 30년도 넘었습니다. 35년이나 40년. 서울로 대거 사람들이 올라오고 하던거 여러분 기억나십니까? 성남이 그렇게 해서 생긴 도시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곡창지대이고 곡식을 심기만 하면 그렇게 곡식이 잘 자라고 생쌀이 생산이 되고 그럽니다. 그렇게 잘 살았기 때문에 전라도에 음식이 그렇게 발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비가 안와가지고 가뭄이 들면 그러면 그 땅이 기름진 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땅이 너른것도 소용이 없고 애써서 곡식을 심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하나님 앞에 은혜를 많이 받고 능력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가고 또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현해 감에 있어서 그 모든 자원이 우리 안에서 공급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을 통해서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 우리가 은혜에 이르지 못 하였는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별일이 없이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되고 자신이 은혜에 계속 넘치고 있는가 그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수시로 마음을 쏟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래서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아주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