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새벽예배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 13:12-13 )
녹취자 : 김용재
예수님께서 고난당한 것을 우리에게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써 당신 자신이 직접 대제사장이 되어서 당신의 몸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용서받게 하지 않고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매달려 고난을 받으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화목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제는 하나님과 맺었던 적대감과 거리감을 모두 해소하고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그런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는데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이유는 먼 훗날 예수님 때문에 구원 얻고 그런 것뿐만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적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을 본받고 그래서 주님을 섬기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면 우리에게는 항상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이 살아있는 것은 덤으로 산 것이라는 고백이 신자에게 항상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그 죽음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믿을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그러나 그 죽음이 현실화 되어서 그래서 아 내가 진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수시로 느끼면서 살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계속해서 반복되어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어떻게 일어나느냐면 이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신자의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고난이 많을 것입니다. 시련이 옵니다. 특별히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는데 너무 힘들고 어려운 고통이 밀려옵니다. 그걸 보면서 사실은 아주 쓰고 고통스러운 순간들 아닙니까? 그걸 보면서 아 내가 죽음의 순간을 보는구나! 예수님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과연 그 죽음이 오늘날 나에게 이렇게 실제로 나타나는 구나! 그렇게 참여하면서 예수님이 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기리는 사람들에게는 또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기쁨도 맛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인생의 날들을 살아가다 보면 진짜 폭풍우 흑암 속에서와 같이 그렇게 고통스럽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믿음을 따라 살려고 하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고난을 많이 겪으면 그래서 그 죽음을 많이 맛보면 어떤 마음이 드느냐면 아니 이 죄 많은 이 세상이 내 집이 아니구나! 진짜 내가 이제 떠나든지 여기 머물든지 내가 정말 주님과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고난을 잘 감당하면 그 속에서 하나님이 넘치는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예수와 함께 살아나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것이 부활을 현재적으로 체험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수님과 점점더 연합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고난이 올 때 이 고난이 누가 잘못해서 나한테 주는 고난이다. 재수가 없다. 그냥 고통스럽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고 고난이 올 때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이냐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겠는가! 로마서 8장에서 사도가 이야기 했듯이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우리가 굳게 믿고 그리고 내가 이제 예수그리스도와 전혀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믿음으로 이것을 감당하면 지금 예수와 함께 죽는 이 죽음의 경험이 잠시 후에 맛보게 될 예수와 함께 다시 사는 그 부활의 기쁨과는 비교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장차 먼 미래에 나타날 영화의 상태에서의 아름다운 기쁨과는 별도로 오늘 살면서 예수와 함께 흐느끼는 자들에게 예수와 함께 베푸시는 위로의 은혜, 예수와 함께 고통하며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해 베푸시는 예수부활의 현재적인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면 은혜가 필요합니다. 믿음뿐만 아니라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그냥 고통은 고통일 뿐이고 그냥 즐거움은 즐거움일 뿐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동물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동물들도 좋은 것과 싫은 것을 구별 하지 않습니까? 좋으면 좋아하고 싫으면 아파하는 것이 동물들도 나타내는 반응입니다. 그런데 은혜가 있으면 그것들을 달리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앞에 끊임없이 고난을 당하며 죽는 것 같은 고통이 있어도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사랑이 있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 안에 역사하면 그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참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에서 깊어져 갑니다. 그러면은 고난이 닥쳐와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과 은혜를 가지고 예수의 죽음을 경험 할 때 그 때 그 예수님의 죽음이 진짜 하나님께 이 우리와 같은 이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버림을 받으신 생애를 사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프신 생애였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기꺼이 생애를 사신 것입니다. 우리를 주님 앞에서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위한 능욕을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 지고 그리고 영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사도가 예수님이 그렇게 죽으셨으니까 그 은혜로 우리들이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예수의 능욕을 우리가 지고 영문 밖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의 능욕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지신 그 능욕을 우리가 다시 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로 지신 예수님의 능욕을 우리가 짊어질 수도 없거니와 또 짊어진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효과를 가져다주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여기서 얘기하는 능욕이라는 것은 뭐라고 하느냐면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 예수그리스도께서 지신 그 능욕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 넓은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능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한 능욕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그 능욕을 진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세상 사람들과 화목하기 위헤서 지으신 짊어지신 그 원초적인 능욕 말고 우리들이 예수님을 본받아서 고난을 당하면 그들이 예수님이 이루신 그 화목케 하는 구원의 은혜에 적용될 수 있는 종류의 능욕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 능욕을 짊어짐으로써 예수의 능욕을 통해서 확보한 그 구원의 놀라운 은혜가 이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 받는 고난이라고 할까요? 우리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짊어지고 우리들이 영문 밖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들끼리 즐거워하지 말고 그 능욕의 십자가를 지고 한번 세상을 향해서 가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셨더라면 다시 섬기셨을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도 예수님의 능욕을 본받아 고난을 받고 그래서 우리의 그 고난 때문에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그 능욕 받으신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예수님이 능욕당하고 영문 밖에서 죽으셨으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교회에서 받은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면서 예수께서 죽으신 그 세상을 향해서 가자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도 함께 고난을 받으며 죽자는 것이 복음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깨달은 신자의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서 살 때 받는 어려움과 고난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사명의 십자가를 주시고 내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쁘게 예수님이 하신일의 뒤를 이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은혜에서 소멸되지 아니하고 다시금 하나님 앞에 부활을 경험하면서 사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