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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새벽예배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건져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셀라)(시7:1-5)
녹취자: 박은경
이것도 고통 속에서 시인이 탄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급하고 어려웠는지 시인은 하나님께 자기를 구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신자가 이 세상에서 환난을 만나거나 고통을 당할 때 누구에게로 피해야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뜻을 다 들이는 그런 종류의 신앙생활이어야 합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을 보면 집에 우환이 계속 닥치고 질병이 들게 되면 견디다, 견디다 힘들면 무당을 찾아갑니다. 괜찮다, 우리 신이 보호해 줄 것이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대부분 굿을 하라고 합니다. 점을 보는 것은 푼돈이면 되지만 굿을 하면 판이 커집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정도에 따라서 얼마짜리 굿을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굿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굿하기 전에도, 상황이 다 끝난 후에도 우리는 그 무당이 섬기는 신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당한 우환과 어려움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무당에 의해 드려지는 굿 속에서 무당이 어떤 신과 교통을 하든 우리는 사실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우환이 물러가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신과의 인격적인 관계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도 자칫 잘못하면 그렇게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을 많이 당한 것을 자랑하고 간증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론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으니 그것은 귀한 체험이고 또 훌륭한 체험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계속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은 신앙생활이겠느냐는 것입니다. 환난을 만나면 하나님을 만나고 끝나면 다시 미끄러져서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을 찾지 않고 다시 치열한 환난을 만나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 과연 좋은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시인은 지금 큰 환난을 만나고 원수로부터 고통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시련을 만남으로 새롭게 수립되는 관계라기보다는 하나님과 평소에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다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환난과 시련의 때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때에는 더더욱 하나님 바라보아야 하겠지만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시인처럼 환난을 당하고 고난을 만나도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모든 구간 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드리는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2절, 3절에서부터 7절까지 내려 가 보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입증하는 방식이 부정적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원수들이 자신을 공격할 때에 이렇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가르쳐 주는데, 첫째는 신자는 시련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일 훌륭한 신앙은 아무런 환난과 시련이 없어도 그 속에서 진리를 바라보고, 그 진리 때문에 행복해 하고, 그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평안하고 어려움이 없으면 마음이 뒤로 물러가기가 쉽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둔해지고 우리의 삶이 어두워집니다. 이렇게 마음이 둔해지고 어두워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시시때때로 우리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권하시고 양심을 일깨우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셔서 그 시련 속에서 우리자신을 돌아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시인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돌아보도록 시련 가운데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물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고 그 분의 뜻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계획과 뜻 가운데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환난과 시련을 만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과 동물이 다른 것은 고통을 받을 때 그 이유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런 고난이 왜 닥쳤을까, 그리고 이런 일이 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환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아 온 사람들은 더 많이 하나님을 의지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시인은 만약에 내가 이렇게 잘못 했다면 원수가 자신을 공격할 때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게 내버려 두시옵소서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뻐기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환난을 당하기 전에도 얼마나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으며 세월들을 보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부르짖고, 간구하고, 매달리는 것을 여기에서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떠해야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구약에서, 특히 사사시대의 역사를 보면 환난을 당해서 멸망을 당할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대부분의 고난이 죄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용서해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용서해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락하고 고난이 오고 또 부르짖습니다. 이 사이클이 계속 반복 되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의 가장 어두운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생각이 없이 신앙생활하면 안 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사이클 속에서 신앙생활 할 때에는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았을 때 뒤로 물러가고 미끄러지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인간 속에 죄에 대한 욕망은 상대적으로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정말 좋은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의 환경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도 매일 나를 찌르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를 돌아보고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등졌던 삶을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고 방향을 잃고 가던 우리의 삶이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을 잡게 되고 자기 깨어짐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는 변화를 계속 겪으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