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중에 행하는 사람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시 26:3-4).
시인은 어제 말씀에서 ‘나를 시험하사 내 마음을 단련 하소서.’ 라고 했다. 이러한 태도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살고 싶다.‘ 라는 소원이 아니면 이런 기도할 수 없다. 단련이란 말을 요사이는 잘 안 쓰는데 전에 저희 할머니께서는 많이 쓰셨어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 단련을 너무 많이 받는구나.’하셨지요. 고통이란 말이죠. 마음의 고통인데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일본 속담에 ‘ 고통이 너를 보배로 만든다.’란 말이 있는 데 그건 모두다 그 상황에서 벗어난 다음에 혹은 그 상황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의 이이기다. 정작 그 상황을 당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시인이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 그렇게 단련되어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을 가진 순수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란 이야기이다. 그렇게 했더니 시인의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변화가 바로 ‘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이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정말 자비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아주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특권이다. 그것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결심 했을 때 일어난 일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를 가지고 우리들이 매일매일 살아간다. 그때에 우리들의 정말 주님을 의지하면서 우리가 주님 앞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하면 그렇게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자비가 우리 매우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이 자신의 삶을 두 가지로 이야기한다. 그렇게 마음을 단련받길 원하는 사람으로서 실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허망한 사람들과 같이 앉지도 아니하였사오며’ 과거 이야기죠. 간사와 자와 동행치도 아니 하리이다‘ 미래에 대한 것이죠. 그러니까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되면 즉각적으로 삶 자체에 아주 중요한 변화가 오게 된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변화가 자신의 삶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매일매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운데 자신의 인생을 영위하게끔 만들어 주신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한자. 허망하다란 가치가 없는 목표를 추구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쉽게 말하자면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간사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앉지도 아니하고 동행하지 않는 마음이 되었는데 무슨 영향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냐 하면 그것이 바로 진리의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인간이 비록 하나님을 향해 돌아섰다하더라도 얼마든지 세상을 향해 돌아갈 수 있는 인간이거든요.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힘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죽 비추면 그 말씀이 비취는 진리의 영향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이 빛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인간은 어둠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와 자기의 육체밖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깨닫고 빛을 얻었다고 할 찌라도 그것가지고 모든 것이 충분하지는 않다. 그 빛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마음에 다시 어둠이 내리고 어두워진 그 마음은 자기만을 사랑하는 자기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어느 한 순간에 빛을 한번 받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계속 진리의 빛을 받으며 그 진리가운데 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목회하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목회를 하고나니 이런 비밀들을 참 많이 터득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고 정말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어떤 인간의 따뜻한 위로나 정 이런 것들이 아니라 정말 진리의 말씀 하나로 인생이 바뀐 사람 그래서 자기의 모든 것을 토하며 회개하고 그리고 주님을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아주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기억난다. 그런데 아무리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또 진리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어둠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한번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것 물론 중요하지만 계속 그 빛 아래 있는 것 그래서 그 말씀이 찬란한 빛을 비추어서 나로 참회하게 하고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는 일들이 진리의 영향이다. 그것들이 계속 우리 가운데 일어난다. 그때에 우리가 그 진리 중에 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그 찬란한 빛을 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왜 그 진리의 빛이 비출 때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가? 그 진리의 빛은 하나님의 아름다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시고 또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깊이 깨닫게 만들어 준다.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도록 만들어 주신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주신다. 반면에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 인간이란 것을 진리의 빛이 보여준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사랑할 수 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의 빛이 비출 때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지극히 크고 무한하고 자신은 그 진리의 빛 앞에서 정말 추하고 연약한 존재란 것 밖에 깨달아지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진리의 말씀의 빛이 그치고 어둠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반대로 그 진리의 빛이 없으니 자신의 추함도 볼 수가 없다. 영적인 눈이 감겨지고 나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육신의 것이다. 그러면 영혼은 영적인 아름다움 보는것에 실패하게 된다. 왜냐하면 진리의 빛이 비출때만 그 빛을 받은 모든 사물들과 빛을 비추시는 하나님 자신이 아름다움을 볼 수가 있다. 그러니까. 그 진리의 빛이 사라지게 되면 육신의 눈만 남는 것이다. 육신의 눈은 그 육신의 눈에 비추는 것들이 갖는 영적인 의미는 깨닫지 못한 채 물질적인 아름다움에 현혹되게 된다. 육적인 아름다움에 현혹된다. 거기서도 사랑은 생겨난다. 이 사랑이 바로 육욕적인 자기사랑이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것들을 많이 사랑한다 해도 그 사랑은 그것을 사랑해서 그 사랑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회귀적인 사랑이다.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회귀적인 사랑은 하나님만 할 수 있다. 인간은 그런 회귀적인 사랑을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자기 밖의 세계를 창조하셔서 이 세계를 사랑하시고 인간을 사랑하신다. 그 세계자체가 당신이 그 안에 계신 세계로 그래서 그 세계를 사랑하는 그것이 결국은 그 모든 피조물을 있게하신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회귀적인 사랑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것은 하나님 당신자신을 사랑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회귀적인 사랑이다. 그래서 인간이 이렇게 하면 안된다. 인간은 그 하나님의 사랑에 부합시켜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히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시도록 도와야 한다. 그때에 인간에게 참된 행복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육욕적인사랑이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갚은 어둠속을 들어간다. 그렇게 주님을 끊임없이 사랑하면서 살기위해서는 육에속한 결단만으로는 안 된다. 진리의 끊임없는 빛, 그것을 즐거워하는 마음 그 아래서 끊임없이 영적인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