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망하는 자를 건지심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시 25:15-17).
사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항상 하나님을 앙망하며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우리의 영혼이 하늘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생각하기 보다는 육체의 고향인 이 땅의 일에 자주 마음이 뺏기기 때문입니다. 오웬은 말하길, 하나님이 하늘나라를 창조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하늘나라를 계속 묵상하며 살게 하시기 위해서 그리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도 이 일은 어려운 것입니다. 마음을 수시로 이 땅에 빼앗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앙망하며 살았던 이유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하나님은 자신을 그 어려움 가운데서 건져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쓰러짐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며 살기에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끊임없이 앙망하면서 살아가야겠는데,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지상의 삶의 모든 전개가 하나님 앞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전개되도록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삶이 지상 세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면 밥을 먹고 움직이며, 기동만 하면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으나, 하늘나라 기준으로 볼 때에 살아있다 함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의미가 있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실 때 의미 있는 삶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 일이 나에게 뿐 아니라 하나님께 어떤 유익이 되는지를 대답할 수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대답할 수 있을 때, 그 때의 그 삶은 하나님 앞에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육신의 즐거움과 향락을 위해 쓰는 시간들은 하나님께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섬기며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 앞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자는 항상 평안함만이 뒤따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거스르며 살 때에는 바르게 살 길 원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고통당하지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 잘 살 때에도 그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이 세상의 굽은 질서 때문에 고통당합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을 앙망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만이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고난도 시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다시한번 기도합니다.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앙망하며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외로움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당하는 그 많은 고난은 하나님의 도움을 입을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 입니다. 왜냐하면 그 가는 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인생의 길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막으십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동안에 받는 고난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시인은 이제 1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지식들을 마음으로 사용해서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삶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항상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그 마음을 공격해서 하나님을 거슬러 살게 하는 죄의 영향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는 은혜의 영향이 지속적으로 싸우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마음의 흔들림을 경험합니다. 그것이 우리마음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해도 이런 마음의 동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론가 흘러가는 아주 분명한 목표가 있는 투쟁이고, 하나님을 위해서도 아주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항상 주님의 도움이 있습니다. 은혜를 체험을 하고 사는 자는 모두 목표가 있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고, 마음을 모아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놀랍게 환경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마음도 바꾸어 주십니다. 시인은 고난에서 자신을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자들이 타락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의지하지 않으려는 자들을 의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고난이 많은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썩어 버리기에 적당한 고난을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고난이 있고 시련이 많지만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지켜주시기 때문이고, 목표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하며 살 때에 환경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요동치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