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받는 의인의 소망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시 12:5-8).
이렇게 악인의 정체는 아첨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압박을 받고 고통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그 때 회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회상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은 가련한 자의 탄식과 곤핍한 자의 고통에 대해 귀를 기울이시다가 하나님이 ‘내가 이제 일어나리라’ 하십니다.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멈추었던 상태에서 다시 일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사실 이런 표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태만하신다고 하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신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악인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신다는 면에서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어나리라 그들이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고통을 받을 때 의로운 사람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 안전지대라고 하는 것은 원수들의 공격이 없는 보호받은 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수들의 공격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런 물리적인 장소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악인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어떤 사람들을 어찌할 수 없는 곳, 그런 곳이 바로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들이 보면 길에도 안전지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차들이 막 바쁘게 다니는 도로인데도 한 복판에 절대로 차가 들어갈 수 없도록 가로차선이 그어져서 안전지대의 표시가 되어 있는 곳, 그곳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도록 막혀져 있습니다. 어떤 벽을 쌓아서 막은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거기엔 차가 다닐 수 없도록 보호가 된 곳입니다. 안전지대입니다. 그런 안전지대에 하나님께서 고통 받는 자기의 자녀들을 두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일을 하시기 위해서 ‘나 여호와가 일어나리라’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시인이 악인들에게 고통을 받으면서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국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의 편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편에 서 있고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깊이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악인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압제를 당할 때도 보호하시는데 그런데도 왜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전히 고통을 당하거나, 혹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지 못해서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왜 그럴까?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있는 중입니다. 고통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살아도 하나님께서는 그 많은 괴로움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신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올바르고 또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도 하나님이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치고 변화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연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보십시오. 시인이 원수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악인들에 의해서 괴로움을 당해도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그런 자세를 취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련한 자의 탄식과 고통 받는 자의 압제를 인해 반드시 일어나실 것이다’ 라며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건져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바뀌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깊은 세계,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동의 본거지가 되는 뿌리를 하나님께서 바꿔놓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미하기 때문에 마치 흙 도가니에 일곱 번이나 연단한 은과 같이 순결하도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왜 갑자기 고난을 이야기하다가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연단한 은과 같이 순결하도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지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여기에서 이 말씀은 모든 말씀을 가리키지만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말씀 속에 담겨져 있는 계명으로서의 진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을 반드시 축복해 주신다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굉장히 무겁고 힘든 계명처럼 느껴지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계명이 참 진실하고 그렇게 살면 우리가 행복해 질것이다라는 확신이 안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찬송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순한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이 꽉 차면 그런 확신이 생겨납니다. 성경이 아무리 우리에게 어렵게 명령을 해도 이 말씀을 지키면서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지키면서 살면 나는 참 행복해 질 것이다. 그런 강한 확신이 우리의 마음속에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시인은 ‘흙 도가니에 일곱 번 연단한 은과 같이 순결하도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이나 금이나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으면 값이 나가지 않습니다. 14금은 아주 싸고 18금은 그보다는 더 낫지만 그것도 쌉니다. 순금이 비쌉니다. 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비싼 것은 순은입니다. 그래서 여러 번 용광로에 넣어서 불순물을 걸러내고 걸러낸 순도 99.99%의 순은 그래서 비싸죠. 그러한 순결한 은, 그것과 같다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귀하다라는 뜻입니다. 어느 지체가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 환란과 시련이 많이 오는데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말씀대로 살기는 너무너무 어렵고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라고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데, 순종을 하면서 살아보면 그것이 진리라고 하는 것을 들을 때에는 2/3쯤 믿었지만, 살아서 실행을 해보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입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말씀에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고난과 시련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소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흙 도가니에 일곱 번 연단한 은 같아서’ 너무 소중하고, 너무나 귀하고, 너무나 정말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귀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시인이 ‘일곱 번 연단한 은과 같도다’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을 충분히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사람은 계명을 꽉 붙듭니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그런 말할 수 없는 사모함이 마음속에서 깊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꽉 붙드는 사람, 그의 계명을 순결한 은처럼 여기면서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계명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찬송가도 우리에게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라고 노래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모든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공장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꽉 차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헛된 꿈이 꽉 차있으면 가치도 없는 헛된 일에 골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인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꽉 채워서 고난도 이기고 시련도 이기면서 믿음으로 이 길을 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는 시인이 ‘여호와께서 이 길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지켜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뒤에 보면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들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조금도 상황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악인들이 날뛰고 하나님 편에 서있는 의로운 사람들이 여전히 악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제 이 시인은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그 상황은 변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확고한 신앙을 갖게 됩니다. 변한 것 같고 고통스러운 것 같은 이 세상의 질서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렇게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지키실 것이다’라는 확신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 확신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지하면서 그대로 걸어갑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해서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