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새벽예배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무리 가운데서 어떤이는 이 말로, 어떤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포행을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행 21:27-40)
녹취자 : 윤은정
이것 보십시오. 그렇게 유대인들에게 당할 어려움을 좀 피하기 위해서 그래서 결례를 행했지만, 그러나 유대인의 박해는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일어나서 이제 바울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이 이제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율법과 그리고 우리의 유대인들로서의 전통을 파괴하고 더럽힌다.” 하고 소문을 낸 것입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사람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 그 많은 역사가 일어났고, 그 어떤 식으로든지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지 않았겠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에게 난 소문을 두고 여러 가지 많은 해석들이 있지 않았겠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이런 복음사역의 성공에 관한 소식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감격이었지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모욕이었고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사람들이 바울에 관한 비난이 있을 때에 사람들이 더 동조하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성 안에 헬라 사람들과 같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오해를 했는지, 뭐 일부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은, 어쨌든 이 사람을, “그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더라!” 원래 성전에 이방인은 못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들어갔다더라!” 하고 소문을 낸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에다가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더 사람들이 발광을 하면서 이제 “이놈을 없애버리자! 죽여 버리자!‘ 막 소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제 인간의 악함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대단히 이성적인 동물 같지만은 어떤 상황에 들어가게 되면은, 아주 비이성적이고 더러운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있지도 않은 일인데 일어난 것으로 치부를 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일어난 걸로 치고, 그리고 이제 바울에게 맹비난을 퍼붓고 백성들을 선동해서 “죽여 버리자” 라는 결론 쪽으로 가게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무엇인가 판단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가지 기능을 주셔서 사실을 판단하게 하시는데, 하나는,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이렇게 판단하게 하시는데, 특히 도덕적인 것을 판단하게 하실 때에는 옳다! 그르다! 라는 판단과 함께 좋다! 나쁘다! 라는 감정을 주셔서 그것을 판단하게 합니다. “일단, 난 저사람이 싦다!” 라는 판단이 생기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 마음에 사로잡혀서 사실에 있고 없음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눈이 흐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선동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바울이 싫었습니다. 바울에 대한 증오심으로 마음이 꽉차있었는데, 성안에서 헬라인과 함께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냐면은, 그러니까 그 해석을 한 것입니다. ‘아! 저 성안에 있었으니까 저 사람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음에 그를 싫어하는 마음이 이 사실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위증이고, 그다음에 이제 모함이고, 모략이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진짜 죽일려고 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이제 당시 로마는 비교적 치안이 잘되어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소문이 들린다, 그런다 그러더라’. 소문이 나니까, 그냥 ‘거기에서 그런 소문이 들린다고 하더라’ 하니까 곧바로 말하자면 경찰이 파견되고, 군대가 파견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가서 일단 바울을 구출해내고, 그리고 이제 돌아오다가 분명이 이 사람이 뭔가 사고를 친 사람이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내가 이 백성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네가 헬라말을 할 줄 아느냐?” 그 헬라말이라는게 그 당시에 그리스어입니다. 그리스가 제국을 통일한 다음에 자기네 나라 말을 아주 쉽게 만들어서 온 나라에 전파했습니다. 그래서 언어적으로 통일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히랍어는 우리들이 쓰고 있는 신약성경을 기록한 히랍어 입니다. 뭐 교육을 받은 사람이니까 당연히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면은 네가 이 백성들에게 말하여라” 그래서 이제 백성들을 조용히 시키고 그다음에 층대에 올라가서 그래서 이제 안전한 곳에서 온 백성이 알아듣도록 이번엔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 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제 깨닫는 것은 뭐냐 하면, 그 큰 위기를 만나고 그 큰 핍박을 당한 그 기회를 복음을 전파하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그 큰 핍박을 당하고 어려움을 만나는 이때를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의 관심사가 어디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사도바울이 단지 자신의 신변에 안전만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더라면은 아마 이렇게 복음전할 기회로 자신을 활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제 이러한 기회를 사용해서 그래서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열정과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참, 어떻게 생각하면 그 하나님의 방법이 너무 인간의 생각이나 이런 것들은 초월해서 그렇게 역사하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결례를 행하고, 유대인에게 맞춰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할 때에는 오히려 박해가 일어나고, 그리고 오히려 박해가 일어나니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성안에 서 있고, 층로 위에 올라가서 안전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이제 집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어떻게 보면은 너무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잖습니까? 그죠? 편안한 가운데 사도바울이 영광을 받고 사람들에게 한 몸의 존경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죠? 그렇게 안하고 그런 기회가 주어졌으면 참 좋을 텐데 그렇게 안하고, 오히려 이렇게 환란과 핍박을 당하게 하셔서 그래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삼게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방법은 오묘합니다.
적용을 해 보면은 우리가 살면서 당하는 고난이나 많은 시련들이 너무 괴롭습니다. 늘 우린 그것들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고난이나 시련, 괴로움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이나 괴로움을 무조건 싫어하면, 그러면 마치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화) 우리 몸을 보양하는 길이 항상 우리가 원하는 좋은 것만으로 우리의 몸이 보양되는 것은 아닙니다. 땀을 흘리는 운동! 그 얼마나 힘들어요. 그런 것에 의해서 우리의 몸이 보양됩니다. 우리의 몸이 약할 때는 우리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아주 쓰디 쓴 약을 먹습니다. 그것에 의해서 우리의 몸이 지켜집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이 심하게 상하면 우리의 몸에 칼을 댑니다. 그래서 수술을 합니다. 그래서 온 몸을 파헤치고 장기를 찢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의해서 오히려 우리의 몸이 보호됩니다. 보양된단 말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의 뜻들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 전할 기회를 주셨으니 힘닿는 대로 이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