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자를 붙드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 되어 없어지리로다”(시 37:18-20).
이 시대에는 제사를 드렸죠. 제사를. 제사가 그 목적과 형식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의 하나 번제라는 것이 있어요, 번제. 그것은 이제 제물을 태워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죠. 그래서 지금 이 20절을 쓸 때에 시인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번제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 짐승을 잡아서 이제 태워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인데 이제 그 남김없이 태워드리는 제사가 있거든요. 그럴 경우에 그 불 위에 올려놓으면 가장 잘 타는 부분이 어느 부분이겠어요? 두말 할 것 없이 이 내장의 기름 같은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보면 짐승의 이 내장 같은 것들을 태우면 거기에서 엄청나게 많은 기름이 나오면서 불 위에 기름이 떨어져서 그 불길이 치솟는 거죠. 그리고 순식간에 타서 재만 남아 버리는 거죠.
악인이 번성하는 것 같아도 마지막의 그 말로가 그러하다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거스르면서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단숨에 타서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죠. 악인의 말로는 허무한 거죠. 번성한 것 같아도 그러나 그것은 마치 벤 풀과 같아요. 그래서 풀을 베어놓으면 처음에는 심겨져 있는 풀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지만 햇살이 퍼지고 시간이 지나면 검불처럼 말라 없어지는 거죠. 그것이 악인의 말로예요.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해서 이제 18절부터 19절 사이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 의로운 사람들, 그 의인은 어떤 사람으로 불리냐면 완전한 자로 불려요. 여기에서 완전하다 라고 하는 말은 절대적인 완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죠. 그런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겠어요, 거죠. 여기에서 완전은 오히려 상대적인 완전이고 점진적인 완전이에요.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비록 기술이나 능력은 모자라지만 제대로 그것을 해서 원래의 그 목표대로 해 보려고 몸부림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래대로 그것을 해 보려고 몸부림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그렇게 하지를 않고, 아예 그렇게 하지를 않고 그냥 좀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자기 할 만큼 그만 두어 버리는 사람이 있죠. 그 후자의 사람은 절대로 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냥 무엇이라고 완전하게 하려고 아주 몸부림치게 될 때 그때에 점점 더 완전한 사람이 되어가는 거죠. 이 일을 완전히 할 뿐 아니라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이 일을 완전히 할 뿐 아니라 완전하게 일을 하는데서 나아가서 그 일을 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도 모든 면에서 완전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죠.
지금 우리나라가 배를 이렇게 잘 만들고 있잖아요. 그래서 뭐 엄청납니다, 하여튼. 전 세계에 아주 중요한 배들의 수주를 거의 휩쓸고 있는데 맨 처음에 그 현대조선소가 생겼을 때 첫 번째 배를 만들었답니다. 만들었는데 커다란 그 화물선 그런 거였겠죠. 만들었는데 그 배를 인도해 가려고 왔는데 길이를 재보니까 설계도에 나온 거 하고 6m 차이가 나더래요. 더 크게 만든 거죠. 그 배가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 져야 하는데 6m나 크게 만들었겠어요. 이게 뭐냐 하면 설계도를 그리면서 연필을 사용한 거예요. 그 굵기가 반영이 되가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배가 6m가 커졌대요.
그래서 완전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완전은 비록 약하지만 또 부족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 주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을 여기에서 완전한 자라고 가리키는 거예요. 그런 완전한 자가 바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면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 있게 되는 거죠. 이런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리고 결핍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내가 못나서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고 있다고 하는 그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그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그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계획대로 그것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상황이 굉장히 어렵고 하나님을 거스리는 때에는 고난을 받는 것이 영광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오죽 했으면 마틴 루턴 같은 사람은 당시에 참 설교자 거짓 설교자의 구분점이 뭐냐 그럴 때 고난을 들었어요, 고난. 고난이 있다면 참된 설교자다. 고난이 없다면 거짓된 설교자다 왜 그랬을 까요? 그 시대가 진리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 그러니까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면 그것이 보편적일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고 그리고 미움을 당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환란과 시련을 만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신앙생활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기서도 시인은 참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완전해 지려는 사람들이고, 그리고 결국은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을 가리키는 거죠.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경배, 이런 것들이 그 마음에 꽉 차게 될 때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순종하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악인들은 하나님 앞에 그렇게 살려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그 날을 정하셔요.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 자신이 그 모든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직접 찾아오시는 그날이에요. 그것이 성경에서는 권고하시는 날이라고 자주 나와요. 이 권고한다는 말은 히브리말로 파카드인데 방문한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이 방문하시는 그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방문하시는 그날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방문하시는 그날에, 그때에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치리하시고 역사하셔서 그래서 올바른 질서들을 만드시는 거죠. 그때에 하나님 편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만드시고자 하는 질서가 자기가 걸어가고 있던 그 질서예요. 거기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 자비 같은 것들이 그날에 풍부히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반대로 그것을 거슬러 살던 사람들은 바로 그 안에서 그 하나님을 거슬려 사는 것을 치리하시는 하나님의 엄위로우심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심판의 날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의 참된 복은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면서 하는 것,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나와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오늘도 저희들이 우리의 삶과 모든 생활의 질서가 주님 편에 있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지언정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늘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뜻대로 사는 저희들이 되도록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