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5일 새벽예배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지 팔년이라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행 9:32-35).
이렇게 교회가 든든히 서갈 때 이제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또 핍박을 받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 했던 것 같아요. 이제 룻다라고 하는 곳으로 가게 됐는데 거기에 온 동네 사람들이 거의 아는 중풍병에 걸린지 8년이나 되는 애니아라고 하는 사람이 누워있었습니다. 사실 모든 병이 다 고통스럽지만 중풍병의 가장 커다란 고통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현대의학이 많이 발달된 오늘날에도 중풍 걸리면 꼼짝없이 심하면 똥오줌 받아내야 하는 불편한 삶을 살게 되죠. 그런 상황에 봉착하게 된단 말이죠. 이 사람도 그런 중풍병에 걸려서 8년이라는 기간까지 명시했던 것은 병이 그만큼 절망적인 상태에 까지 도달하게 되었다는 의미죠.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했는데 누가는 자신이 의사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중에 사도행전은 병에 관한 명칭이 다른 모든 성경보다 많이 나옵니다. 의사의 시각으로 보았으니까 남이 보기엔 그냥 어디가 아픈가보다 하는 것을 의사니까 정확하게 의학적인 병명을 말할 수 있었다는 이점이 있는 거죠. 중풍병이 8년이 걸렸다는 것도 그런 의사의 시각으로 바라본 이 병의 상태가 얼마나 절망적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묘사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잠깐 오는 경우라면 그러면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이 아니더라도 인체가 다시 정상을 회복하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잠기 어디에 마비증세가 온 것 같다가 주무르고 이렇게 하니까 다시 나아지더라 이럴 수 있잖아요. 여기서 8년이나 되었고 더군다나 침상에 누웠다 그랬으니까 사실은 기동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그런 중풍병자의 신세가 되었던 것이죠.
그때 베드로가 거기에 도달했을 때 “애니아야! 그리스도께서 너를 일어나라고 명하신다.” 하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애니아에게 병 낫기를 말하자면 명했습니다. 이러한 것은 특별히 사도행전에 많이 나오는 데 사실 이것의 가장 원형은 예수님이 질병을 향하여 명령하실 때 질병이 떠나가던 그러한 것이 예수님의 병 고침이 원형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기도의 변형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진짜로 모든 병든 것과 약한 것을 고칠 수 있는 권능을 가지셨던 예수님 또 그 권능을 부여 받은 제자들이 나아가서 사람들에게 병을 고칠 때에 이런 방법을 사용하였죠. 이렇게 질병을 향해 베드로가 명령하는 것 같이 이렇게 말함으로서 고쳐지는 이것은 이미 베드로 안에 있던 충만한 성령능력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거죠.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이 부활승천 하시고 성령님을 제자들에게 보내어주실 때에 이런 놀라운 표적이 뒤따르도록 만드셨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이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너희에게 도래했다라는 것을 예수님이 가르쳐주시고 싶었던 것이에요. 부분적으로는 그 당시에 오늘날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의료적으로 열악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질병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의미는 구속사적인 의미에요. 사실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 생겨나게 된 고통이 많이 있죠. 그렇지만 이 죄로 말미암아 생겨나게 된 비참한 결과 중에 눈에 띄게 가장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인식되는 것이 뭐냐 하면 질병이에요. 그래서 이 질병은 사실은 죽음과 가까운 것 아니에요. 죽음이 바로 죄의 결과란 말이죠. 그리고 우리들이 경험하는 많은 고통과 악들이 영적인 죽음의 결과의 증상이듯이 우리의 육체의 질병도 또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육체의 질병 또한 이제 그러한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래에 아름다움을 일어버린 가장 분명한 표가 되는 거죠. 그래서 그것들을 어떤 의학적인 도움이 아니라 권능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고쳐나가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새로운 시대가 온 것을 깨닫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멀리는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가깝게는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과 함께 이제 새로운 이제껏 우리를 지배하던 죄와 죽음의 세력이 아닌 새로운 성령과 은혜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라고 하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시는데 의가 있는 것이죠. 그런 놀라운 은혜의 통치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버리시는 생명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죠. 그러한 놀라운 생명과 은혜의 역사 한복판에는 그런 생명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예수그리스도가 계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그 예수그리스도께 승복하고 그분을 의지하고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그런 놀라운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역사들을 베푸신 것이죠. 그 애니아가 나아버렸습니다. 그것을 인해서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표적이라고 하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불러일으키시는 기적적인 역사인데 그 효과가 예수님을 믿는 마음을 갖게 만들어주는 그런 것이 바로 표적 혹은 기사였습니다. 그런 표적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만들어주셨던 것이죠. 이것을 보고 우리들이 바로 앞에 나와 있는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평안해질 때 그를 통해서 선교의 놀라운 역사도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교회가 건강하고 평안하고 든든하게 서가고 성령의 위로가 있을 그때에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는 지체들의 선교의 활동 도 또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서 영혼들이 변화되고 새 생명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역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만큼을 가지고 이 세상을 흘러나갈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끊임없는 은혜의 간구 하나님께서 교회를 붙잡고 세우시는 은혜의 역사 이런 것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