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드리는 탄원
“주는 나에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 하시고 지도 하소서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 물에서 빼어 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시 31:3-4).
이 당시에는 무슨 포탄이나 총이나 이런걸로 전쟁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창이나 칼 마차 같은 것들로 전쟁을 하던 시대니까요, 그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기를 보호 하는 가장 훌륭한 장소가 산성이였습니다. 접근하기 어려운 깍아지는 듯한 절벽이니 가파른 산위에서 성을 쌓고 그리고 거기에서 항쟁을 하는 것이지요. 뭐 공격을 못할 이유는 없지만 공격을 해도 많은 희생자를 내야 하는, 그래서 위에서 한사람이 수비를 하면 백사람이 공격을 해도 쉽지않은 그런 지형이예요. 이제 성을 짓고 항쟁을 하는거거든요. 도시가 설때에는 이런 그 절략적인 고려를 제일 먼저 하게 되는 거예요, 전술적인 고려를 제일 먼저 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이 시인은 하나님을 나에 산성이시며 바위이십니다. 고백을 하는 거죠. 즉 하나님이 산성이시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한 어떠한 외부에 공격을 받아도 거기에 무너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라는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는 그런걸 지금 고백을 하고 있는겁니다. 어떠한 외부의 공격이나 성을 정복 하고자 하는 어떠한 전쟁에 시도도 성을 정복하기 어려운 것처럼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도전 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보호 할 산성이요, 또 바위가 되어 주신다 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은 누구도 정복 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기만 하면 그 보호와 은혜의 해택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시인이 그런 보호와 은혜의 해택을 하나님 앞에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죠.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호소 하고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 할 때에 갈길을 가르쳐 주고 또 힘이 없어서 그 길을 가지 못 할 때 실제로 그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그러한 은혜를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 하고 있는 것이죠. 결국은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산다 할 때 그거는 하나님의 명예, 혹은 하나님에 영광을 위한 삶인데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는 삶을 위해서는 우리가 많은 것을 그 많은 일들을 하고 이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그 이전에 산성이신 하나님 안에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예요.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제일 먼저 기도 하고 있는 것이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이런 저런 것들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제일 먼저 앞에 기도 하는 것이 하나님은 나에 산성이시고 바위 이십니다. 주님을 그 누구도 정복 할 수 없듯이 내가 주님 안에 있는 한 누구에 의해서도 정복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시인의 과제는 무엇이겠어요? 원수를 두려워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신을 두려워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제일 큰 숙제가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깊이 의지 하고 주님 앞에서 살아 가는 그런 사람을 앞에 간구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 오늘 이 성경에 보면은 그 시인이 뭐라고 그러냐면 그물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그러니까 원수들이 이 시인에게 고통을 주는 방법이 뭐냐면 그물을 친거예요. 그물은 그래서 당시에는 고기를 잡는데 에만 그물을 치는 것이 아니라 짐승을 잡고 그러는데 그물을 치고 특히 새를 잡는데 그물을 쳤다고 해요. 그래서 새가 날아가는 곳에 가느다란 실로 그물처럼 만들어서 넓게 펼쳐 놓지요. 그러면 새가 휙 날아가다 탁 걸립니다. 걸리면 목은 빠져 나갔는데 몸이 한 3분의 1쯤 빠져 나가고 근데 빠져 나오지는 못하는 거죠. 뒤로 가려고 하면 깃털이 거꾸로 걸려 가지고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러니까 기기 한번 그물에 걸리면 그러면 새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거기서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올무, 그물, 웅덩이, 이런 비유들은 모두 빠지는 건 모두 자신의 힘으로 빠지지만 거기에서 건짐을 받는 것은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는 안되는 그 어떤 상태를 의미 하는 거죠. 시인이 그런 속에서 깊이 고통을 받으며 그 깊은 웅덩이와 그 깊은 고통 속에서 건져 냄을 받지 못해서 아파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끊임 없이 당신의 품으로 불러 들이시는거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산성이시며 피할 바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기만 하면 누구도 하나님의 의사를 반해서 그 사람을 넘어뜨리거나, 해치거나, 혹은 그를 쓰러뜨릴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인이 주님을 의지 하면서 이렇게 살 간절한 소망을 갖게 되는 거죠. 우리의 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똑같은 일을 만나도 우리가 어떤 마음의 상태를 가지고 있느냐에 의해서 그 문제를 통하여 우리들이 처하게 되는 상황이 가가 다르다는 거죠.
무슨 뜻이냐면 똑같이 어려운 상황을 만났는데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 있으면 그 어려움을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꼭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 하며 하나님 앞에 메달리는 그런 상황이 됩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올바르지 못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더 많이 의지 하고 하나님 밖에는 그 사람을 이런 위기에서 건질 수가 없으니까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 하고 메달리는 가운데 자신의 심령이 새로워지고 순종 하는 삶으로 돌아가도록 하나님이 그런 어려움을 주시지만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하면 그 어려움을 만날 때 아 사람에 마음이 굳어지고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서 반감이 생기고 이런 시련을 통해서 자기를 다루시는 하나님 앞에 반항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전자에 사람에게는 고난이 십자가가 되어서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기회가 되지만 후자에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의지 하는 기회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져 떠나가고 마음이 굳어지는 계기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좋은 것을 주셔도 우리가 신앙이 살아 있을 때 그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받는 것이지 우리의 신앙이 살아 있지 않으면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셔도 그것을 좋은 것으로 받지 못합니다.그래서 우리들이 매순간 주님 의지 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런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