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9일 새벽예배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들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쌔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행 12:6-9).
헤롯도 베드로가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베드로를 옥에 홀로 가둔 것이 아니라 군사 두 사람을 넣어서 감시하게 했는데 쇠사슬로 세 사람을 묶어버렸단 말이죠. 이유가 무엇일까요?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죠. 그의 여러 가지 능력 그가 행하는 놀라운 기적들을 보았기 때문에 체포는 했으나 또 도망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쇠사슬로 베드로를 두 사람의 군사와 묶어서 도망가지 못하게 했단 말이죠.
이렇게 해놓았으니까 도저히 도망갈 수 없었고 또 문밖에는 문이 두개나 있고 거기에 군사들이 각각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대로 베드로를 감시하는 사람이 네 명씩 네 패로 되어있으니까 16명이나 되는 사람이 베드로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거죠. 천사가 와서 그 모든 것들을 풀어주고 베드로를 그 감옥 속에서 내보냈거든요. 이일이 있기 전에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베드로가 거기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날이 무슨 날 입니까? 마지막 날 밤이고 이제 내일아침에는 끌어내어서 베드로를 죽이려고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태평하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평화를 보는 거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평화로울 수 있는 사도 베드로의 내면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에요. 그 평안이 어디로부터 온 평안이겠는가? 하는 거죠. 어디로부터 오는 평안이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았고 ‘이제 내가 헤롯의 손에 의해서 죽는다고 할지라도 이제 내가 주와 함께 다시 살리라’ 하는 부활의 소망이 베드로로 하여금 이렇게 깊이 잠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잠은 부정적인의미의 죄악의 잠이 아니라 긍정적인의미의 평화로운 잠입니다. 그런 평화로운 잠에 베드로가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그를 위해 간절히 빌었지만 베드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래서 마음속으로 이처럼 고난을 당하고 죽는다고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나의 육신이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복음에 매여서 살다가 죽고 죽으면 오히려 복음은 전파되고 자신은 부활할 것이라고 하는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죠. 이것이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제 말씀드린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죽는 그 자기죽음의 신앙이었어요. 그 속에서 평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들의 이생에 대한 집착 그리고 우리의 흔들리는 신앙 그리고 산란하고 혼란스러워지는 우리의 영적인 안목, 이 모든 것들은 다 이세상과 자신에 대한 부당한 사랑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 잘못된 사랑들이 우리를 굳게 붙들고 얽어매고 있을 때 우리 안에는 이런 자유 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부 어거스틴도 자신의 글 속에서 이야기하기를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때에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에만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 순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해나기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이처럼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이 세상에 보이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요 또 자신의 생명도 그리스도안에서 영원히 살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생명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이해와 인식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처럼 담대하게 살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 이렇게 베드로가 편안하게 잠들어 있을 때에 베드로는 생사를 초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베드로를 더 살게 하고 싶으셨어요. 어차피 베드로는 자기 자신이 순교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디베리아 바닷가에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젊어서는 띠 띄우고 네 원하는 대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사람들이 너를 띠 띄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니 이는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르치심 이러라’ 이미 예수님께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베드로는 어쩌면 여기에서 죽어서 결국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내 인생을 마치게 되는 구나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를 이 땅에 더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고난을 받고 더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베드로를 필요로 했습니다.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천사는 베드로가 옥에 갇힌 현장에 왔고 그래서 기적으로 그 착고를 풀어주고 그를 지키는 군사를 아직 잠들어있는데 천사는 신을 신는 것부터 옷을 입는 것부터 따라오는 것까지 하나하나 베드로에게 시켰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천사의 지시에 순종하면서 그 옥 속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간절한 기도는 도저히 살아날 가망성이 없는 것 같은 이 베드로를 그 악한 상황 속에서 건져내었습니다. 기도의 위대한 능력,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그 두려워할 줄 모르는 진실한 믿음, 그리고 이둘 위에 역사하시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베드로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없는 일이 없으십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가보면 도저히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봐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난관 속에 우리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옥에 굳게 갇힌 베드로처럼, 그 다음날 죽기로 사형 선고받은 베드로처럼, 군사 둘에 의해서 쇠사슬로 함께 엮어져서 도저히 도망칠 수 없었던 그 사도처럼, 그런 절망적인 상황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때에라도 하나님과 평화하고 이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린 사람들은 놀라운 평강을 맛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 땅에 살아있으면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살고 그리고 이 땅에서 생명을 마치면 주님이 부르시는 데로 간다고 하는 그런 신앙에 굳게 붙잡혀 있으면 그는 삽니다. 하나님이 그를 살리십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의 간절한 기도가 이러한 놀라운 일들을 불러왔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상황은 혹시 이런 상황 아닙니까? 옥에 갇힌 베드로처럼 상황에 갇히고, 군사들에게 사슬에 매인 것처럼 벗어날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고, 날이 새면 사형대에 끌려가기로 작정되어 있던 베드로처럼 이미 절망적인 상황 속에 떨어진 그런 사람들은 없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그 속에서 살리셨던 것처럼 오늘도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이끌어내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