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있는 말씀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게 행하니리 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 할 쌔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행 6:8-10).
+이제 여기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의 첫 번째 순교의 재물이 되었던 스데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초대교회의 이 안수 집사는 오늘 날 우리가 부르는 안수집사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말씀 선포하는 교역의 기능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이렇게 나타납니다. 물론 이제 그 때에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모인 첫 번째 공동체의 신자들이 모두 성령 강림 사건에 참여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러나 그 위에 이제 세워진 이 집사들의 경우에는 일정한 교역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이 이렇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7장에 이어지는 이 스데반의 설교는 그야말로 정말 명 설교입니다. 그 원고 없이 그렇게 장쾌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구속사적인 설교를 할 수 있었다. 라고 것 자체가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역사에 대한 신학적인 전망을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생각이듭니다. 이제 이 스데반이 이제 로마제국 산하에 있는 멀리서 온 사람들과 더불어서 이제 변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변론을 한다. 라고 하는 것은 요점이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었다. 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유능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변론을 하던 사람들이 도저히 이 스데반의 유능한 변론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스데반이 학문이 출중하고 그 모든 이 세상 지식이 뛰어났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기보다는 이 스데반에게 지혜와 그다음에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이 유능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변증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제 이 때문에 부름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우리하고는 좀 달랐습니다. 왜냐면 이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아주 익숙하게 읽고, 그다음에 심지어는 그 성경의 내용들을 거의 암기하고, 그러는 가운데 전에는 예수님을 못 보았습니다. 그래서 구약이 구약으로만 존재했는데 이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서 혹은 전도를 받고 성령을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이 바로 우리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는 것을 아주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서 그래서 그들이 구약 속에 있는 그 중심적인 메시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흘러가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위대한 역사, 그리고 거기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지하다고만 말할 수 없죠. 구약을 잘 알고 있었고, 거기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니까 그러니까 구약 책 전체가 말하자면 맥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단순히 무지했다. 이렇게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위에 성령의 능력까지 있었습니다. 권능까지 있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때 사람들에게 유능하게 변론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위에 성령의 큰 권능까지 있어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막 쏟아져 나온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의 그 놀라운 말씀과 은혜의 역사가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죠.
이렇게 보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닙니까? 그런데 그 놀라운 은혜의 말씀이 쏟아져 나오고 권능이 역사하고 있는데도 이 말을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게 되었던 것이죠. 오히려 스데반을 핍박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롭고 강력할 때 그 때에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의 역사가 있을 때 더 강퍅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렇게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 그다음에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그 말씀이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라기 보다는 그렇게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드러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력이 정말 놀라운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 놀라운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마지막에 자신이 예수를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자기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자기책임입니다. 자신이 그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거절했기 때문이죠.
오늘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이 스데반의 설교는 정말 의심할 수 없는 명 설교였습니다. 결국은 그 충만하고 은혜로운 설교가 다 끝나기 전에 돌로 쳐서 죽여 버리잖아요. 이것이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하고 완악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하나님의 성령의 강력한 역사, 지혜의 놀라운 말씀이 그 축복가운데 쏟아지게 되면 구원 얻을 자와 그다음에 그 구원을 떠날 자, 주님께 속한 자와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주 선명하게 가려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뒤섞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면 이렇게 갈라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지금 필요한 것이 이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 속한 사람, 마음으로 하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명한 하나님의 말씀 충만한 능력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합니다. 교회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교회가 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 없이는 교회가 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와 모든 교인들이 바로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다른 모든 일에 능하고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말씀의 강력한 은혜의 역사를 통해서 사람들이 변화되고 깨뜨려지고, 그리고 새로워지지 아니하면 절대로 교회가 설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합니다. 그때에 주님의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은혜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