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9일 새벽예배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쌔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가니라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 것을 보고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구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23-33).
이제 드디어 베드로가 고넬료와 만나는 장면입니다. 사실 이것은 율법에 의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이런 식으로 접하고 그들과 함께 유숙하고 이러는 것은 다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죠. 그러니까 베드로가 정통적인 유대인 이였고 또 율법을 배우고 거기에 익숙하게 살아온 사람이었으니까 사실 얼마나 이런 점에 있어서 철저했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만큼 이제 이방인들을 하찮게 여기는 편견도 아주 심했을 거라는 거죠.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을 불러서 이방인들과 처음으로 이렇게 접촉하게하고 또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성령이 임하시게 하신단 말이죠. 그런데 후일의 역사를 보면 이방인의 선교의 장을 열고 그 선교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사실 베드로가 아니라 바울입니다. 그런데 그 뚜껑은 바울에게 열게 하지 아니하시고 베드로에게 열게 하신단 말이죠. 왜 그랬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바울은 사실은 바울의 모습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참 어려워요. 선교사인 것은 틀림없지만 오늘날 개념의 그런 선교사만은 아니에요. 교회를 설립하는 선교사인 동시에, 목회자인 동시에, 저술가인 동시에, 교회를 움직이는 정치적인 힘이 있는 사람이었단 말이죠. 그래서 결국 뭘 보여주느냐 하면 이렇게 이방인의 선교를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지만 그 첫 뚜껑을 여는 일은 예루살렘교회의 가장 높은 지도자였던 베드로를 통해서 그 일을 하신단 말이죠. 그래서 결국은 선교가 선교의 소명과 은사를 받은 사람에 의해서 교회와 단절된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그 예루살렘교회와 깊은 연관 속에서 이루어지길 원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제 바울 아니라 베드로에게 이 선교의 빗장을 열게 하신 거예요. 그런 깊은 의미가 숨어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방인들에 대한 모든 편견과 오해들을 예루살렘지도자부터 걷어내고 선교적인 마음을 갖게 하셔서 그래서 바울이 주도적으로 일하지만 거기에 협력하게 하셔서 펼쳐나가신 거예요. 이게 이제 주님께서 하신 방법이었어요. 참 놀랍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이런 방법을 가지고 예루살렘교회를 선교를 향해서 눈을 열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자신들에게 베풀어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 부활의 복음, 그리고 성령 부어주시는 놀라운 이 사건, 이 축복 이모든 것들이 유대인의 전유물이아니라 먼저 이것을 받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는 이것을 이방인에게 전해야하는 소명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일깨워주신 거예요. 이건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에요. 이 사건은 사도행전 전체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에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나오는데 2장에서의 성령강림과 10장에서의 이방인에게 성령 부어주심, 이 두 사건이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건이 되는 거예요. 이속에서 우리들이 그런 선교의 원리들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선교사들을 만나면 제가 항상 이야기를 해요. “어렵고 힘들어도 항상 기도하면서 선교사에게는 두 선교지가 있다고 생각해야 된다. 한 선교지는 고요하게 자기가 나아가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하는 외국사람을 위한 선교지이고 또 하나는 본국이 선교지에요. 그래서 본국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열어서 그들로 하여금 선교를 깨닫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거기동참하게하고 그것이 해야 할일이다. 그것이 힘들다고 해서 집어치워버리고 한쪽만을 붙들고 사역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늦게 가더라도 끊임없이 가르치고 그래야지, 도와주지 않는다고 투덜대기나 하고 그렇게 하면서 선교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다.” 제가 늘 그렇게 가르칩니다.
여기서 그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거예요. 베드로가 이일을 심히 마음에 걸려하였을 텐데 그 완강한 편견을 강력한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아 풀어주신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그래서 결국 고넬료의 집에 오게 된 거란 말이죠. 고넬료가 그 경위를 다 다시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이 뭐냐 하면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다 모였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십시오.” 그러는 거죠. 이 고넬료가 베드로를 불렀을 때 기대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예루살렘교회로부터 무슨 물질적인 도움을 얻는다거나 혹은 베드로를 통해서 병 고침을 받는다거나 혹은 이 베드로를 모셔 와서 자기들과 함께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육신을 위한 이익을 원한 것이 아니었어요. 고넬료의 간절한 마음은 이 베드로에게는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한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믿음에 관한 놀라운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죠. 그래서 베드로가 들어왔을 때 마치 베드로에게 경배하는 것처럼 엎드려 졌습니다. 베드로가 “나도 사람이니 그렇게 하지마라.” 이렇게 타이르면서 스스로 낮아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고넬료는 더 많이 베드로를 높였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무엇이었습니까? 베드로에게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깨닫지 못한 놀라운 진리의 말씀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면 내가 주님을 더 많이 경외하고 주님을 더 진실하게 닮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소박한 소망이 이 고넬료에게 있었던 것이에요. 사실은 고넬료가 이 베드로를 부를 때에 고넬료도 그렇고 베드로도 그렇고 오순절에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부어졌던 그런 성령의 역사와 동일한 성령의 부으심이 고넬료의 집안의 위에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몰랐죠. 전혀 몰랐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성령을 받기위해서 사실은 베드로를 불러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이 고넬료는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었고 기도와 구제에 힘쓰던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만큼 진실하고 거룩한 사람이었고 자기사랑을 비우고 이웃을 깊이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었단 말이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었단 말이죠. 그러나 자신이 온힘을 다해서 참 좋은 신자로 살아가려고 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자기 자신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진리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느꼈던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를 불러온 이유는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지시하셨기도 했지만 그를 통해서 기대했던 바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고 싶고,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고 싶습니다.” 하는 고백이었단 말이죠. 이것이 바로 정말 주님을 갈망하는 사람의 모습이고 변화된 성도의 태도에요. 그러나 오늘날 조금만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너무나 부요해요.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아요. 자기가 가장 잘 믿는 사람이에요. 자기가 아는 것으로 충분해요. 그러면서 자기 의에 빠져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은 이제껏 자기가 만난 하나님이 제일 큰 하나님이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가장 좋은 것이고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오늘 이 말씀은 커다란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온전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더 많이 온전해지기를 원했고 그래서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을 깨닫기를 원했어요. 그때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 고넬료는 혼자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힘 있는 대로 불러 모아서 베드로 앞에 엎드렸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죠? 자신의 영혼만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히려 자기 자신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리고 고통 받는 이웃을 돕고 그리고 또 기도하기를 원했던 것이죠. 이것이 바로 고넬료의 진정한 모습이었어요. 우리에게도 이러한 태도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당신에게 알게 하신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들려주십시오.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고, 그렇게 되고 싶고, 그렇게 섬기고 싶습니다.” 이런 고백을 가지고 왔을 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말씀만 들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성령의 놀라운 은혜의 부으심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방인 최초로 성령의 부으심을 경험하는 특별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고넬료처럼 주님을 찾고 그래서 주님께 복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