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새벽예배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행 15: 36-41)
녹취자: 김용재
그렇게 해서 안디옥에서 이제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인 그 안디옥에서 많은 사람에게 예루살렘 교회에서 결정된 이야기들을 전해주었습니다. 기뻐하고 교회는 은혜에 넘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결정에 대해서 동참하고 좋아하면서 한 교회를 이루어갔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바울이 바나바에게 우리들이 계속 선교만 할 게 아니라 이미 세워놓은 우리 교회들을 우리가 가서 하나하나씩 돌아보도록 하자고 합니다. 그런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안의 이면에는 틀림없이 여태까지는 끊임없이 선교의 필요를 느껴서 선교를 했는데 선교를 하고 나면은 사도들이 다른 곳으로 다시 선교를 하러 가지 않습니까? 선교를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세워놓고 말씀 전하는 사람들을 세워놓은 다음에 그 다음에 다시 다른 곳으로 선교하러 나가는데 이런 방식을 취하면서 계속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특별히 이 예루살렘 교회에 이방인들 선교의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그 전에는 많은 혼란들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미 세워진 교회들이 올바르게 자라는지를 한번 잘 살펴보고 그리고 점검해야 할 그런 필요를 절대적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안디옥에 사용했던 것과 똑같이 흩어져 있는 교회들에게 가서 그 교회들에게 이런 율법을 지키는 문제와 같은 문제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교회를 다시 다독거려서 모든 것들을 올바르게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타오르는 불에다가 기름을 끼얹듯이 돌보는 것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교회에 이런 은혜를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직접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보고 우리가 이미 세워놓은 그 교회들을 같이 돌아보면서 굳세게 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큰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마가라는 요한이 있는데 이 사람을 같이 데려가자 하고 바나바가 제안을 하니까 바울이 펄쩍 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과거에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전도여행을 하다가 무슨 일이 있는지 힘드니까 바울과 바나바 일행을 내버려 두고 대열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물론 바울의 허락을 맡고 이탈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위해 참지 못하고 지도자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고 전력이 있는 사람을 데려가면 안 된다. 바나바가 그러면 안 된다 데려가자 그러면서 둘이 심히 다투게 됩니다.
사실 바나바와 바울은 다툴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왜냐면은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일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둘이 함께 사역을 해왔고 바나바는 바울이 회심했을 때 그 이전의 전력이 바리세인 이었고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회심을 해도 교회가 이 사람의 회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나바가 바울을 만나본 후에 바울의 회심이 진실한 거라고 하는 것을 예루살렘 교회에 진언한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그 당시에 이미 예루살렘 교회에 저명인사였고 사울은 이제 막 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교회의 비중이나 지명도에 있어서 뛰어난 바나바의 도움을 받아서 바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지게 됩니다. 사람이 훌륭하고 하나님이 쓰셔도 누구든지 다 결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바울은 성격이 급하고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바나바와 다투면 안 됩니다. 그런데 어쨌든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인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숙한 면을 말입니다. 바나바는 이름 자체가 권면하는, 권하고 위로하는 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권면하고 위로하는 자의 아들이라 그런 뜻인데 그렇기 때문에 권면하고 위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과거에 과오가 있더라도 한번쯤 덮어주고 그를 잘 위로하고 격려해서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사람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고 이렇게 한 결과 마가요한이 결국은 전도여행을 잘 끝내지 않습니까? 이런 걸로 미루어 볼 때 바나바의 판단이 훨씬 옳았다고 할 수 있고 바나바는 사람을 잘 세우는 지도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툰 것은 잘못된 것이었지만 두 가지 좋은 점이 생겨나게 됩니다. 첫째는 이 사람들이 다퉜지만 그 이후에 다시 또 결합을 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다툼은 서로에게 큰 교훈이 되었을 것이어서 좋고 두 번째 교훈은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신라와 함께 바나바는 마가요한과 함께 갈라져서 갈라져도 결국 똑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이 다르니까 우리 둘은 따로 일을 하자 그 대신 각 교회를 돌아서 우리들이 선교하는 교회를 굳세게 하자하고 갈라집니다. 다투지 않았다면 한 팀이 되어서 돌았을 텐데 둘이 갈라져서 돌게 되니까 더 많은 교회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서 돌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툰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커다란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팀이 가서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을 둘로 나누어서 배나 많은 교회를 돌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러면서 그들이 신앙 안에서 잘 자라는 교회가 세워져 가는 이런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이걸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받으시고 더 많은 영광을 하나님께서 기 교회를 위해서 사역하는 이들을 통해서 거두 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걸 통해서 우리가 배우게 됩니다. 우리들이 때로는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를 때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 자체가 우리들이 기도하면서 각자 다른 관점에서 주님을 의지하다 보면 서로를 깨우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 인간이 측량 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아주 선하게 하나님께서 일들을 이끌어 가시고 결말을 지으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교에 힘쓰고 선교하는 교회들을 끝까지 잘 돌보기 위해서 마음과 뜻을 다하여 헌신하는 이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굳세게 세우시는 놀라운 역사를 저희들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