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자와 경솔한 자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시 10:15-18).
이제 이 시편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이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올리는 소원이 있습니다. 이 소원은 자신에게 물질을 많이 주셔서 부귀하게 해 달라든지, 영화롭게 해달라든지 그런 소원이 아니었습니다. 이 소원은 하나님이 공평하게 행하시는 분이심을 보여 달라는 탄원이었습니다. 그 공평하신 분이시라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으로서 이 모든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보여 달라는 그런 간구였습니다.
그것을 두 가지로 구하는데 첫째는 악인의 팔을 꺾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이 ‘팔’이라고 하는 것, 이것은 구약에서 ‘권능과 힘’ 이런 것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단어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이사야 53장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나셨느냐 그런 뜻입니다. 또 여기에서 보면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그 악인의 팔은 활동하는 팔입니다. 그래서 힘이 있습니다. 힘이, 완력이, 이 팔을 통해서 행사합니다. 힘과 권능의 상징입니다. 그것을 꺾어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팔을 꺾어버리면 움직일 때에 팔 자체가 아프거나 팔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의 완력의 대부분을 꺾어버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악인을 그렇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팔을 꺾어주시옵소서’ 왜냐하면 악인은 그 힘을 고아와 과부와 같이 힘이 없고, 사회적인 약자를 억압하고 압제하는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있는 힘을 가지고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서 그 힘을 사용하니까, 그 힘을 자기를 위할 수 있는 한도 까지는 최대한 이익을 확보해야 됩니다. 그 때에 자기가 힘을 쓸 때에 저항 할 수 없는 사람부터 먼저 공격하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힘이 없고 약자인 사람들을 공격할 때 그 힘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팔을 꺾지 아니하시면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이 강탈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팔을 꺾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주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자기에게 힘과 자원이 있어도 그것을 제 멋대로 사용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절제하고 자신이 힘이 있어도 자신의 힘이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 힘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온전히 두려워하게 되면 그 사랑의 마음을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향해서도 주십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 그런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게 되면 그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고 이럴 수 있는 마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에게 주신 힘과 자원을 가지고 사람들을 압제하고 쉽게 빼앗을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자원을 빼앗는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시인이 하나님께 ‘그들의 팔을 꺾어주십시오’ 라는 소원을 하나님 앞에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악인과 겸손한 자가 둘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겸손한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많이 그런 사랑과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인가 깨달은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앞에서 자기가 받은 용서의 은총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고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크고 위대한 능력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깊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성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게 되면 은혜 자체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깊이 들어오게 되면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존재에 있어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구나’ 그것을 하나님 앞에 아주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계속 겸손해집니다. 은혜 그 자체가 사랑의 감화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로부터 여러분들이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면, 그 사람의 지위나 존재가 여러분들보다 뛰어난다면,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면 그 사랑을 받는 것을 아는 그 사람은 자기를 사랑해주는 그 사람 앞에 나아갈 때 겸손해 집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아주 겸손해집니다. 이 겸손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랑을 받으면서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데서 오는 겸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자기 같은 죄인을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모르면서 자기를 한없이 낮춘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비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비굴한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겸비한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악인이 힘이 있는데 그 힘을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에게 행사하면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가 떨어지고 나면 교만해 집니다. 그래서 아주 깊이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나서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되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은혜에는 그렇게 놀라운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우리들이 하나님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그 하나님을 계속 의지하며 살게 만들어 줍니다. 은혜의 힘은 의지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님께 대하여 아주 의존적이 됩니다. 은혜 없을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제멋대로 살 수 있게 되는 용역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주님을 깊이 의존할 수 있도록 마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기도를 많이 하지 은혜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기도를 많이 하지 않습니다. 왜? 은혜 그 자체가 사람을 의존하게 하는 힘이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나아갑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