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종말과 의인의 소망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힉가욘, 셀라)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 하리로다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을 받게하소서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 뿐 인줄 알게 하소서 (셀라)”(시 9:15-20).
여기에서 시인은 악한 자들의 결말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을 의지하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서 말하고 소망에 대해서 말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탄원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선 제일 먼저 보면 하나님을 거스르고 의로운 자들을 박해하는 악인의 받을 형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웅덩이를 판 것은 하나의 비유죠. 모함이나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 그런 웅덩이를 파 놓고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거기에 빠뜨리려고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이제 자신들이 거기에 빠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음부라고 나온 것은 희망이 없고 생기가 없는 절망의 상태에 대한 하나의 비유죠. 그런 상태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빠뜨리기 위해서 이들이 온갖 애를 썼는데 결국은 자신들이 거기에 빠지게 된 거죠.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이 모든 도모, 경건한 사람들의 모든 애쓰는 삶 이런 것들을 자신의 힘으로만 이루어져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섭리를 가지고 하나님이 간섭을 하셔요. 비유를 하자면 물을 붓는 것은 붓는 사람 마음일지 모르지만 흘러가는 것은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부어진 물을 받아낼 수 있는 물길에 따라서 물이 흘러가듯이 악을 행하는 것은 인간이 행하지만 그 악을 행하는 것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하나님께서 섭리 속에서 그 물길을 움직이셔서 행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악인이 행한 그 악은 스스로 악인에게 돌아가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선한 사람들이 행한 그 선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가도록 섭리 속에서 그 물길들을 조정하시는 것과 유사해요. 악인들은 자신들이 판 웅덩이에 스스로 빠지려고 계획한 적이 없고 스스로 자신들이 악한 꾀를 내어서 자신들을 절망에 빠뜨릴 그런 의도를 안했죠. 자신들은 그것들을 쏟아 부어서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섭리 속에서 역사하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서 베푸는 악을 물길을 돌리셔서 그래서 자신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거죠. 그렇게 해서 망가지게 되는 겁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데 이러한 간증을 오늘 시인이 하고 있는 거죠. 우리의 실제 삶에도 보면 우리가 커다란 낭패를 만나고 위기를 만났지만 그 위기를 기회로 바꾸시는 경우는 언제든지 있어요. 그리고 또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죠. 시인도 인생을 살면서 그러한 것들을 경험한 거에요.
두 번째는 선한 자들의 소망인데 오늘 여기에 보면 궁핍한 자 혹은 가난한 자 아런 사람들이 반드시 하나님께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소망이 피력이 됩니다. 여기에서 궁핍한 자 가난한 자는 문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악인에게서 박해를 받고 핍박을 받음으로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약자인데 그 약자가 하나님을 앙망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약자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많은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경건한 사람이 있고 또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하나님을 배역하고 하나님을 거스르려고 하는 완고한 죄인들도 있지요.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힘이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받을 분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악인이 자기를 박해하고 공격할 때에 악인보다 더 큰 힘이 있다면 그런 일이 물론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혹시 일어난다고 해도 하나님을 별로 의지할 일이 없겠지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과 권력으로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눌러 버리면 되죠. 그러나 악인들의 힘은 매우 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은 부족해요. 가난하고 궁핍해서 도저히 그 힘에 맞설 수 없어요. 이 때에 하나님의 은총의 필요를 느끼게 되는 거죠. 하나님 앞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며 주님의 은혜와 사랑 그 은총을 갈망하게 되는 거에요. 그러한 사모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고 기도하고 목말라하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 목마름과 사모함으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고 외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가난한 자들을 당신께 은혜 입은 자들로 여기시고 도우신다 이런 이야기이죠.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힘을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죠.
마지막 세 번째에 보면 이제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소원의 간구가 나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을 받게 하소서.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 뿐 인줄 알게 하소서’ 먼저 뒤에 나온 것을 보면 ‘저희는 인생 뿐인것을 알게 하옵소서’ 이 시인은 인생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이고 아무것도 아닌가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악인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자신의 힘대로 경건한 사람들을 박해하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도록 경건한 사람들을 핍박하지만 그러나 이렇게 핍박하고 박해하는 그 모든 것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너무나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죠. 자기가 너무나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아주 지푸라기와 같은 인간이고 다만 죽을 몸일 뿐이라고 하는 사실을 잘 모르는 거죠. 그래서 자신의 큰 힘이 엄청나게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능력이 엄청나게 강하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요. 이 시인이 저들이 만약 창조주 하나님 앞에 자신들이 지푸라기와 같은 인간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아마 저들은 겸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러면서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구하는 거죠. 우리의 모든 하나님 앞에서의 삶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닫는 것에 비례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깨달으면 하나님을 정확하게 섬길 수가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확하게 깨달으면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섬길 수가 있어요.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서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가 있게 된다 그런 것이죠.
두 번째로는 여기에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라는 단언이 나와요. 이건 뭐냐 하면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악인은 사라지고 고난을 받던 의로운 사람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만 잠시 짧은 시간을 놓고 보면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악인은 번성하고 의로운 사람은 고통을 받는 때가 있어요. 그러한 때에조차도 하나님이 개입해주셔서 악인의 번성함을 속히 종식시키시고 의인의 고난 받는 것을 구원해달라는 탄원이에요 이것은 단순히 고통 받는 사람들을 건져 주십시오 라고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며 공평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한 마당위에 당신의 통치를 펼쳐 주시옵소서 라고 하는 기도예요.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사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통치를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이에요. 이 시인이 바로 오늘 그런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도와달라고 간구하며 하나님 앞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