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믿음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산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과의 하난ㅁ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게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람아ㅣ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행 7:1-4).
그렇게 스데반에게 참소하는 거죠. 있지도 않은 일을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대제사장이 그것이 사실이냐? 이제 이 사람을 종교재판을 하고픈 요량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스데반이 그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왜 나를 모함합니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갑자기 느닷없이 여러분 부형들이여 내 얘기를 좀 들어보십시오. 그러면서 갑자기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입니다. 이 이유는 무슨 뜻이냐면 그 이전에 아담도 있고, 노아도 있고, 모세도 있고, 등등 구약에서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아브라함부터 시작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이 실제적인 자기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부터 거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스데반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완전히 다른 믿음이 아니라. 지금 이들과 같은 사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한 그런 신앙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쭉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면서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 역사를 쭉 얘기하면서 사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역사와 자신이 지금 말하고 있는 역사 사이에 역사적 사실이 똑같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러면 이제 믿음의 뿌리가 같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이제 그러나 그 역사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에 대한 해석은 달라요. 그래서 그 역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시게 된다는 것, 그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부터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메소보타미아에 있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사건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죠. 창세기 12장부터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아서 이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고, 지금 바로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이곳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뭐냐면 지금 여러분들이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만약에 없었더라면 이런 약속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고 여러분들도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택하셔서 그의 후손들에게 이 땅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쫓아서 여러분들이 지금 여기에 와서 이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이제 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떼어놓을 레야 떼어놓을 수 없는 민족이고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고, 여기에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도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되요? 순종을 해야 되잖아요. 하나님께. 그런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서 이 땅을 기업으로 얻어서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하나님께 순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순종하는 것이 뭐냐면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쭉 이야기를 하면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유가 여러분들이 어떻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도 어찌할 수 없는 여러분들의 죄로부터 여러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야 이지만 혈통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그 아브라함조차도 완전히 누리지 못했던 이 영적인 모든 안식의 축복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뭐냐면 철저하게 이 스데반을 비롯한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은 역사에 기초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에 기초하고 있었던 신앙이다. 철저하게 역사에 뿌리를 박고 역사에 기초하고 있었던 신앙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허공중에 떠 있는 신앙이 아니라. 역사에 기초한 신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불러주신 것도 역사 속에서 일어났고, 자신들이 죄를 지은 것도 역사 속에서 일어났고, 또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구하기 위해서 오신 것도 역사 속에 오셨고, 또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것도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렇게 역사에 뿌리를 둔 신앙이니까. 아주 힘이 있는 것이죠. 강력한 힘이 있고, 그리고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강력한 권세와 능력이 있어서 그래서 그 능력에 붙잡혀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믿음 생활을 해나갈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한 믿음의 실질적 조상으로 불러주셨을 때에 아브라함이 그 부르시는 소명에 대해서 응답하는 태도는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었다. 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고 있는 것도 보이고 싶은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배우게 되죠.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셔서 우리를 어떤 특별한 일들을 위해서 불러주시고 또 우리에게 어떤 과업을 맡기셔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불러내어주실 때에 우리가 하나님께 보여야할 반응은 순종과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그런 순종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러주실 때에 자기도 자신이 가야할 땅을 알지 못할 쌔 하나님의 명령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면서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믿음을 너희들이 소유하고, 그런 종류의 순종을 지금도 지향하고 있다면 예수님이 오신지 너희들이 모를 수 없다. 성경에 명백하게 그분을 약속하고, 있고 그리고 그분이 오시고, 그분을 따를 것을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잘못 씌워진 이 눈의 비늘들을 다 벗겨내고, 그리고 순전한 마음으로 그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말씀을 따르게 될 때 그 때 참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그렇게 될 때에 너희도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수 있다. 그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조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