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깃이신 하나님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16:4-6).
그러면서 이제 이 시인은 자기는 당신들의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다 하는것을 얘기하는 거에요.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반듯이 고통이 따를 터인데 난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그래서 신앙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하죠. 당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 할 것이다. 어제 이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복이라는 사실을 선언했습니다. 자신이 곤고할 때 여호와께 피하는데 그래서 그 하나님이 자신의 복이 되시는데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이되고 그리고 자신에게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이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기를 드려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지만 하나님께 그렇게 자기를 드려야지만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이라 하는것이죠. 여기서 시인이 하나님이 나의 복이시라.. 말하는것은 그냥 그렇다고 생각한다는 의미가 아니죠. 자신이 하나님과의 연합을 느끼는 가운데 그것을 확신하는 겁니다. 어떤 사실을 알때에 그것을 개념적으로 아는 방법이 있고 그것을 경험적으로 아는 방법이 있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은 왠만한 사람은 개념적으로 알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때에는 회계가 나오고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의고백이 나오고 그 다음에 뭔가가 인생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거에요. 어쨌든 하나님만이 나의 복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이면에는 내가 다른 신들에게는 예물을 드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그냥 다른신을 경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신들에게 예물을 드리는 것은 구복행위와 관련 있는게요. 복을 구하는것과 관련 있는거죠. 복을 구하는 것 이요. 그래서 이 당시에 다윗의 시대에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던 그 중동지방에서의 신들에 대한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것 이거든요. 그러니까 늘 신들이 뭔가 얻어먹지 못해서 그지들처럼 몰려 다니면서 인간들을 괴롭히는 개념이에요. 그러니까 그 신들을 굶주리게 하면은 그 신들이 심술을 부리는거에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신관하고도 비슷해요. 터주대감에게 제사하고 조상신에게 제사하고 이런것들도 모두 적극적으로 복을 받는다는 개념 보다는 그 신들을 달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시인이 나는 다른신에게 예물을 드리지 않겠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계속 돼왔던 역사가 뭐냐하면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한편으로는 그땅에 있는 신들을 섬기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한편 또 이땅에 있는 신들을 섬겨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주로 섬기지만 이땅에 있는 신들과도 잘 지내고 싶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어떤 해를 받지 않겠다 하는 것이 혼합신앙이었어요. 그런 혼합신앙을 자신은 택하지 않겠다.
그래서 나의 모든 복은 그런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런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메달리는 거죠. 하나님께 올인 하는거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만이 나를 복주실수 있는 분이시며 하나님만이 나의 보호자가 되시며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라는 고백이에요. 그러니까 인생 가운데 환란이 오고 고난이 오고 많은 어려움이 생겨도 여호와는 내편이시다.
여호와가 나와함께 하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하는 고백을 할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것이 자신 인생에 전부가 되어야 해요. 그러면서 이제 이 시인은 그런 이야기를 하죠.나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않을것이며 그 이름도 부르지 않을겁니다. 여기서 피의 전제라고 하는것은 전제가 무엇이냐면 곡식위에 액체를 부어서 드리는 제사가 전제에요. 그러니까 액체라고 하면은 술 같은 것을 붓는 것이거든요. 술같을 것을 부어서 드리는 제사가 전제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는 기름이나 술 이런 것을 부어서 하나님께 바쳤죠. 그러나 이방에서는 피같은 것들을 뿌려서 제물 위에 부었단 거죠. 그런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이방신께 드리는 제사였던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서 하나님께 올바른 방법으로 섬겨야 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하게 알지 아니하면은 그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가 없죠.
그러면서 시인은 난 이름도 부르지 않겠다.. 왜? 만약에 이방신의 이름을 불러야 할 위기가 온다면 난 차라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하나님만에 나의 피난처이시고 나의 복이시기 때문에 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뭔가 인생의 두려움이 느껴질 때도 난 여호와께 피할 것이다. 뭔가 인생의 깊은 고난이와도 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피하며 사는 성도의 삶이에요.
그러면서 시인은 이제 그렇다면 하나님을 자신의 복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가지는 기쁨과 소망이 무엇인가 하는거에요. 하나님이 자신의 산업과 분깃의 소득이시며.. 이랬어요.하나님이 자신에게 소득이시며..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소망 자체가 내 인생의 행복이며 내 인생의 먹고 쓰고 먹고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서부터 나에게 오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기쁘고 행복하다 라는 고백을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하고 있는 거에요. 하나님은 나의 소득의 분깃이십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시인이 이야기 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의 분깃이십니다. 이것은 복과 동의어에요. 원래 이 분깃 이라고 하는것이 맨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땅을 다 그려놓고 제비를 뽑아요. 아직 정복하지 않았지만 제비를 뽑아요. 그래서 지파별로 띠어주고 지파는 족속별로 띠어주고 족속은 가정별로 떼주는거죠. 그래서 자기 가정의 땅이 생기는거죠. 그래서 그것을 바로 기업이라고 하는거에요. 그러니까 땅이 있다고 하는 것은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농사를 지을수 있다는 것은 풍복한 삶을 뜻하는 거죠. 옛날에는 땅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그것이 그 사람의 부 전체를 이야기 했죠. 그래서 1년에 몇 섬이나 추수를 하느냐 그것에 의해서 이 집안의 부가 결정나는거죠. 그렇게 살아갔죠. 이것이 바로 옛날 고대 사람들의 물질관 이었어요.
그런 기업을 잃어버린다라고 하는 것은 곧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거에요. 그래서 구약에서는 이 땅을 절대로 개인이 소유하지 못하게 했어요. 노예가 이 땅을 중심으로 노예가 되는거에요. 옛날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자기 땅이 있다면 노예가 될수 있겠어요? 그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사는데 먹고 살수만 있으면 노예가 될 리가 없다는거죠.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노예가 될리는 없잖아요. 노예는 소유가 자기게 아닌데, 일을 해도 자기것이 아닌데. 그러는 법은 없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자기 땅이 있으면 머슴으로 살면서 그렇게 고생하는 노동력을 자기 땅에다가 쏟아부으면 부유한 삶을 살게 되는것이죠. 그것이 생명과 같은거에요 하나님이 바로 자신의 기업인거죠. 그러니까 땅을 기업으로 가진 사람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그 땅에 모든 것을 쏟아붇고 또 그 땅을 통해서 모든 것을 수확으로 거두면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듯이 똑같이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그 기업!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붇고 거기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가며 사는 성도의 삶이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시인은 마지막으로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준 그 기업. 그것이 아름답다고 하는거죠.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땅이에요. 그래서 그 기업을 가장 아름답다고 고백하는거에요.
(예화)우리가 가진 땅 10평의 의미와 얼굴도 모르는 사람 1만평의 의미가 같을수가 있겠어요?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내가 가진땅 10평의 의미는 내가 모르는 사람 1만평의 땅의 의미와는 비교도 되지 않아요. 그렇게 소중하고 중요한 거에요.
그런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뭐냐.. 예전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주셧어요 그래서 땅을 기업으로 받으며 살아가라.. 그런데 땅이 있어요?난 없어요 지금은 이 기업이라는 의미가 하나님이 내게 맡겨두신 사업 직장 그 다음에 나의 사명 이런것들이 우리의 기업이에요. 하나님께서 자로 재어서 우리에게 주신것. 그것이 소위 구약에 나오는 지개표 사상이에요. 지개표라는 것은 땅의 지경을 알려주는 이 표석이에요.못 옮기게 되어 있는거죠. 그걸 남의걸 빼앗는 것도 잘못인거고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도 하나님 앞에 잘못된거에요. 그걸 지키는 거죠. 똑같히 여러분들의 기업이 어디인지 생각해보세요.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기쁘고 즐겁다고 생각 해야해요.. 내게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 있어요, 가정이 있어요, 사명이 있어요. 이것들을 소중하고 아름다운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그것을 즐거워하고 그 안에서 그것과 함께 숨쉬고 행복해하며 하나님앞에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거에요. 그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여러분께 피난처가 되시고 하나님께서 나의 복이십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