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자가 핍박 받을 때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시 10:11-14).
11절에서 다시 한 번 악인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박해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는 형식상 인정할지 모르지만 그 하나님이 눈을 떠서 자기들을 살피시고 그 하나님이 자기들을 살피실 뿐 아니라 또한 판단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감찰하지 아니하시며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천적 무신론자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자신의 삶 속에 간섭하시고 생각하시고 판단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구체적으로 우리의 행위를 감찰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판단하신다는 그런 생각이 없다면 실제의 삶은 신앙에 있어서 구속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게 악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에 시인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하나님을 경외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그 사람들의 박해로 말미암아 아주 깊이 고통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시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악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판단하시지 않는다거나 악인을 두둔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은 그렇게 하심으로서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악인에게 고통을 받고 박해를 받는 동안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게 하시고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찌끼들을 깨끗이 씻어버려 순전한 사람들로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뿐 만아니라 그의 내면의 세계까지도 순전해 져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모든 것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거룩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러니까 이것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는 하나의 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 선생은 이것을 십자가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신자를 성숙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모든 고통과 환경들, 이것을 십자가라고 본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악인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게 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도구들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게 하셔서 그로 하여금 오히려 그런 고난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라면 떨쳐버릴 수 없었을 자기 혼자 힘으로 살려고 하는 독립하는 마음, 죄를 좋아하는 부패한 마음,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그런 분산된 마음들을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해서 바꾸고 고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악인들은 ‘거 봐라 하나님이 없지 않냐? 우리가 아무리 이렇게 행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간섭하신다거나 그런 것 없다’ 이렇게 말하면서 마음 놓고 악을 마음대로 행합니다.
그 때 이 기도 속에서 14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고아와 같이 외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의지한다고 하는 이것은 하나님이 신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신자의 하나님을 향한 의존 안에 그 영광이 있습니다.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의존 안에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의존 안에 바로 그 안에서 하나님은 신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 의존하는 것은 곧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사랑은 항상 의존의 감정을 포함합니다. 의존의 감정을 포함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사랑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간의 사랑은 반드시 의존의 감정을 포함합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이든지 인간이든지 항상 의존의 감정을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는 사람은 그 신앙 안에서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라고 하는 의존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의존 속에서 살아가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그것은 모두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마음으로부터 시작이 되어서 마음에서 열매를 맺고 마음을 통해서 삶으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팎이 모두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그 은혜, 그 의지함,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늘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붙들며 사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