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새벽예배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 3:4)
녹취자: 박정윤
그 앞에서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렸던 모세가 집이라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 집을 지으신 집 주인이다 이렇게 표현했는데 그러면서 이어서 집마다 지은 이가 있는데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자연스럽게 만약에 모세가 그렇게 뛰어나지만 만약에 모세가 집이라 한다면 예수는 집을 지으신 분이시다 근데 집마다 지은이가 있는데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자연스럽게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이해가 안되고 걸리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그들에 의하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이실 수 없고 그 분이 메시아로 오셨다해도 그렇게 메시아가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다든지 그래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다든지 그런 개념이 그들 속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예수님을 보면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세상에 내려오셨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 하나님의 아들이 그렇게 초라한 집안의 구유간의 말구유에 태어나셔서 멸시와 수모를 받으시며 인생을 사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신 그 죽으심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것이다 그런 신앙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를 통해서 사도가 이제 자기의 사랑하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다시 한번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볼때는 모세가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면 그 당시에도 모세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 믿었고 또 지금 이 편지를 받고 있는 순간에도 그들의 손에는 성경 중 가장 권위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모세가 쓴 5경이 그들의 손에 들려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금 믿고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이 결국은 모세 5경을 어떡하면 잘 믿고 실천할것인가를 발전시킨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들의 종
교에 있어 최종적인 귄위를 가진 사람이 바로 모세였습니다. 모세보다 더 큰이가 있을수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한 예수 그리스도가 보일리 없습니다. 모세는 어떤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세상에 오셔서 모든 백성들을 하나님의 구원방법에 의해 구원해 낼 그 은혜를 바라보고 이미 자신의 사명을 다 끝낸 그래서 마치 비유하자면 모세는 어두운 밤에 밝히던 등불과 같은 존재였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같았으니까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다시한번 이 기회를 빌어 예수 그리스도가 모세와 비견될수 없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예 모세가 도대체 누구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고 또 그들에게 율법을 전수했고 그래서 오늘날 너희들이 믿는 신앙을 갖게 만들었고 지금도 너희들이 발달시켜온 유대교라는 것이 결국 그 5경을 어떻게 하면 잘 지키며 살수있을 것인가를 가르쳐주었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도 너희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가르친 율법 수여자 모세도 모든 사람도 결국은 이세상에 있는 피조물에 불가하다. 그리고 이 모든 세상의 피조물은 창조주께서 만드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창조주이시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주와 만들어진 피조물 사이의 그 관계는 그 피조물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맞닿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간격을 갖고있고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구렁과 깊이를 갖고 있습니다. 그건 도저히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고 모세는 그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지은바 된 피조물일 뿐이다. 그래서 당연히 모세가 완성하지 못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고 모세가 바라보았던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는냐 그 성취의 방법이 바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제물로 드려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예배자들로 만들어 주신 것을 얘기합니다. 마치 제물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인이었던 그가 잠시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결국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모세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그 공로와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며 영원한 찬송의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