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6일 새벽예배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찌어다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아니하시도다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미워하는 자에게 받는 나의 곤고를 보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시 9:10-14).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 대해서 탄원을 하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도록 권면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결국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을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지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죠. 또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많은 성품들이 우리에게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위로가 되는데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위로가 되는 그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데서 시작이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는데서 비롯되는 그런 많은 것들이 결국은 자기가 경험했을 때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 그런 이야기죠.
그러면서 시인이 이야기하죠.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원래 사랑이라고 하는 이 감정 자체가 의지하는 감정입니다. 의지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사랑의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은 누구도 의지하실 필요가 없으시지만 나머지 인간들은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 안에 원천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을 향한 의지하는 마음을 주셨고 또 그 외에 실제적으로는 우리 인간들에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만드실 때에도 사람들과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동시에 그 사랑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의지하도록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맨 처음 창조 될 때부터 사랑의 존재로 창조하신 거죠. 그렇게 해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도록 만드신 거죠.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의존의 마음이고 그 마음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과거를 돌아보면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던 때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던 때이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할 때에만 하나님을 사랑하던 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인간은 매우 약해져요. 그래서 약해져서 수시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이죠.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들이 의지하면서 사랑해야 할 그 하나님이 시온에 계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시온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예요. 굉장히 거룩하고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죠. 의심할 여지없이 예루살렘 혹은 시온이라고 하는 말이 가르치는 바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교회예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을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보좌가 바로 그 시온과 예루살렘에 있다는 거죠. 이건 의심할 여지없이 교회예요. 하나님께서 이 모든 성도들의 온 삶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죠. 자기의 백성들이니까요. 그런데 그 모든 통치의 중심에 교회가 있는 것이죠. 교회에서 사람들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은혜를 받고 변화가 되면 그렇게 은혜를 받고 변화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통치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이죠.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주권에 깊이 복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그의 모든 삶이, 교회 바깥에서의 그의 모든 삶이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며 공평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좇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거죠.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삶은 이 세상에서 곧바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대로 복종하고 주님의 통치를 나타내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렇게 살 수가 없는 것이에요. 원리는 아주 너무 간단한 거죠. 그러니까 시온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그 삶을 능가하는 또 다른 삶도 없고 또 그가 시온 바깥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 삶의 질 만큼 사실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주님의 통치를 맛보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이고 이것이 바로 믿음생활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가는 이 신앙생활이 보다 깊어지고 그리고 풍부해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고 이렇게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게 되고 하는 이런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거죠. 그렇게 충만하게 될 때에 그때에 하나님 앞에서 가능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시인이 지금 그걸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그 시온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를 그 뒤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게 첫째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피 흘린 자를 국문하시는 하나님, 인류역사에서 맨 처음 피를 흘린 사람이 가인이었죠. 동생 아벨을 들판에서 죽이지 않습니까. 그때에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이 무엇이었어요? 네 아우의 핏소리가 들린다. 네가 어찌해서 그렇게 했느냐?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인간들은 자신이 악을 행하고 잘못을 행해도 그것은 묻힐 것이다. 아는 자가 없을 것이다. 나만 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앙의 깊이는 그가 하나님을 느끼는 깊이에요. 하나님을 아는 깊이에요. 신앙이 깊어질수록 어디서든지 그 하나님을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오늘 시인이 이야기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공평하신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럼 이런 공평한 하나님의 성품은 누구에게 위안이 되겠어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만 박해를 당하고 고생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거죠. 의롭게 살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주님이 이런 분이시라는 것이 아주 커다란 도전이 되고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는 거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자비에요. 그 뒤에 보면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특별히 당신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 그들을 아주 깊이 긍휼히 여기셔요.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이죠. 한없이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에요. 그 하나님이 바로 자식을 불쌍히 여기시는 아비와 같이 그렇게 당신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이 고난을 당할 때에 기억하시고 주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에게 압제를 당하고 시련을 당할 때에 깊이 고통 하는 모습을 보실 때에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푸신다는 말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에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앙생활이고 삶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의지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고 당신을 거스려서 두려워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의를 베푸신다 이런 말이죠. 그것이 성도에게 말할 수 없는 유익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똑바로 살아야 돼요. 하나님이 인정해주실 수 있는 그런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똑바로 살아야 된다 그런 말이죠. 그렇게 될 때에 다른 많은 사람들이 다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돌아오게 되는 선교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환난을 당할 때나 고난을 당할 때나 당신의 백성들에게 정말
유일한 피난처가 되고 그의 의지할 바위가 되고 산성이 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