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에 대하여 드리는 기도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 10:1-4)
녹취자 : 김세나
시편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기는 한 데 하나님을 향해서 아주 무례하게 보이는 그러한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자면, 여호와여 깨소서.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여호와여 주무시나이까.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고 되어 있는데, 마치 하나님이 무슨 태만한 잠에 빠진 것처럼 주무시나이까, 깨서 일어나소서 등등의 표현들을 쓰는 거죠. 성경을 기록할 때에 이 성경 말씀을 보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또 그것을 기록을 하는 사람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읽고 보는 상대도 사람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두 개의 관점 사이를 오가면서 성경을 기록을 합니다. 하나의 관점을 본질적인 관점이라고 한다면, 또 하나의 관점은 현상적인 관점이에요.
예를 들자면 이런 거죠. 아침이 되면 그 날이 환하게 밝아 오고, 낮이 되면 저녁이 되면 이제 해가 지죠. 그런데 이제 본질적으로 보면 본질적으로 보면 사실은 해가 움직이는게 아니라 지구가 움직이는 거거든요. 지구가 움직이는 거예요. 해는 안 움직이는 거니까 지구가 움직이는 거예요. 해는 가만히 있고 지구가 움직이는 것인데, 이렇게 지구가 해는 가만히 있고 지구가 움직이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은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움직인다고 이야기 하거든요. 지구가 한 바퀴 자전을 했다고 하는 것은 본질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그 다음에 다시 동쪽으로 떠오른다는 것은 현상적인 이야기가 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현상적인 것은 본질은 잘 모르지만,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 잘 아는 바이고 그리고 본질적인 것은 현상은 그렇지만, 사물의 본래의 사실들이 원리가 어떠한가를 본 거거든요. 이러한 것들이 서로 교차하는 거죠.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이시죠.
그런데 이제 많은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은 그 하나님께서 왜 그런지 자신들을 돌보시지 않으시는 것 같은 그런 시간들을 현상적으로 경험할 수가 있거든요. 그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이 악인에게 고통을 받을 때 경험하는 현상들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거죠. 그래서 사실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 분이시지만, 왜 그런지 자신들은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혹은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데, 고난과 시련이 닥치고 악인들이 앞잡이를 하고 한 없이 괴롭게 하고 그리고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난과 압박을 가하고 그리고 시련이 닥쳐와요. 이렇게 그 고난과 시련이 닥치고 어려움들이 막 찾아오게 될 때에 원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빨리 간섭하셔서 자기는 건져 주시고 악인들은 멸하셔서 그래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보여주시기를 원하는데 그 일이 잘 일어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런 상황에서 조급해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어찌하여 숨으시나이까 비슷한 표현이니까요. 어찌하여 나의 현실을 외면하신 것처럼 하나님 당신의 공평을 펴시지 않으십니까. 기도하는 거거든요. 그러면서 시인이 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 악인들이 처처에 횡행하고 믿는 하나님의 자녀를 박해하는 것을 모르시거나 못 봐서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뜻, 하나님의 더 큰 뜻이 있으시죠. 그래서 하나님이 무엇인가 일들을 이루어 가고 계시거나 혹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더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게 하심으로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건져 주시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놀랍게 그들을 변화시키시려는 그런 마음과 뜻을 하나님께서 보이고 계시는 거죠.
그러면서 두 번째 나오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빠지게 하소서. 악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인간이 걸어가야 할 큰 길을 택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생각해낸 수많은 인생의 꾀들을 따라 가는 거예요. 그러한 꾀들을 따라가는 그러한 꾀들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간단 말이에요. 그러한 꾀들을 따라서, 그러한 꾀들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을 그러한 꾀들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을 이 시인들이 그런 꾀들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을 이 시인들을 그 압박하고 핍박하는 악인들이 행하는 거죠.
한 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게으름이라는 설교 시리즈를 할 때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은 항상 똑바른 길을 걸어가려고 애를 씁니다. 인생을 살면서 무엇인가 자신의 실수로 인하여 잘못되었을 때에도 정면으로 승부를 하려고 한다 이거죠. 잘못했으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때는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사람에게 뭔가 잘못한 게 있으면 정식으로 그 사람에게 용서를 빌고 그리고 자기는 그렇게 나쁘게 의도하지 않았는데 일이 뭔가 잘못되어서 편법으로 흘러갔으면 즉시 그 편법으로 가기까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정도를 간단 말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안 해요. 항상 쉬운 길을 걸어가려고 해요. 편법, 불법, 그 다음에 양심을 속임,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적은 힘을 들이고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자꾸 찾아요. 그런 식으로 길을 걸어가려고 해요. 그게 바로 악인들이 걸어가는 길이에요. 그 길은 쉬워요.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올바른 길을 똑바로 그리고 정해진 원칙을 따라서 인간의 도리대로 걸어가는 사람들은 항상 고난을 당할 때가 많단 말이에요. 그러한 점에서 악인들은 하나님의 자녀, 의로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 인생을 승부할 때 항상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처럼 보여요. 왜냐하면 그들이 쓸 수 있는 방법은 굉장히 많고, 그리고 한 쪽은 쓸 수 있는 방법이 정해져 있어요.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거의 비슷한 힘을 가지고 둘이 같이 경기를 하는데, 한 사람은 전혀 반칙을 쓸 수 없고 규칙대로만 경기를 해야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얼마든지 반칙을 써도 괜찮다고 하고 경기를 진행한다면, 그 경기가 누구에게 유리하겠어요.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반칙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잖아요. 유리하잖아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 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자기도 그렇게 살고자 하는 유혹을 계속 받는다는 거죠. 유혹을 계속 받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42.195Km 마라톤을 하는데 한 사람은 계속 뛰어야 하고, 한 사람은 가끔 자전거를 타도 괜찮다고 만약에 한다면 그 누가 이기겠어요. 그리고 그때에 유혹을 느끼지 않겠어요. 그렇죠. 하나님의 자녀들도 똑같은 유혹을 느껴요. 그때에 자신도 그러한 방법을 택하면 두 가지 문제가 생겨나는데, 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셔요.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의 인생 가운데 가장 커다란 그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 이것이 보장이 안돼요. 어제도 제가 말씀 드렸죠.
이 세상 인생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가정이 깨졌는데 왜 그랬냐 하니까 돈 때문에 머리가 터져라 싸우다가 가정이 깨졌어요.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많아요. 그러면 행복합니까. 돈 많은 가정도 깨뜨려져요. 우리 자녀들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자녀들도 돈을 유산으로 물려주면 결코 그들의 가정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어요. 공부를 많이 시키면 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이게 무엇으로도 안 된다는 말이죠.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이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은혜를 구할 필요가 없어요. 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나를 굉장히 가슴 아프게 해요. 그게 막 화가 나고 이 속에서 견디기기 힘들어. 그래서 대판거리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래 너라는 인간이 그런 놈이지 오늘이 끝이다. 이제부터 너라는 인간을 상종을 안 한다 그러면서 마음의 문을 쾅하고 닫아 버려요. 은혜가 필요가 없어요. 무슨 은혜가 필요하겠어요.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들었을 때, 마음을 쾅 하고 닫아 버리고 너 같은 인간 이제 끝이다고 하면서 마음으로 접어 버렸는데, 무슨 은혜가 필요하겠어요. 안 보면 그만인데. 그렇잖아요. 그러나 이제 정말 밉다 저 인간이 저렇게 생겨 먹었을까. 정말 못 됐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안 기뻐하시지. 어떻게 하든지 사랑하면서 내 마음을 다스려야지.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 거예요. 자기 힘으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 뭐가 필요해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죠. 그 다음에 은혜를 구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왜 우리를 우리에게 항상 좋은 일들만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지 이해하실 수 있겠죠. 그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계기가 돼요. 그런데 문을 쾅 닫아 버려요.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가 없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하는 좌절감을 느끼는 한 계기가 되는 거죠. 시인이 오늘 그러한 모든 것들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는 거예요. 저희를 악한 꾀에 빠지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어제 말씀 드린바와 똑같이 그저께 말씀 드린 바와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 이제 이 악을 행하는 많은 무리들이 자신에게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는 무리들이에요. 그들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세워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거예요. 그들을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자기도 악한 꾀를 써서 같이 궤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악한 꾀에 빠지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정체를 하나님 앞에 호소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멸시하며 하나님이 모든 세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매우 작아요.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 행할 수 있는 폭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시인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좀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손해는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것을 믿으면서 매일 매일 인생을 걸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