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피하는 자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땅에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 16:1-3).
시인 다윗이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사망과 그리고 재앙 ,고난.. 그리고 또 사람들의 미움, 핍박 이런 것들이 시인에게 항상 가까이 있을 때에 고백했던 내용 같아요. 내가 여호와께 피하나이다. 고백을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여호와께 피한다 라고 하는것이 무슨뜻일까요? 여호와께 피한다. 이것은 현실의 도피를 의미하는것은 아니죠. 우리가 이세상을 살아갈때에 우리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수 있으면 좋은데 사실 잘 못삽니다.그래서 예수를 믿게된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한번씩 자기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수 없는것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죠. 그리고 그렇게 자기 혼자힘으로는 도저히 살수 없는 그런것을 경험한 사람이어야지만 주님께대한 전적인 의존의 마음이 생겨날 수 있죠. 이게 바로 구원받는 믿음의 아주 중요한 조건입니다. 주님밖에 의지할수 없는것!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믿음의 절대적 요소라는거에요. 그렇게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때 그걸 경험한 사람이 신자에요. 그런데 이 피한다..라고 하는것은 현실에서 도피한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그런 어려움,고난 이런것들을 극복해 나갈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힘과 자원을 주님께로부터 받는것 이것이 바로 여호와께 피하는거에요.
(예화)우리들이 어렸을때 골목에서 친구들과 다투다가 따돌림을 당한다던지 그러면은 어머님의 치마폭사이로 피하죠 그러면 어머니가 우리를 끌어안고 역성을 들어주시죠. 이런 종류의 피함. 그것을 가리키는 거에요.
그러니까 참된 신앙은 그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절대의존의 마음이에요. 그래서 신앙생활을 언제 잘 하느냐 하면은 자신만만할 때 잘하는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때 잘하는 것이에요.
주님 없는 세상 평화없네 오 주없이 살수 없네.
언제 기도가 제일 잘 될까요. 나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수 없어서 마음에 눈물이 흐르고 있을때! 언제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게 내맘에 내려올까요.내 힘으로는 도저히 할수 없어서 주님 나에게 은혜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눈물이 흐를 때! 그때에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겠다는 간절한 사모함! 이런것들이 거기에서 생겨나는 거에요. 근데 참 그렇게 여호와께 피하고자 하는 마음. 이 마음이 우리안에 항상 흘러야 하거든요
근데 그렇지가 않고 이 독립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생겨나는 거에요.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소원이 내 맘에 생겨나고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하는 내 환경과 나 자신 이런것들이 방해가 되고 그런데도 주님께 가고자 할때. 그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그러는거에요.그래서 항상 아 주님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고 그리고 나의 모든 인생의 희망은 우리 주님뿐 이시다. 그런마음이 생겨나는거에요. 이때에 우리가 주께 피할수 있는거에요.
우리는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자원의 부족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에요. 여러분들이 항상 여러분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 인생을 살아가기에 너무너무 힘들어요.어디에서 작은 돈이라도 변통할수 없어요. 그리고 사는것은 너무 고달프죠. 그런데 사실 육신의 자원은 줄일 수 있잖아요.
큰집에서 살던 사람이 어려우면 작은집에. 잘 먹던사람이 좀 척박한 음식먹고 잘 입던 사람이 좀 아무렇게나 입고 문화생활을 즐기던 사람이 좀 포기하고 그렇게 살 잖아요 더 큰 문제는 정신적인 자원이에요 육체적인 게 아니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자원, 그게 너무너무 어려워요. 그것이 없을때 우리는 매우 곤고하고 그리고 어려운 삶을 살게 되요. 그래서 너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게 돼요. 그때 주님께 피하는 거에요. 그러면 그 주님께는 우리의 이런 결핍들을 채울수 있는 무한한 자원들이 있어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으로부터 멀리 떠난 죄인들을 부르시는거에요. 왜냐하면 그들이 결핍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신앙은 그렇게 하나님께 끈임없이 피하는거에요.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지만 주님께 피할수 있을까요?
주님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항상 최고의 가치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일한 가치가 되어야 하는거에요 그래야지만 피할 수가 있어요.이 하나님께 대한 의존의 마음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서 피하는 신앙 이것은 아무렇게나 살다가 필요하면은 그렇게 하고자 하는데 잘 안돼요.그래서 보면 우리 주위에 침체에 빠지거나 회심하지 못해서 방황하거나.. 이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회심치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면 참 좋겠는데 잘 안 해요. 그래서 그렇게 해보라고 하는데 잘 안해요. 그게 잘 안 되는거죠.
자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만나 그때에 가슴에 손을 얹고 아 주님만이 나의 피난처이시며 나의 피할 바위이시며 산성이십니다. 내가 방벽을 의지하는 것 보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났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께 피합니다.
이렇게 그렇게 주님이 필요한 순간에 마음이 깊이 녹아내리면서 주님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에요? 누구든지 아무렇게나 살다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그렇게 될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시인이 뭐라고 고백하느냐면 주님은 나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복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피할 때 마음 깊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 1장찬송이 유명한 찬송이에요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
저 천사여 찬송하세 찬송 성부성자성령 아멘
만복의 근원 하나님 주님만이 우리의 복의 근원이에요.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복이 없어요. 다른 것에서 오는 모든 복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영원한 복이 아니에요. 하나님께로서만 모든 복이 나오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것. 그리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만복의 근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참... 그런 사람들이 여호와께 피할 수 있는거에요. 하나님이 자신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 내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가난해 지고 버림을 받고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그래도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전부인 사람 그런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필요할 때 하나님께 피할수 있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거죠.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요. 내가 주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아요. 그래서 내가 그분에 속했고 주님이 나에게 속하셔서.. 그에게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요?그쵸? 고난이 오면 그 고난을 통해 피난처 되신 주님을 의지하면서 연단을 받으며 정결해 지겠죠. 시련이 오면 시련을 통해서 자신과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살아가겠죠. 평안하면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을 전신으로 섬길 수 있겠죠. 그렇죠?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죠.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에게 항상 행복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에요. 사람이 그를 미워해도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는한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한 그에게 절망은 없고, 사람들이 그를 실어서 광야에 버려두어도 거기서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시고.. 힘지어 원수들이 그를 죽여도 주님은 보좌에서 일어나서 그의 영혼을 받으실거에요. 그러면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살죠. 이렇게 하나님을 자기의 모든 복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 하나님을 모든 복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바로 고난의 때에 환란의 때에 여호와께 피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의존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면 뭐라고 고백하느냐 하면은 땅에 잇는 성도는 존귀한 자라.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이게 다윗의 고백이죠? 다윗이 땅위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라.. 여기서 성도라는 말이 히브리말로 [하시드] 인데 은총을 입은사람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사람 그런뜻입니다. 우리가 성도가 성도가 되는것은 자신의 힘으로 된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성도가 성도가 되었어요. 그 은혜를 힘입어서 성도가 성도 되었는데 그 성도를 시인이 존귀한 자라..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시련과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특별히 사랑하시고 은혜로 대해 주셨어요. 왜 그런가 하고 생각했더니 자기가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자였어요 그래서 성도가 되었어요. 언약의 백성이 되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게 고백을 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이땅에 있느 많은 성도들의 존귀함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뭐냐하면 아! 저사람도 하나님이 나처럼 사랑하셧겠지. 그러고 나니까 그 성도 속에서 아름다운 모습이 보이게 돼면서 사랑하게 되는거에요.이거에요. 그러니까 항상 성경이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것이 뭐냐 하면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것 같이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그러니까 자신이 하나님께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자신이 하나님께 어떠한 용서의 은혜를 입엇는지. 자신이 하나님에게 큰 은혜속에서 어떻게 사랑과 보호를 입었는지를 생각하면 자기 혼자만 그런 사랑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에요. 우리 모두 그렇게 사랑 받았어요.
(예화)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나를 아프게 하고 고통을 주고 나를 힘들게 하고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돼면 마음이 너무 아프죠.그래서 어떤 마음이 생기냐하면은 하나님이 내 역성을 들어주셔서 저 사람들을 좀 혼내주시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때 마다 우리가 가슴에 손을 얹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베푸시는 그 사랑을 저 사람도 받으면서 살았다고 생각해보세요. 시기와 종료 방법은 틀리지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은 그런생각을 해보면은 그 성도속에서 정말 그 사람은 존귀한 사람이다 라고 하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 들게 돼는거에요.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붙들어 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속에서 성도들 속에서 얼마나 존귀한 사람인가 하는것을 보는거죠. 또 그렇게 인생에 있어서서 고난과 시련을 만나 하나님께 피해.. 그런 사람들의 위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거죠.
나의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그렇게 환란을 만나고 피하고 도망친 모든 사람들이 피하는곳 거기가 바로 그렇게 피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품이에요. 그 안에서 또 주께 피한바 하는 성도들을 만나요 그래서 위로하고 사랑하고.. 이 땅에 있는 육신의 부모 육신의 형제들.. 매우 소중해요 그래서 자기의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불신자보다 악하다.. 라고 성경은 가르쳤어요. 왜냐하면 이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신 본능에 가까운 감정이에요. 그런게 그것을 거스르며 사는것은 책망받을만한 일이죠. 그런게 이 세상에 있는 가족들은 그들이 주님을 믿어야지만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가족이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은 이미 이 땅에서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가족일뿐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깊이 사랑하고 성도들이 이 땅에 같이 살아 있는것 자체가 자신에게 즐거움이 되고 행복이 되어야해요. 그들로부터 섬김을 받으며 행복하고 그들을 섬기며 행복하고, 그들을 사랑하면서 행복하고 그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하고. 또 그들이 좀 부족해도 내가 희생함으로서 사람이 온전케 될 수 있어서 행복하고.이렇게 하면서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그런 신앙생활을 할수 있어야지만 그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