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구하였던 일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3-4).
하나님께 대한 그 온전한 믿음 그리고 그 하나님께 대한 그 깊은 신뢰 이런 것 때문에 시인이 미래의 위험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당시에 사람들에게 제일 무서웠던 것은 전쟁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은 정말 미친 짓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죽어가고, 인간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되는 전쟁을 생각해 보십시오. 심리학적으로 보면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정신병이 된다고 합니다. 특별히 사람을 죽이고 사육을 해본 이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정말 정신병이 되며,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전쟁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 비참한 전쟁을 이 시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무수히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전쟁이 소수의 도망가는 사람을 추격해서 죽이는 것 같은 전쟁은 엄밀히 말해 전쟁도 아닙니다. 그러나 군대가 어마어마한 적군의 수에 의해 에워 쌓였다면 그것은 곧 두려움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도단 성에 있던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아침에 일어나서 성을 에워싸고 있는 아람 군대를 보면서 ‘아, 주인님, 이제 우리는 죽게 되었습니다’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탄식하는 장면을 여러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나는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태연하고 편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구원이시니 누가 나를 대적하리요’ 라고 하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도 똑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대적이나 우리의 삶에 펼쳐지는 이런 고통스런 상황이 얼마나 큰가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하나님께는 큰일도 없고 작은 일도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에 비하면 그것은 모두 작은 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여호와는 내 편이시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이시며 나의 구원이십니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에워싼 원수들의 수나 그 적군들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 하나님 편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 분의 능력과 은혜 아래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깊은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 안에서 이 시인은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군대가 진칠 지라도 나는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왜? 내가 주님 편이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 안에 나의 인생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전쟁이 나고 시련이 오고 환란이 오고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평생에 기도제목입니다. 그 평생에 기도제목이 하나님이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사모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인이 시편 18편에서 고백하였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그 고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힘이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구원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이 시인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관상하면서 한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그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장소가 여호와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온 천지에 깔려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아름다움은 자연적인 아름다움과 도덕적인 아름다움입니다.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하늘의 달과 별, 바다와 바람, 물과 구름, 새들과 벌레들, 아름다운 숲속, 향기로운 공기, 그리고 꽃 냄새, 흘러가는 물, 풀포기와 예쁜 돌들, 대지를 가로지르는 폭풍, 바다 위를 지나는 그 수많은 바람과 물결, 햇빛... 이런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도덕적 아름다움은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이 세상 속에서, 자연 속에서 잘 발견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잘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집 안에서 발견됩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오늘도 참회하는 사람들, 죄 가운데 있었지만 오늘도 주님 앞에 다시 하나님 앞에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도록 하나님이 베푸시는 그 용서, 이 세상에서 이 거칠고 악한 세상에서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든 사람들에게 이 세상을 이기며 살도록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은혜와 힘 이런 것들을 가장 아름답게 경험 할 수 있게 해 주는 곳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간다고 하는 것은 주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신지 배워가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매일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날이 갈수록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 전보다 더욱 사랑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서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시인이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갈망하는 것입니다. 창과 창이 맞부딪히고 칼과 칼이 소리를 내는 전쟁터에서 그 전쟁이 목표하는 바는 세상에 속한 것이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에 끊임없이 사랑하게 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영원히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노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곤고해 지는 이유는 하나님의 그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발견하면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는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질서와 하나님의 통치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뜻을 좇아서 살 수 있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안에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매일매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