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새벽예배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행 1: 15)
녹취자: 김용재
역시 성령이 강령하시기 전에도 베드로가 지도자로 등장을 하게 됩니다. 사실 요한복음까지의 사건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많은 모인 사도와 그리고 제자들 앞에서 지도자가 될 수는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동일하게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이 못 박히실 때에 도망쳤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지도자로서 설 수 있었던 중요한 근거의 하나는 요한복음 21장입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실패한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키셔서 그래서 그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신 후에 그 사람을 다시 내 양을 먹이라 이렇게 맡겨주십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것을 예수님이 만약에 베드로 혼자 있는 곳에 오셔서 말씀하셨다면 권위가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주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그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세워주셨는데 문제는 뭐냐면 많은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이 그를 세워주셔서 그래서 그 지도력을 회복시켜 주셨고 또 하나는 예수님이 그렇게 지도력을 회복시켜 주셔서 베드로를 세워주셨는데 그것을 제자들이 아마 여기 모인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전부 베드로의 지도자로서의 권위에 순종하는 모본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뿐만 아니라 여기모인 모든 사람들도 실패한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키신 예수님 때문에 다시 베드로의 리더십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베드로가 여기에서 등장을 합니다.
제일 먼저 거론한 것이 뭐냐면 가론 유다가 12사도 중에 하나로 부름을 받았지만 그러나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지루했다고 하는데 어려운 말인데 길을 가르쳐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길을 가르쳐줘서 예수님을 찾아내게 하고 그런 식으로 예수님을 배반한 그래서 결국은 목메어서 땅에 떨어져 창자가 터져서 죽어버린 그 가론 유다 대신에 한 사람을 다시 뽑아서 그래서 사도의 줄을 채우자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갖는 중요성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인물에 달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마띠아라는 사람이 나중에 사도로 뽑힙니다. 이 사람은 사도로 뽑히기는 했습니다마는 그러나 여기에는 나오고 신약성경 전체 이후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물론 헌신적인 삶을 살았겠지만 인물의 중요성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구약의 12지파 그리고 신약의 12사도 그래서 짝을 맞춤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진행되도록 이 사도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간파하고 예수님을 배반한 가론 유다대신에 한 사람을 뽑자고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한번 실패했을 때 그 사람을 영원히 낙인찍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 사람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예전에 한번 실패해서 깊이 잘못된 사람들을 잘될 리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그 사람이 예수님에 의해서 다시 세워져서 그래서 요한의 아들 시몬에서 다시 사명을 받은 베드로가 되어서 예수님 제자들 가운데 다시 나타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언제나 잘 해야 됩니다. 전체적으로만 주님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되고 매일 삶속에 이어지는 개별적인 의무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충분히 섬기고 우리의 마음을 충분히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충분히 살 수 있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안됩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하면 좋은데 때로는 실패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사명의 자리에서 미끄러지거나 사명의 자리에서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주님이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새롭게 변화시켜 주셔서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섬기고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늘 잘해야 하지만 한번 실패했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사는 우리의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인해서 실패하기 보다는 깊이 참회하고 미래에 새로운 삶을 주셔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을 의뢰하면서 사는 경건한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여기서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이냐면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추측컨대 예수님이 올라가실 때에 그 승천하실 때에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을 500여명 되었던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120명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언가 우리들에게 커다란 징벌을 내리실 때에도 사람을 골라내시고 큰 축복을 주실 때에도 사람을 골라내십니다. 예를 들자면 서돔과 고모라 성을 하나님이 멸하실 때 거기에서 경건한 사람 롯을 하나님이 골라내시고 심판하십니다. 똑같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시고자 할 때에도 그 축복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먼저 골라내시고 순수하게 만드신 다음에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을 베푸실 때에는 아주 악하게 만드신 다음에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하시고 축복하실 때에는 순수하게 만드신 다음에 그 위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미암아 악한 자들과 하나님의 공의가 날카롭게 대조되게 만드시고 신실한 사람들과 하나님의 축복이 명백하게 일치하도록 역사하심으로 하나님 당신의 정당성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 날 동안 기도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마음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향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신 후에 오순절 강림 사건을 경험하게 하는 증인들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끝까지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마 매일매일 기도를 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이 충만한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1907년에 있었던 장대현 교회 부흥회에서도 모인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돌아가고 남아있던 사람들이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실 때 사람들을 가려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심지가 얼마나 굳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주님이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온전하게 주님을 붙들고 매달리지 않을 수 없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매일매일 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매일매일 섬기고 그렇게 해서 마지막까지 주님 편에 있는 사람들이 될 때에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와도 흔들리지 않고 전심으로 한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명을 맡겨주셨으면 맡겨주신 사명의 길에서 많은 난관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꿋꿋이 흔들리지 않고 있는 것 이것은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려고 매일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애쓰지 않는 사람들은 불가능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다고 결심하면 난관이라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다고 하면 우리가 상상치 못한 난관들을 만납니다. 그렇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뜻을 세우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뜻을 세운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전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부터 부으시는 그 능력이 전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런 은혜와 능력의 자원을 하나님 앞에 힘 있게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나님이 세워주시고 맡겨주신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기 위해서 분투할 때에 힘 있게 그런 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와 자원을 힘 있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살면서 무엇인가 뜻을 세우고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견딘다고 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영혼의 보존재입니다. 식품을 사면 보존료라고 하는 것이 쓰여 있는데 썩지 않는 물질을 넣은 것입니다. 더 좋게 얘기하면 소금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이 길에 우리에게 항상 주님을 위한 고통이 남아 있고 주님이 세워주신 자리에서 져야 하는 십자가와 아픔이 남아 있을 때에 우리의 영혼이 썩지 않고 잘 보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믿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많은 어려움 속에서 끝까지 그를 바라보시고 시험하셔서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축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