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가진 그대에게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하고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줄 들어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 하여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송사하는지 알고자 하여 저희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 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송사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를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보병이 명을 받은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이튿날 마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문으로 돌아가니라 저희가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줄 알고 가로되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행 23: 22-35).
I. 본문해설
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과 종교적인 신념이나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이 사람을 죽이느냐 말입니다. 이것은 이제 잘못 된 것입니다. 설령 바울이 옳지 않고 잘못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주 부정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40명이 목숨을 걸고 매복하고 숨어서 그를 종교적인 재판을 받기 위해서 올 때, 살해하고자 하는 이런 음모를 가진 이것은 정말 잘못 된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적으로도 이렇게 하면 안되는 게 율법을 따른다고 한다면 이들이 먼저 사람을 죽이기 전에 먼저 판결을 받아야합니다. 그렇게 증인을 세워서 판결을 받게 되어있는데 이 사람들의 경우에는 아예 그런 것을 무시하고 죽여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종류의 신앙의 태도들이 지금도 우리들이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목적이 옳다고 생각하면 여기서는 옳지도 않지만, 목적이 옳다고 생각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서 어떻게 하든지 그 목적을 이루고야 마는 그런 종류, 그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이것은 아주 매우 그 잘못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오늘날 같이 이렇게 복음의 시대에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들을 야비한 방법으로 완력을 행사하고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입니다. 어느 시대이던지 간에 잘못 된 길을 이 길이 그거라고 믿고 목숨을 거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진리 편에 서있는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고난을 받고 당하고 또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그 하나남의 섭리를 하나 발견하게 됩니까?
그 이야기를 누군가가 와서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가슴이 덜컹 내려있는 사람은 천부장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유대인하고 부딪히게 되면 대대적인 말하자면 마찰을 빗게 되고, 그래서 유대인들이 로마가 지배하는 민족들 가운데 가장 독특한 민족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하여튼 유대인들이 있는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서 가면은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든 지역 이였단 말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불상사가 일어나서 유대인들이 다치고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민족주의에 호소해서 그 사람들이 일어나면 반란이나 봉기도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것들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민족이었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면 자기는 정치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가슴이 덜컹 내려 않은 것입니다. 더군다나 죄수가 로마 사람만 아니면 죽어도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만약에 로마사람이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해서 죽었다면, 만약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자신은 정말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백부장 둘을 불러서 그래서 상당히 많은 군사를 400명이상의 군사를 동원해서 그래서 마차를 태워가지고 이렇게 해서 이 사람을 호송하게 된 것입니다.
II.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A. 하나님의 보호
여기서 발견하게 되는 바는 뭐냐 하면 첫째는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하나님의 보호! 사명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죽게끔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보호하셔서 그래서 생명이 하나님 당신께 주관하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깊이 역사하셔서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개입하시고 간섭하셔서 그래서 바울을 해치려는 무리들로부터 바울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을 살면서 관점을 이런 식으로 가져야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보호하고 나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싶은, 아직은 이 땅에 더 살게 하시고 싶은 사람으로 그렇게 생명이 있는 날 동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보호해주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주님의 장중에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장중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주신 소명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라 이렇게 인정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해서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된 생활이라고 말할 때 그 복된 생활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삶, 어디에 있든지 나는 지금 하나님과 평화합니까? 무엇을 하던지 지금 이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까? 이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호를 받으면서 이제 그 사도바울이 호송이 됩니다. 그러면서 벨릭스라는 총독에게로 이 사람을 보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서 이제 상소를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러니까 벨릭스 총독에게 보내고 그다음에 총독의 심문을 거쳐서 황제에게 까지 호소를 하게 되는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집요하게 사도바울이 벨릭스에게 그리고 나중에는 다시 황제에게 근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이처럼 거기에 재판 받으러 가는 과정에서 수 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됩니다.
B. 복음을 전파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심판을 받겠다고 하는 이유는 결국 무엇 때문 인고 하니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자기가 믿는 예수 신앙을 그렇게 일목요연하게 예기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지난번에도 봤지만은 유대인들이 수없이 모인 속에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왜 그 구약의 완성인가 하는 것을 설교했습니다. 이것도 하나에 그 설교한 내용들 중에서 핵심만 모은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원래 설교는 이것보다 훨씬 길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수많은 유대인들이 귀를 기울이면서 들었는데 그렇게 전파 할 수 있는 기회가 싶지 않았습니다. 듣기도 전에 핍박하거나 죽여 버리거나 반발을 하거나 하기 때문입니다. 근데 그 재판의 기회를 얻으니까 거기에서 정식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그것을 복음을 전파하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복음 전파하는 기회로 삼았고,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불러서 이방과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택하시고 그렇게 하라고 주신 사명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주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서 그렇게 말하자면 재판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이게 이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너희가 복음을 전파하라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전파하라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자신의 사명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근데 그 모든 삶의 상황들을 자신에게 맡겨진 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완수하는 도구로 삼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C. 열심을 주심
두 번째는 보호 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위해서 그에게 열심도 주십니다. 꺾이지 않은 그래서 사명을 가진 사람들은 환경에 의해서 쉽게 꺾이지 않은 열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불충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게 내 사명인데, 해야 할 텐데 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 환경에 의해서 꺾이고 자기 자신의 마음의 생각에 의해서 스스로 무너지는 이 일들을 반복하면 그가 비록 사명을 버리고 세상으로 도망가진 않아도 정말 자기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온전히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꺾이지 않은 열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꺾이지 않는 열심을 위해서는 항상 내 마음에 은혜의 불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 사람들만 고난 속에서나 시련 속에서나 꺾이지 않는 열심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III. 결론과 적용
순탄하고 좋은 여건이면 그것을 가지고 잘 활용해서 순탄한 길로 갑니다. 또 그렇게 순탄한 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이룹니다. 고난과 시련이 닥치면 그것을 사용해서 또 하나님께 복음을 전하는 귀한 기회로 활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 길을 걸어갑니다.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모든 관심이 말하자면은 이 복음을 전하는데 자신을 다메섹 가는 길에서 만나주셔서 자신에게 주신 그 본래의 사명대로 그 본래의 사명에 부합하게 살도록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들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사명을 매일매일 이루어 가는 겁니다. 이게 바로 주님이 불러주셔서 사명을 맡겨주신 사람의 삶입니다. 여기로부터 떨어지면 우리는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에게 바울과 같이 이런 엄청난 사명을 커다란 크기의 사명을 맡겨 주시진 않으셨지만 하나님이 내개 주신 사명이 무언가, 그리고 하나님이 아직도 그 일을 이룰 시간들이 남았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내 육체를 살리시고 또 내 영혼을 보호하시고 이렇게 하면서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