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시 20:4-5).
본문 속에서 시인이 비는 축복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비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언약 백성들을 향하여 비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들을 축복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성도들은 서로 서로 다른 사람의 복을 비는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고 다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마음 아파하십니다. 언약 백성들은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그 자비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서로를 축복해주며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시인도 그렇게 저들의 축복을 빌고 있습니다.
언약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받는 최고의 축복은 무엇을 기도하든지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도 신명기를 통해 이를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언약 백성들인 이스라엘이 누리는 축복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이 얼마나 정확한 관찰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할 때에 잘 들어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특별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분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다윗이 자기의 백성들을 축복하면서 가장 간절하게 비는 제목이 바로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은 아주 포괄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직까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말은 아직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 기도 속에는 인격적인 교제가 있고, 교제 속에서 맺히는 응답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이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비는 기도의 제목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저희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원은 육욕적이고 정욕적인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받아들이고, 그 부르심을 따라 살려고 할 때 필요한 도우심입니다. 그런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 안에서 품고 있는 소원이 이뤄지도록 함께 빌어주는 것이 공동체의 아름다움입니다.
둘째는 승리를 빌고 있습니다. 시인은 전투적인 삶을 빗대어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승리가 곧 시인 자신의 승리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씨름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그들의 삶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각자에게 놓인 그 상황 속에서 저들이 승리하길 원하며, 온 마음을 다하여 애쓰며 싸우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승리를 빌어주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들이 일이 나의 일인 것처럼 실패할 때 함께 아파하고, 승리할 때 함께 기뻐하면서 말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깃발을 높이 들어 그 땅을 차지하였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 깃발을 보고 군사들의 사기가 충천하여 또 다시 전진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 깃발이 되게 하십니다. 신자의 삶은 매일 매일 전투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와 싸우고,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 승리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꿈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하며 매일매일 살아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