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셀라)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시 21:1-3).
본문은 제왕의 찬송시입니다. 이 시는 하나님께 속한 많은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 백성의 왕으로서, 보다 더 큰 왕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시입니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세 가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인하여 기뻐한다는 것이었으며, 그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존귀하게 하셨다는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드린 찬양은 기쁨입니다. 한 나라의 왕의 영광은 힘입니다. 힘이 없으면 왕이 있어도 왕일 수가 없지요. 왕은 자신의 나라에서 자신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슬하의 모든 백성들이 자신에게 복종하고, 왕으로서의 통치 질서가 한 나라에 서게 됩니다. 만약 그런 힘이 없다면 나라는 서 있으나 이름만 왕이지 다른 사람에게 실제적인 그 통치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라고 불렀으나 실제적인 힘은 일본에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실제적인 통치권을 가지지 못한 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인은 왕으로서 모든 힘과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보이는 나라의 왕이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세계를 통치하시는 보이지 않는 왕이심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왕이시지만 그분이 실제로 이 모든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 그 자체가 신앙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그의 자녀, 그의 나라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 되신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는 자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그 힘을 기뻐하고 자랑하는 자, 자신이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하나님의 힘이 작용하는 것과 같은 방향인 자가 아닙니까?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자만이 이를 즐거워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고자 하는 방향을 거스르며 자신의 육욕에 따라 살면서 하나님께 복 받기를 바라는 자는 하나님의 낯에 침을 뱉으며 손을 내미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시인이 이렇게 그 기쁨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큰 능력이 더 많이 나타나면 날수록, 더 크게 나타나면 날 수록 그는 더욱 더 기뻐 찬양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제쳐두고 하나님의 복을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순종하며 살 수 있도록 우리는 늘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 죄악과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릴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두 번째 드린 찬양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성도들이 살아가는 방향을 바르게 잡아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이런 말을 해줍니다. “자네가 기도 많이 하고 결정하는 것보다 그 문제에 대해 많은 기도는 안했지만 내가 결정하는 바가 더 옳을 때가 많거든…” 무슨 말입니까?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정서와 마음과 의지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전폭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향하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그러하기에 문제를 만났을 때 그가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 해도 올바른 결정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것이 거의 없이 온전히 순종하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순간적인 결정이 앞에서 언급한 그러한 신자들이 오랫동안 몸부림치며 기도하며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올바를 때가 있습니다. 택시를 기다리는 자는 버스가 몇 대가 지나갔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수없이 떠내려가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들은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의 벼랑 끝에 서게 되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나, 그렇게 될 때까지 그 사람들은 기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위기 때에 부르짖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 하늘을 솟아오르는 듯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통회와 간절한 간구, 악을 향한 분노,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모든 대적들을 향한 말할 수 없는 슬픔 같은 것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길을 걸어가는 자들에게만 가능한 일들이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쳐 줘도 단순한 처방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하나님 앞에 너무나 신실하게 사는 자, 그분을 사랑하며 온전히 순종하는 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소원만 품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워낙 돈독하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그 필요를 채워주지 않습니까? 사랑은 그 마음을 헤아리게 해 줍니다. 왕이 바로 하나님 앞에 그런 경험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복종하며 살아가는 그 행복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드리는 찬양은 하나님이 자신을 존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명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깊이 순종하는 자, 다시 말해 누구든지 주님을 높이는 사람들을 주님은 높여주십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아버지에게도 별로 인정받지 못한 채 들판에서 짐승이나 치던 자가 아닙니까? 이 이름 없는 목동의 영광과 오늘 한 나라를 통치하는 왕의 영광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당신께만 순종하는 사람들을,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그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며 한없는 영광을 돌리는 사람만을 높여주십니다. 반대로, 그렇게 높여주신 것을 알지 못하고 대적하며 불순종하고 감사할 줄 모를 때,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더 이상 영광을 받으시지 않으시고, 그를 높이지도 않으십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신을 높여 주신 것을 늘 감사하는 자들은 정말 높여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행복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많은 진리의 빛과 하나님의 사랑의 그 불을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는데 그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분에 넘치는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짐승 같은 우리를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봉사하며 살아가게 하신 것, 아니 성도로서 살아가게 하신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어느 연로하신 권사님 한 분이 설교 마치고 교회 문 앞에 서서 인사를 하던 제 손을 꼭 잡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많이 늙긴 하였지만 역사에 기여하는 사람이 꼭 되고 싶습니다. 제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새벽에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젊음도 가졌고, 그분을 섬길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허망한 삶들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영광스러운 자녀의 명분, 썩지 않는 하나님 나라 위해 봉사하게 하신 것을 아주 존귀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십시오. 한 나라의 장관의 자리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은 것, 이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것을 귀한 줄 알고, 자기를 존귀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이 시인이 왕으로서 감사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를 부끄럽게 하려고 한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았습니까? 어릴 적에는 형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형들을 모두 부끄럽게 하시면서 다윗을 한 나라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사울이 그를 미워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낮추시고 도망자에 불과했던 다윗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전쟁에서도 어디를 가든지 그분으로 말미암아 다윗을 승리하게 하심으로써 그를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압살롬을 피해 도망갈 때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윗으로 하여금 깨닫고 연단 받아 더 정련하기 위함이었지 그를 버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원수들은 하나님이 그를 버리신 것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밀려오는 말할 수 없는 신앙의 감격,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은 늘 그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늘 기뻐하며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늘 높여주십니다. 가끔 이렇게 높여주실 때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처음의 겸손함과 감사와 찬양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를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서 인생의 위기나 왕국의 위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항상 주님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어떤 인간이었을까를 늘 생각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이름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밖에서 복을 꿈꾸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자궁 외 임신된 태아가 반드시 죽듯 하나님 밖에서 잉태된 모든 소원은 사산될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 잉태된 것이어야 하며, 그분의 나라에 기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