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2일 새벽예배
“그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 11:27-30).
이제 그 이후에 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선지자라는 명사가 나오는데 ‘신약시대에 왠 선지자일까? 선지자는 구약시대에 나오는 선지자들인데 신약시대에 무슨 선지자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신약시대에도 일정기간동안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잠정적인 하나님의 섭리이다.’ 라고 그렇게 해석을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이 있어서 사역을 했습니다. 구약성경이 완성되는 때까지의 시간이 천년이 넘는다고 보거든요. 구약 39권이 그렇게 긴 세월을 통해서 완성되었고 주전 3~4세기경 전까지 사람들에게 ‘이게 39권의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구약성경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주전 3~4세기경 이였습니다. 사실 그것이 종교회의를 통해서 '이것이 우리가 믿는 구약성경이다.' 라고 선언을 한 것은 AD90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계속 형성되는 시기에 있었고 그래서 선지자들이 이제 구약의 율법을 해석해서 그들의 실제적인 삶에 적용시켜주는 작업들을 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경이 있었어도 구약의 시대에 사람들을 이끌어 가시는 방법으로서 왕과 제사장, 선지자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신정통치를 이스라엘 위에 실현하셨던 것이죠.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이 있었는데 신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잠정적으로 선지자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 때문이냐 하면 성경의 형성과 관련이 있다고들 해석을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쓰이기 시작합니다. 54년경부터 쓰이기 시작해서 95년경까지는 마감이 된다. 라고 생각하는 거죠. 구약성경에 비하면 짧은 시간 안에 쓰이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이제 전체적으로 ‘27권이 우리가 믿는 성경이다.’ 라고 확정되는 것은 훨씬 후의 일입니다. 400년경의 이후의 일이 됩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까지 잠정적으로 선지자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었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선지자” 그러면 미래에 일어나는 일을 점치듯이 예언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고 그런 기능이 선지자에게 있었지만 그것은 아주 적은 기능이었고 오히려 훨씬 더 많은 기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그런 사람이 바로 선지자 이었습니다. “예언자”라고 할 때 “선지자” 미리 아는 사람이다. 혹은 “선견자” 미리 보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 그래서 “예언자” 할 때 미리 말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쓰기도 하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예 미리 “예”자가 있지만, 맡을 “예”자가 있어서 예금 할 때 “예”자 잖아요. 말씀을 맡은 사람이라고 번역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사람들이 구약의 선지자들과 아주 달랐던 것은 성령의 시대가 이미 도래 했거든요. 오순절의 성령이 물 붓듯 부어졌는데 그러한 시대에 예언자들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달랐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선지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신이 그들을 감동시켜야만 됐거든요. 그래야지만 그가 제대로 된 선지자의 역할을 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신약시대의 선지자들이 누렸던 성령의 은혜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누렸던 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그런 놀라운 성령의 능력을 누렸던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게 뭐냐 하면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신약시대의 선지자들과 똑같이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사람들 아니에요? 그래서 각종 기적과 표적, 그리고 놀라운 역사, 이런 것들이 선지자들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았어요? 대표적인 사람이 모세, 엘리야, 엘리사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잖아요. 그런데 신약시대의 선지자가 된 사람들은 충만한 성령의 축복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에요. 성령의 시대가 도래 했으니까. 그것을 두고 성경이 뭐라고 말 하냐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 보다 큰 자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도 세례요한보다 클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죽어서 가는 천당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시대가 도래 했을 때 그 직전에 사역을 하다가 죽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가 세례요한이라고 보는 거죠. 그 세례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의 충만한 성령의 능력 속에서 살았지만 그러나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성령시대 속에 살고 있는 신자들은 가장 작은 자라도 그런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맛보는데 있어서 그 사람들보다 세례요한보다 더 클 것이다. 성령시대에 사는 축복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 축복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그 신약시대의 선지자들이 훨씬 더 많은 성령의 능력을 누렸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기적이나 이런 것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비교가 안 되거든요. 죽은 자를 살리고, 그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이건 벌써 세례요한에서 예고가 되는 거예요. 세례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 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실 정도로 그렇게 큰 영적인 축복을 누렸던 사람인데 세례요한이 무슨 기적을 행했어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의 죄를 지적해서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는 그 일에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말씀과 능력이 사용 된 거예요. 이게 벌써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이긴 하지만 예수님의 오시는 앞길을 예비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벌써 구약선지자이긴 하지만 이 사람은 신약시대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서 이 사람이 구약의 선지자이긴 하지만 구약의 선지자와는 연관이 끊어지는 거예요. 달라져요. 그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신약시대의 선지자들은 그런 기적을 행하고 능력을 행해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고 하는 일이 아니라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구약을 잘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그렇게 해서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놓는 데에 이 사람들이 함께 협력했던 거예요. 매우 특별하죠. 지금은 더 이상 선지자가 없어요. 그것으로 끝난거에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이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선지자들이 이렇게 아가보라는 선지자처럼 부분적으로 예언을 하기도 했다 이거죠. 그거는 그때 필요했겠죠. 왜냐하면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으니까 이런 기능들이 필요했다는 거죠. 그때에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 “천하에 크게 흉년이 들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앞으로 될 일을 미리 말하게 되는 거예요. 그랬더니 진짜로 글라오디오 황제 때에 이런 흉년이 들게 되는 거예요. 흉년이 들게 되니까 그 다음에 된 일이 참 재미있어요. 바나바와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헌신된 사람 아닙니까. 천하에 흉년이 들었는데도 아마 유대 쪽에 살고 있는 히브리인들이 훨씬 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모양이에요. 그랬더니 바나바와 바울을 중심으로 해서 이방인의 모든 교회들이 헌금을 했어요. 그래서 그것들을 모두 모아서 바울과 바나바 편에 들려서 그래서 유대에 있는 히브리인들, 흉년을 만나서 끼니가 간데없는 이 유대인들에게 전해주게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많이 모이게 되었는지 바울이 “거액의 연보였다” 그렇게 말할 정도니까 어마어마한 돈을 모아서 유대인들에게 전해주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복음은 유대인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전해졌지만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물질은 이방인들을 통해 모아져서 다시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유대인들에게 흘러들어가게 된 거죠. 그래서 함께 흐르게 된 거죠. 이게 바로 예루살렘에서 성령이 임했을 때 각자 자신의 소유를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주고 그것을 하나로 통용하여 사용하면서 아무것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없는 그런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았던 그것이 유대인끼리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함께 흐르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는 거예요. 이건 아주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에요. 왜 중요하냐하면 ‘이방인에게도 성령 부어주신다’ 하는 것을 예루살렘교회가 보았잖아요. ‘아 그들도 예수 믿게 해서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구나’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이방인이요 우리는 유대인이다.' 라는 것이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흉년을 만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들이 그들을 통해서 함께 흐르게 됨으로 말미암아 생각에 있어서만 ‘우리가 한 형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물질이 흐름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실제로 우리들이 한 형제라고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들어 주셨던 것이죠. 그래서 말이죠. 우리들이 항상 그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형제 되게 하셨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면서 살아갈 때에 그때에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한 핏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하지만 사도 바울의 권고처럼 ‘특별히 믿는 자들에게 더욱 그리할지니라.’ 특별히 믿는 사람들끼리 더욱 그리해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누군가가 어려움을 만나고 형제들 중에 물질이 필요하거나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것을 매우 커다란 축복이요 특권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물질을 나누어줄 때 그때에 아주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에요. 물질뿐만이 아니죠. 다른 것으로도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것을 나게 될 때 하나님의 진정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