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새벽예배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히 12 : 23)
녹취자 : 김용재
여기에서 쭉 하늘에 속한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하늘에 교회를 이루고 있는 명단이 나옵니다. 제일먼저 천만 천사, 그리고 장자들의 총회. 장자들의 총회는 구원 받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유업을 받을 자들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낮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이게 우리들이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서 부활의 날에 완전히 영화된 상태 하에서 들어가게 될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들어가게 될 최종적인 나라이지만 그렇지만 예수님께 구원을 받고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도 이미 우리 시민권이 거기 있습니다. 그리고 또 동시에 우리가 영적으로도 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및 거기에 있는 교회와 천만 천사들과 이 모든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의 일원이 되어서 이미 벌써 우리가 그 속으로 이미 우리들이 속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께 소속돼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순간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접붙임바 된 교회의 지체가 되지 않습니까? 그 교회의 지체가 무엇으로 이루어집니까? 예수그리스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와 접붙여진 다른 모든 지체들 거기에 다시 접붙여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홀로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께 접붙여지고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를 갖는다고 할 때에 그것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1:1의 관계지만 그렇게 구원받은 후에 우리는 반드시 접붙여져서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백성들은 좁게 보면 예수그리스도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그러나 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저 과거로부터 시작을 해서 미래에 구원받은 백성들까지 모두 포함하는 우주적인 교회입니다. 그리고 또 거기에 그 하늘나라에는 천사들과 함께 한단 말입니다. 그러한 사실들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어떻게 믿음에서 미끄러져서 배교할 수 있겠는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 그릇 식물을 위해서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잠깐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서 신앙을 팔고 그리고 배교할 때에 받게 될 두려움과 결국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항상 근신함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그 큰 사랑과 은혜를 받았지만 그러나 결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그를 붙들어 주셔야 되는데 하나님은 또한 자기를 붙드는 사람들 속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이야기하는 견인의 교리라고 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를 하나님이 끝가지 붙들어 주신다는 교리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끝까지 주님을 붙들며 살아감으로써 그가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하는 성도 자신이 견인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이 구원.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축복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 홀로 하나님 앞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그리고 아벨의 피도 소리치는 힘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가인보고 네 아우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피가 소리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지은 돌이킬 수 없는 큰 죄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가중되었습니다. 결국은 그 피들이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예수그리스도의 피. 그 분을 믿는가 하다가 돌이켜 서서 배교의 길을 걸어가고 동기 자체가 목숨을 부지하고 한 그릇 식물을 얻기 위한 동기였다고 한다면 그 피가 소리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의로운 한 사람의 피도 그렇게 소리치는 힘이 커서 피 흘린 자를 정죄했다고 한다면 또한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위해 흘리신 피야 얼마나 더 힘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오히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배교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진보를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항상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구도 나는 이미 다 도달했다. 나는 이미 다 이뤘다. 충분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매 순간마다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지만 그러나 이 큰 죄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믿음에 위대한 증인들 중에 한 사람으로 주님의 나라에 기록되는 대신에 한 그릇 식물을 위해서 장자의 명분을 팔았던 에서와 같은 인간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가 있다. 이런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참된 믿음을 가진 신자는 이런 실패를 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고 거짓된 신자는 거짓된 안정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어제의 은혜는 어제의 신앙생활을 하기에 충분했고 오늘을 위해서는 오늘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