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새벽예배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행 20:20-21)
녹취자: 류혜승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행한 일 가운데 겸손과 눈물과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에 이어서 다섯 번째로 한 것은 거리낌이 없이 입니다. “거리낌이 없이 너희 영혼에 유익한 것들을 내가 전파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에 유익이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 기준으로 볼 때에 사도 바울이 꺼림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온 마음과 온 뜻 그리고 온힘을 다해서 전했습니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전했다고 하지 않고 너희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정말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한 사람은 사도였고 그 판단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사역이다 하는 것은 영혼에 대한 치료 행위입니다. 그 영혼에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의사가 결정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설교자가 전하던지 그 아래 앉아있는 사람들은 명령하면 안됩니다. 내게는 이것이 필요하고 저것이 필요하니까 이렇게 해주시오, 저렇게 해주시오 그런 식으로 명령하거나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 하나님이 각별하게 주시는 진리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매우 분명한 사실이 있는데 자신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오류도 있고 때로는 자신은 도저히 알지 못하는 잘못과 부패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얼마나 정확하겠습니까.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기 사상에 어긋나지 않고 동의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만 들을 때, 그것은 이미 말씀으로써의 치료의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속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 있고 부딪치는 것이 있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이 진짜 그 사람의 영혼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런 것이 없다면 진정으로 그 영혼을 치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사도는 기준자체가 그들이 원하는 것, 그들이 바라는 것,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 그들이 원하던지 원하지 않던지 혹은 전하다가 돌에 맞던지 칼에 찔리던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이 그들의 영혼에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전했을 때에 그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오늘 여기에 나오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즉 이 두 개를 합치면 회심이 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심판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고 자기의 죄를 확신한 후에는 자기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는 것. 이것이 사도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간에, 이렇게 설교하는 저부터도 잘한다 그래야 좋지 넌 왜 그러냐, 넌 나쁘다라고 말하면 좋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은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죄에 대한 설교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때에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구원에 이르게 하고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완전함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완전함에 이르게 하는 방법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 네 가지 입니다. 그중에 달콤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교훈, 달콤합니까? 물론 교훈대로 살려는 착한 마음을 가졌을 때는 달콤합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단지요, 송이꿀보다 더 답니다 라고 시인이 고백한 게 바로 그런 고백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없으면 교훈이 달콤합니까? 책망이 달콤합니까? 바르게 함이 달콤합니까?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가던 길을 못가도록 말리고 그다음에 꺾여야 되는 아픔이 있습니다. 의로 교육함이 달콤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자기를 즐겁게 하는 설교에 익숙해지면 사람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어려운 것입니다.
(예화) 옛날에 권투선수 중에 홍성환 선수라고 있었습니다. 일곱 번 다운 됐다가 여덟 번째 일어나서 한방 날려서 KO시키고 세계 챔피언이 된 선수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의 챔피언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 시절 매니저가 선수들한테 그렇게 무섭게 하는데 자기가 권투를 하다가 완전히 지쳤는데 매니저가 다시 한번 뛰라고 하였답니다. 도저히 못 뛰겠다고 하니까 구두발로 정강이를 차고 매우 팼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를 악물고 악이 바쳐서 저 인간 보기도 싫다 하며 미운 마음과 원망을 하며 뛰었더니 어느새 챔피언벨트가 자기 배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돈도 많이 벌고 매니저와 농담도 할 수 있고 툭툭 치고 장난도 할 수 있게 되니까 벨트가 사라졌더라고 합니다. 참 의미심장한 얘기 아닌가요?
이 세상에 가장 바보같은 신자는 죄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설교자가 개인적으로 자기를 공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결국 그는 일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향해 하시는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통로들이 막히게 됩니다. 어디든지 가서 늘 자기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잘했다고 인정해주는 그런 말씀만 접하게 될 때 그가 사람이 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건 인본주의적인 생각입니다. 보세요. 이 에베소에 와서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사도가 얼마나 이 사람들을 사랑했습니까?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하는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럴 정도로 이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아주 깊이 영혼들을 사랑했고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전한 메시지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열심히 전했습니다. 죄를 회개하도록 촉구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을 많이 찌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기위해서 온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것, 그것이 3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 와서 한 일입니다. 그랬더니 교회가 섰습니다. 교회는 어느 한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이 세우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회개하고 예수께 대한 굳센 믿음이 생긴 회심한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는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깊이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정말 자신이 진실하고 좋은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를 모두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깊이 은혜받고 변화되고 깨뜨려지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많이 자기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특별히 죄에 대해서 깊이 회개하는 진실한 참회가 필요 없는 그런 설교는 그 사람의 영혼을 계속 병들게 합니다. 진실한 참회와 그 회개 속에서 그 사람의 영혼이 날마다 변화되고 새로워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늘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께 대한 깊은 믿음을 기대하며 그러면서 매일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