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8일 새벽예배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 지라”(행 9:1-3).
여기에서 그 유명한 사울의 회심이 나옵니다. 사울은 사도행전에서 그 앞에 거의 언급이 되지 않지만 꼭 한군데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스데반이 순교하던 그 장면입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할 때 그때에 그를 돌로 치기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마 웃옷을 벗었던 거 같아요. 그때에 사람들의 옷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고 또 사도행전에서 자기의 직접적인 고백 속에서 스데반을 죽이는데 자신이 가편 투표를 했다고 고백을 후에 합니다. 이 사람은 전승에 의하면 키가 작고 아주 못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주 다부지고 그리고 잔인하고 논리적이고 아주 열정이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이제 이 사람을 변화시키셔서 그래서 이제 이방인 선교의 새로운 시대를 여십니다. 이미 빌립을 통해서 이방인까지는 아니지만 이방인과 진배없는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또 거기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광경을 교회의 기둥인 베드로와 요한에게 직접경험하게 하시고 또 목격하게 하심으로써 이제 예루살렘과 유대 땅 이외의 다른 곳에서도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이셨고 이제 이방인 선교의 새로운 시대를 사울을 통해서 여시는 것이죠. 이사건 이 9장에서의 회심의 사건은 그 이후에 2번 더 반복해서 나오는데 둘 다 모두 사도바울의 자기고백에서 재연되고 있는 회심의 경험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사도행전에서 확장되어 가는 교회의 입장에서 보아도 사울의 회심은 매우 중요한 것이고 또 한사람의 신자요 복음전도자요 목회자로서 선교사로서 일생을 살아가던 사울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이 회심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이 사도바울의 회심사건이 개인적 사건이기는 하였지만 이 사건이 교회역사의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게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울의 이 회심장면이 여기서 3번이나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읽은 이 부분을 해설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그 위대하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때에 그 이루신 방법의 독특성이에요. 이 자체에 복음의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이죠. 무슨 뜻이냐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다면 훨씬 더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쉬워질 것 아니에요. 그러면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때에 하나님이 이방인을 사울처럼 회심시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전도의 대사도로 삼으시면 되었을 텐데 하나님이 그렇게 안하시고 정통유대인인 이 사울을 변화시키셔서 그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놀라운 섭리입니다.
물론 사울이 복음을 전하는 후에는 그 이방인이 그 복음을 듣고 변화된 사람들로서 이제 이방인들에 복음을 전해서 선교의 대열에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기념비적이고 획기적인 일들을 주도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한 사람이 유대인인 사울이었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사울은 그 당시유대교에 속한 모든 신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표준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지 그 표준적 신앙위에 남이 따라올 수 없는 뜨거운 종교적인 열정을 더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거죠. 그러한 종교적인 열심이 결국은 어떻게 나타났나하면 두 가지 편견으로 나타난 거죠.
첫째는 신학적인 편견이고 둘째 심리적인 편견이에요. 신학적인 편견은 예수는 그리스도일수가 없다 ‘예수는 절대로 하나님의 아들일 수가 없으며 예수는 절대 그리스도 일수가 없다’ 라고 하는 편견이었고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는 그리스도 일수가 없을 뿐 아니라 이방인들은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없다’ 라고 하는 이방인을 멸시하는 인종적인 편견이었어요. 그러한 신학적이고 심리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 가장 표준적인 유대인을 그리고 유대교를 향하여 열심을 내던 사람을 하나님이 꺾으셔서 그로 하여금 이방인을 가장 사랑하는 사도로 삼으시고 그 일을 위해서 헌신하도록 만드신 거죠. 그래서 일평생 그가 전하던 선포의 제목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일평생 그가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은 이방인들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이고 또 그 복음이 사람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하나님께서 혁혁하게 보여주셔서 그러한 인물이었던 사울이 바울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그 모습 자체가 사실 복음이 무엇인지를 복음의 능력이 어떤 것 인지를 가장 훌륭하게 보여주는 그런 대목이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복음에는 이처럼 복음이 제대로 사람들에게 들어가기만 하면 이처럼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놓고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편견을 고치고 사랑하던 것들을 버리게 하고 또 사랑할 수 없었던 것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혁명적인 변화의 원천이 된다 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면 사도바울이 대제사장에게 와서 공문을 청했다고 하는 데 이 공문의 내용은 아마 틀림없이 지방에 있는 각 회당에게 보내는 공문이 이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 공문의 내용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또 다시 살아났다고 허탄한 풍설을 퍼트리고 다니는 이단들이 있는데 그 사람을 믿는 자는 반드시 처벌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었을 거라는 거죠. 그 공문을 이제 각 회당에 다 보내게 되면 그러면 그것을 근거로 이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할 수 있고 솎아낼 수 있다고 믿었던 거죠. 이미 제자들이 흩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그리고 여기저기서 복음전파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소문을 듣고 이제는 이것이 예루살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구나 생각을 하고 이일을 했다는 거죠. 이 사람은 굉장한 지략가죠 그러니까 단지 자기가 처해있는 장소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가지고 씨름하고 근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전국적으로 이것의 씨를 말려버릴 생각을 하고 그리고 체계적으로 핍박을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메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찬란한 빛을 만나게 됩니다. 이 빛은 예수그리스도의 임재였고 그리고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비춰오는 찬란한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이제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열두 사도는 아니지만 열두 사도와는 별도로 사도라고 인정을 해주게 되죠.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부인을 하고 허물려고 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갈라디아교회나 고린도교회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때 자기의 사도직을 강력히 변증하는 대목이 바로 이대목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것처럼 나도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분이 나를 직접 사도로 삼아 주셨기 때문에 자신의 사도직은 정당하다라고 하는 것이었죠. 왜 이렇게 사도직을 그렇게 변증했냐하면 이 사도직과 자신이 전파하는 복음의 권위가 하나로 엮어져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도 바울이 참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했는데 좋은 마음으로 그것을 믿을 때에는 바울이 사도라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나중에 그 가르침을 버리고 싶을 때에는 그 가르침을 직접 공격한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사도라고 하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으로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르치는 교훈과 사도직이 두개가 함께 결탁되어 있기 때문에 사도는 철저하게 자신의 사도직을 논증하고 그리고 사도직에 대해서 철저하게 집착하면서 그러면서 복음전파에 있어서 자신의 권위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가장 사악한사람 그리고 가장 자신을 위하여 복음에 헌신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택해서 하나님이 복음전파의 위대한 일들을 이루십니다. 이것 자체가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고쳐서 쓰시기를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두 망가진 사람들이고 망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고치셔서 당신의 나라의 영광과 그리고 위엄을 위해서 그들을 사용하시고 역사하시고 일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이러한 사울의 기록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의 지난날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제 주님이 참 누구신가를 알지 못한다면 인생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과 열정과 열심 이런 모든 것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모두 흘러가요. 그러나 이제 우리가 주님이 누구신지를 올바로 알고 진실 되게 헌신하면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으로 이렇게 쭉 흘러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또 살아야 할 그러한 일들이고 또 우리의 준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