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새벽설교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히12:24-25)
녹취자 : 김선영
여기서는 아벨의 피와 예수님의 피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비교해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그런데도 아벨의 피와 예수님의 피를 비교하고 있는 이유는 그 피가 가져다 주는 구속의 효과 같은 것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피의 부르짖는 효과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무슨 의미이냐 하면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데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습니다.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 가인이 간교하게도 하나님께 ‘내가 어떻게 압니까. 내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이렇게 하나님 앞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네 아우의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죄 없이 의롭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의 피는 외치는 소리가 있어서 하나님께 자신의 원통함을 신원 해 주시도록 호소한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가장 최초의 순교자가 바로 이 아벨이었습니다. 아벨이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기 때문에 그의 외치는 핏소리가 하나님에게까지 들렸다면 예수그리스도를 아벨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아벨은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에 불과했고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고 결코 죄를 지으실 수도 없는 그런 분이셨는데 그분을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박고 죽였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 당했고, 그래서 우리를 구속하게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분은 한 점의 흠도 죄도 없는 완전한 분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피가 소리를 친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대해서 소리를 치느냐 하면 그 십자가의 고난의 피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예수 죽인 것을 참회하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향해 원수처럼 살아가는 그 모든 사람들 그 사람들을 향해서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서 소리치신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서 외치는 것입니다.
그 외치는 핏소리가 어떤 것일까요. 저 사람들이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죽였습니다. 어느 때까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저들의 죄를 갚지 아니하시겠나이까 하는 그런 외침이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긍휼과 자비가 약속되지만,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서 원수처럼 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의로우신 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외치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외치는 핏소리가 있는 보혈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뵈었을 때 땅이 진동했는데 그것이 바로 지존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 가운데 내려오셨을 때에 그런 놀라운 광경인 그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래도록 두려워 떨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그 불결하고 더러운 것을 보면서 깨끗해 지기를 원했고, 주님의 그 큰 사랑과 은혜를 따라서 살기를 원하는 복종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땅을 진동하시는 뿐만 아니라 하늘까지 진동하시는 분이시고 그래서 마지막 날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땅이 진동할 뿐만 아니라 하늘이이 흔들리고 징조가 나타나고 별들이 떨어지리라는 예언까지 주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사람들을 심판하고 구원을 최종적으로 완성하기 위해서 오실 때에는 땅만 진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고 하늘의 별들까지 떨어지고 놀라운 하나님 임재의 증거가 이 땅뿐 아니라 하늘에도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 땅만이 아니라 하늘도 진동할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하나님이 이 땅만이 아니라 하늘의 모든 권세까지도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시고, 위탁하신 것을 보여주셔서 결국은 예수님이 이 땅 만왕의 왕일 뿐 아니라 온 하늘과 우주의 왕중의 왕 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실 그 분인데 만약에 너희들이 오늘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는다고 해서 믿음에서 미끄러지고 예수를 배반하면 그 때 그분을 어떻게 뵈올것이냐.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오늘 우리들은 이 편지를 읽어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로 돌아와보면 진짜 핍박을 받는다 그래서 좀 괴롭힘을 당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박해가 실지로 행해지고 있었고 조직적인 박해가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말 할 수도 없는 치열한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그 치열한 박해를 받으면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만 믿지 않았더라면 얼마든지 누리면서 살아갈 이 세상에서 그 처절한 고난을 당하면서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동족들로부터 멸시를 받으면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얼마나 무서운 고난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그런 고난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작은 그것보다도 훨씬 작은 고난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심지어는 고난은커녕 조금 더 죄악의 낙을 누리기 위해서 주님을 너무나 쉽게 배신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오묘하시고 두려운 경고를 우리들이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신자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이제는 안전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참된 신자는 언제든지 자신이 배교할 수 있다라고 하는 두려움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완전하지 않지만 결코 이 세상에서는 완전 해 질 수 없지만 그러나 끊임없이 완전해 지기를 사모하고 그 완전을 자신의 목표로 세우고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한번의 승리가 소중하긴 하지만 그것이 내일의 승리를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는 어제의 은혜로 살았고 오늘은 오늘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전적으로.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것 이외에 다른 지름길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그 주님의 은혜를 받고 진동치 못할 나라를 우리가 받았은 즉 우리가 더욱 은혜를 받고 주님의 죽으심에 합당하게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