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10일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시 18:4-6).
시인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를 내가 사랑하나이다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피할 바위시며 요새시며 피난처...’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야지만 결과가 나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발견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간다고 하면 순종할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분명하게 있을 때 의지적으로 순종하지 않을 수 없는 신앙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신앙의 이치요 도리입니다.
오늘 여기에 나오는 4-6절의 말씀은 왜 시인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3절의 내용을 입증하듯이 4-6절까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사망의 줄, 죽음의 올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모두 하나의 비유입니다.
시인이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아서 왕으로 부르심을 받고 일생을 사는 동안에 만난 숱한 고난과 시련의 경험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항상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적으로 육신적인 죽음의 위험을 받는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었지만 원수들에 의해 다가오는 많은 공격들을 통해서 낙담하고 좌절하는 정신적인 죽음, 어떻게 하든지 그들이 시인을 넘어뜨리고 쓰러뜨리려고 할 때에 이 시인의 마음은 곤고해지고 정신과 영혼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위협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사망의 줄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어떤 주석가들은 이것을 해석하기를 성전에서 쓰는 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물을 하나님 앞에 태워드릴 때 제물을 죽여서 제물이 제단에서 흘러내지 않도록 단단하게 묶어두는 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이 완전히 죽어서 제단에 묶여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해석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면 이것은 절망적인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불의의 창수라고 하는 것도 유사한 것입니다. 창수라는 것은 큰물이 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큰물이 나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물난리가 나는 것 같이 악한 사람들의 불의한 행동이 그렇게 큰물이 나듯이 떠내려갈 듯이 공격을 합니다. 거기에 인간이 어떻게 도전을 할 수 있습니까? 나의 힘으로는 내 원수들의 공격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라고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때에 시인이 한 일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도록 내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여기에서 살려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거기 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큰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시인의 고백입니다.
신자가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고난과 시련, 모든 고통과 악, 이런 것들은 전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 혼자의 힘으로 살지 말고 당신을 의지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주시는 그런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도록 부르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때때로 이런 시련과 고난도 주십니다. 큰 환난과 시련을 당하고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고난과 위기에서 건져주십니다. 그렇게 됨으로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이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내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때 비로소 순종하게 되며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