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건지시는 주의 의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시 31:1-2).
이것도 탄원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는 역사 적으로 마틴 루터가 복음을 발견 하는 개기를 만들어준 시편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1절을 통해서입니다. 시인은 무엇인가 굉장히 곤고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이 시인이 고백하는 바가 주의 의로 나를 건져 주옵소서 하는 기도 였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보태는 것이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옵시고 나를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치 말게 하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럼 여기서 주의 의로 건진 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그 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간의 의가 있고 하나님의 의가 있는데 인간의 의는 하나님이 계시 해주신 법도에 맞도록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예요. 그게 의 에요 그게 없고 제멋대로 사는 것은 불의죠. 그럼 하나님의 의는 무얼까?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신데 이 당신이 만든 세상의 피조물들인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도전해요. 왜 그럴까요? 죄 때문에 그렀겠죠. 죄 때문에 죄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함에 도전해요. 하나님의 고유한 거룩하심은 인간에 의해서 도전 받고 훼방 받고 그럴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주신 거룩함 들이 있어요. 자 이것을 공장에서 만들 땐 가구였는데 여기 이렇게 하나님을 경애 하는데 받쳐 지니까 성구가 되는 것이죠? 그렇죠? 이것은 하나님 때문에 거룩해 지는 것이지요? 그렇죠? 근데 이러한 거룩한 가구가 만약에 이 위에서 요리를 한다든지 화투를 친다면 그러면 이가구에 하나님이 주신 거룩함을 더럽히는 것이겠죠. 그것은 이 가구 자체에 거룩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가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거룩한 거예요. 이걸 갖다 패기처분이 돼서 버렸어요. 그래서 고물상에 있는데 그 위에서 요리를 한다든지 화투를 친들 무슨 상관이 있겟어요. 이미 패기처분 되어서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데 쓰레기 속에 묻혀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해서 하나님 자신의 거룩하심은 도전 될 수 없지만 간접적으로 인간들이 하나님이 부여 하신 이 땅에서의 거룩함에 대해서 도전함으로서 하나님을 훼방 하는 것 같은 반역을 할 수 잇다는 거죠 이런 것들로부터 하나님 자신이 거룩함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바로 의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에 거룩함에 도전 하고 맞서면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의롭다는 사실이 두렵고 떨리겠죠. 그러나 반대로 그 사람이 하나님 편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함에 도전 하고 사람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면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사실이 그에게 무한한 위로가 되겠죠. 왜? 하나님이 내 편이시니까 오늘 이 시인이 그런 기도를 드리고 있는거죠. 자신은 하나님편에 있는데 누군가에 의해서 끊임없이 공격을 받으면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어요. 그리고 큰고통 가운데 있는 거죠. 그때에 이 시인의 기도가 바로 자신이 그런 고통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셔야 됩니다. 그런 내용이 뭐냐면 주위 의로 나를 건지소서. 이건 이 자체가 이미 벌써 뭐를 뜻하는 거에요? 내가 주님의 통치 아래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주님의 편입니다. 그런데 악한 것들이 나에게 고통을 주고 이 세상에서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의 의로 나를 건져 주소서. 그러면 나에게 큰 복이 되겠나이다. 이런 고백을 하고 있는 거죠.
주 여호와는 나에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라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당신의 뜻대로 행하시는 것이 큰 위로요, 소망이 되는 거예요. 왜? 내뜻이 없고 내뜻을 모두 포기 하고 주님의 뜻에 메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친구가 나의 친구고 우리 하나님의 원수가 자신의 원수이니 주님 맘대로 행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신앙 생활이예요. 그게 바로 신앙생활이예요. 그래서 이 시인은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이 얘기는 또 한가지 뭐를 보여 줍니까? 자기 안에는 이런 의로움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실제로 없다 보다는 나에 의를 근거로 하나님이 구원을 해주실 정도 그런 정도의 의는 없다고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기가 자신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깊이 의지 하면서 주님께 메달리게 되는 것이예요. 그게 신앙이예요.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데도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위해서 일 하시는 열심을 보면 나는 정말 부패 하고 게으른 인간일 뿐이예요. 또 하나님을 깊이 바라보면 하나님의 그 완전하심을 발견하게 되요. 나도 온전해 지기를 많이 애쓰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에 비하면 나는 불결하기 짝이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파악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완전 하심을 바라보면서 주의 의로 나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하고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메달리게 되는거죠. 그러면서 시인이 2절에서 고백을 하고 있는 바가 이런 내용이 되는거죠.
<말씀>“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이 무엇인가 시인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끊임 없이 메달리고 있는거죠. 그렀죠? 여기에서 바위라고 하는 것은 전쟁에서 숨을 수 있는 요세 같은 것을 의미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바위가 되어서 그래서 무엇에 의해서도 그 헤침을 당하지 안는 그런 안전한 속에 거하게 되는거 그것이 신감이다 생각 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에게 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위가 되시고 신성이 되시는 거죠.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마음은 하나님을 의지 하고 사는 마음이예요. 하나님을 의지 하는 마음을 주님이 나를 붙들려 아니 하시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음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그 아름다음을 끊임없이 보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또 한편으로는 그 아름다움 때문에 사랑하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의지 하는 마음을 버리고 주님께 온전히 메달리게 되는 것이죠. 그런 신앙이 아름다운 신앙이예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떠한 위기에 곤고 하고 힘든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그래서 주님을 의지 하면서 살게 만들어 주세요. 여러분들도 이런 주님의 은혜를 의지 하며 사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