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속의 탄원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거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시 6:1-4).
다윗의 시중에서 이 6편은 참회시에 속합니다. 참회시라고 하는 것은 다윗이 통절하게 하나님 앞에 참회하며, 그 참회의 내용을 시에 담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죠. 참회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앞에 회계하는 것이니깐, 이 참회시속에서는 대부분 자기죄의 고백과 구원에 대한 탄원 응답에 대한 감사 그리고 용서해주신 자로서의 삶의 결단 이런 내용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사실 이 6편이 언제 쓰여진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 들이 있습니다. 마는 일반적으로 시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6편은 아마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범죄하고 난 후에 징계가운데서 쓴 것이다 그렇게 들 생각을 합니다. 시인은 우리가 읽은 본문 맨처음에서 자기를 징계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앞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징계라고 하는 것은 둘로 나눠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사물들의 질서를 이용한 징계와 그리고 영혼에 대한 징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물들에 질서를 통한 징계하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반 섬리속에서 사람에게 사물들의 질서를 자신이 원하지 않게끔 움직여서 주는 징계에요. 대게 환경의 고통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하는 거죠. 그래서 이 하나님의 징계가 이루어 져요. 대부분 우리들이 하나님앞에 징계를 받을 때에는 고통을 겪게 되잖아요. 환경의 고통을 겪에 되잖아요. 이런것들이 바로 하나님의 징계의 한 방법이에요. 두 번째는 영혼에 대한 직접적인 고통을 주시는 징계에요. 오늘 이 시인의 경우가 바로 그거 거든요. 선지자 나단에 의해서 다윗의 죄가 들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즉시로 사물들의 질서를 흐트려 트려서 고통을 주신 것은 아니에요. 왕국도 그냥있었고 왕위도 그냥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영혼에 의 한 고통은 즉각적으로 시작이 되었고 이미 나단 선지자가 자기에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기 전에도 고통이 시작됬지만, 나단 선지자가 선포하고 난 후에는 더 강력한 고통이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징계받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내가 수척하였습니다. 그러니깐 이미 벌써 그런 일이 있고 여러날 지난 속에서 이 시를 기록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죠. 식음을 전폐하고 자신의 죄로 인해서 슬펴하는 가운데 시인은 바짝 여위여 갔고 그래서 결국은 피골이 상접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회개라기 보다는 하나님앞에 느끼는 그러한 가책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 이런것에서 오는 깊은 번민이 그를 이렇게 수척하게 만들었습니다. 용서의 확신을 통한 그런 커다란 하나님의 자비 은혜 이런 것들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징계하래있는 큰 고통이 이미 계시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을 느끼며, 육신이 수척해 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뼈도 떨리고 영혼도 떨린다고 고백을 했는데, 이것은 커다란 고통을 의미하는 거거든요. 뼈들이 떨린다고 하는 표현이 성경에 몇 번 나오는 데 이게 대게 두려움과 관련되서 나옵니다. 두려움. 그래서 여기서 나오는 나의 뼈가 떨린다 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뭘 의미하냐며는 징계아래 있는 이사람에게 임하는 심판의 깊은 두려움 이것은 대부분 양심의 가책과 관련이 되요. 무엇으로도 회소가 되지 않고 자신의 뼈가 떨릴 정도까지 깊이 고통을 받는 그런 상황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깊이 고통을 받으면서 이 뼈가 떨리는 고통을 받는 것이요. 이것은 양심의 강력한 가책을 동반한 그런 심적인 고통이 육체에 까지도 반영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많이 근심하면 뼈가 썩는다고 까지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많은 근심은 우리의 골수를 상하게 만들고 우리의 육체적인 기력을 아사가요. 시인이 하나님앞에 지은 죄 때문에 이런 깊은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죄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선택을 하게되면 그 당시에는 자유로와서 그것을 선택을 하는 데, 또 선택을 할 때 우리는 자유를 느끼게 되죠. 그러나 그렇게 죄를 범하는 즉시 우리의 영혼은 속박을 받게 되는거에요. 그래서 인간의 가장 행복한 상태는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계명을 넘나들지 않고 그 계명 안에서 살 때, 그때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계명을 넘나드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려고 생각을 하게되면 그다음에는 일생 동안을 그 죄의 사슬에 메인 체 살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오늘 시인이 그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 했다고 하지만, 다윗은 한나라의 임금이었습니다 동양에서 이 왕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의 대통령과는 틀리고 왕이 되며는 그 나라 전체가 자기의 제산이에요. 이것을 가산제 국가라고 불러요. 그리고 거기에 있는 모든 신하들은 자기네 집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고 거기에 있는 모든 백성들은 자기의 땅에서 빌붙어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깐, 당연히 그 모든 나라도 자기 제산이고 사실은 거기에 붙어 사는 모든 백성들은 자신의 종과 다름없죠. 이런 일들은 동양의 가산제 국가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왕이 원하는 데, 그런데, 다윗은 지금 이일로 인해서 큰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의 왕은 그렇게 살수 있을지 몰라도 다윗은 그렇게 살면 안되었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그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다윗은 성도 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살아갈 때, 이 삶의 잣대를 우리가 이세상 사람들의 잣대를 가지고 우리들의 인생의 규범을 삼으면 안되요. 그들의충분이 할 수 있는 것도 우리는 할 수 없어요. 또 반대로 그들은 할 수 없는 것인데 우리는 해야 하는 것도 있어요. 새사람에게는 새 규범이 필요해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들이에요. 새사람이 새 규범을 따라서 살아야지만, 행복할 수 있지 만약에 그 새사람이 만약에 옛규범을 따라서 살게 되며는 그러면 인제 인생은 매우 불행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매 순간 하나님앞에서 살아가는 거죠. 그런 것을 보여주는 거거든요. 그래서 오늘 성경은 이 시인이 육신의 뼈가 떨린다고 고백을 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의 영혼도 떨린다고 고백을 하는 거에요. 육신은 심오한 양심의 가책으로 떨리고 여혼은 하나님의 은총을 하나님이 거두셨기 때문에 하나님없는 상태에서 영혼은 떨고 이렇게 되는 거죠. 그때에 시인의 마지막 기도가 뭐냐하면, 돌아와 주십시오. 그래서 내영혼을 다시 구원해 주십시오. 신자가 죄를 지을 때에는 오웬에 표현에 의하며는 그 순간 하나님을 버리는 거에요. 죄를 선택해서 죄의 기쁨을 누리는 순간 신자는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죠. 신자가 죄를 선택하는 그 순간 신자는 죄도 얻고 하나님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것은 죄의 속임에 불구하고 죄를 선택하는 그 순간 그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요. 죄의 즐거움이 지나고 하나님의 징계가 시작하면 그는 두려움속에 깊이 떨게 되죠. 그러면서 하나님앞에 두려워하게 되죠. 그래서 육신적으로는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서 떨리고 영혼은 하나님의 은총을 거두심으로 떨게되는 거죠. 그때에 유일한 대안은 하나님자신이 오시는 거죠. 왕국이 커지는 거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위로하는 거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자기에게 돌아오시는 것, 그래서 역설적으로 신자는 하나님을 잃어버림으로서 하나님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요. 그래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 올곧음으로 하나님을 꼭 붙들고 인생의 길을 걸어 가려고 했었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에요. 왜냐면, 그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만이 가장 귀하신 분이고 하나님 만이 가장 소중한 분이시라고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물론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된 것은 아니죠. 그러나 참회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일생동안을 주님의 손을 붙들고 살았던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오늘 시인도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이 깨뜨려진 다음에 그다음에 자신의 뼈가 떨리고 영혼의 떨리는 경험을 통해서 얼마나 하나님없이 살아가는 것이 비참한것인가 하는 것을 뼈져리게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오히려 다윗에게는 이런 타락고 징계의 경험이 일생을 하나님앞에 거룩하게 살아가는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죠. 이것은 우리에게 아울러 복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죠. 참회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건지시고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오늘 이시간에도 하나님앞에 간구하고 기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시간에도 저희와 함께 해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귀한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그사랑안에서 사는 것을 기뻐하고 복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