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11일 새벽예배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밖에 섰더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행 12:13-17).
여기서 이제 베드로가 갔을 때에 기도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적고 있습니다. 교회는 함께 모여서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히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한마음이 되고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했죠.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할 때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아주 장렬하게 순교하고 죽어버리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죠. 어떻게 하든지 교회가 베드로를 필요로 하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살려주시고 길을 열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빌었겠죠.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하고 빌었는데 그렇게 기도하던 사람들이 기도가 응답되니까 믿지를 못하는 거죠. 그래서 이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죠. 기도하면서 자기가 기도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굳게 확신하고 또 기도응답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그것을 ‘아멘’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마음한구석에는 열렬하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어도 또 한편으로는 그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그 온전히 기대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의 경우에는 말이죠.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빌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의심했다 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실 수 있는 방향에 대한 이해의 차이라고 할까? 그런 것을 보여주죠. 그러니까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위해서 자신들이 기도할 때 그 베드로를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고 할지라도 이런 방식으로 건져주실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기 굉장히 힘들었겠죠. 그런데서 오는 응답의 의외성에 대한 반응이라고 우리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본문을 비집으면서 ‘아, 이 사람들이 베드로가 살아날 것을 되게 의심하면서 기도했구나!’ 이렇게 판단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방법의 의외성 같은 것들을 깊이 보게 되는 거죠.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모든 방법, 그 지혜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실 수 있는 모든 방식, 그런 것에 대해서 온전히 다 열리고, 그리고 기도 응답이 어떤 방법으로 오든지 ‘아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됐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거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의미일거에요. 이렇게 해서 집에 도달하게 되니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거죠. 그래서 문을 계속 두드리니까 문을 열어주는 거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너무나 놀랐겠죠. 와서 베드로가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건져서 여기까지 인도하셨는지를 상세하게 그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여기에서도 베드로의 태도를 보면서 배우게 되는 것이 있죠. 뭐냐 하면 지도자로서 베드로는 사실 여기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교회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기적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끌어내신 방식에 있어서 전혀 자신에게 주목하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행하신일들을 소상하게 말하므로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고 그 모든 일에서 그분만 인정하도록 사람들에게 간증하는 태도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거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인가 큰 것을 베풀어주시면 그것이 마치 자신이 싸워서 얻은 전리품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기회를 틈타서 자기를 높이는 일을 하기에 열중인 때가 많이 있죠.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께서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간에 높임은 하나님이 받으시고 자신은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을 드러내는 겸손한 신앙의 태도가 필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든, 기도해서 하나님께 얻은 것이든, 자연적으로 타고난 것이든, 또 자연적으로 타고 나지 않았어도 우리가 또 기도하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우리가 꼭 필요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서 공급해 주시거든요. 어떻게 우리에게 오게 되었든지 간에 그 모든 것을 통해서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드러내고 그래서 자신은 그 은총을 입은 사람이라는 것만을 기억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생각나게 하는 것 그것이 참된 신앙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죠. 사실 여기서 기도하던 사람들이 예측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건져내셨을 때 사실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기가 얼마나 기가 막힌 호기입니까? 그래도 베드로는 그것을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일들을 상세하게 진술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베드로인 자기를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거기서 건져내신 하나님을 주목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죠. 이것이 이제 이후에 교회의 모든 신앙의 특징을 규정하는 또 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큰 일이 일어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그러면서 그것을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는 일들은 우리에게 언제나 필요하고 또 있어야 될 일들이다 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