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과 아는 것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법을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시 50:16-21).
여기에서 얘기하는 악인이다 의인이다 하는 이야기는 이스라엘백성들 밖에 있는 사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백성들 안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 안에서 의로운 사람이냐 아닌 사람이냐를 나눌 때는 단순히 이스라엘백성이냐 아니냐는 그 기준 이상의 기준이 들어오는데 기준은 단순히 외형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따라 살고 하는 그런 거 아니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벌써 구약시대에도 인간의 내면에 있는 마음과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삶, 그리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 이 세가지가 일직선상에서 일치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제사를 받는다. 만약에 그런 것들이 일직선상에 있지 않다면, 결국은 저 좋아서 드리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먼저 예배하는 것이 먼저겠어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먼저겠어요? 하나님을 아는 것 없이는 예배가 불가능 한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는 것과 예배하는 것 사는 것은 이 세가지가 놀라운 일치를 이룬다는 것이죠.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고 은혜를 받으면 똑바로 살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것은 맞는 말이예요 왜냐하면 악인이라고 하는 것, 그 사람은 마음 본성자체가 악해서, 악의 길로 가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게가 반드시 옆으로 밖에 갈수 없는 것, 그것처럼 그렇게 본성자체가 그렇게 되어서 계속 옆으로 밖에 갈 수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면 그 사람 자신이 변하지 않고 새로워 질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은혜를 받아야지만 그 사람이 변화되고, 새로운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고 당연하잖아요. 그게 너무나 당연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라고 하는 것은, 산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어떻게 살기도 하지만, 또 한가지는 어떻게 사는 냐에 의해서 아는 것이 결정되기도 하죠. 이런 순환관계에서 어느 것이 은혜가 먼저냐, 그 다음에 자신의 의지의 결정이 문제 하는 라고 하는 것을 따질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지 안에서 은혜를 역사하고 또 은혜 안에서 의지를 움직이시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하나님의 몫을 하시면 되고 우리인간은 자신 자신의 몫을 하면 되는 거죠.. 뭘 하든지 내 힘으로 했다고 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것 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 일을 행하는 것이죠. 오늘 성경에 보면.. 여기에 있는 악인은 바로 껍데기로는 이스라엘백성이고 또 겉모양으로는 제사도 드리고 예배도 드리고 율법을 지킨답시고 살아가는 그런 이스라엘 사람인데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외의 정신과 그리고 성심으로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악인으로 낙인 찍인거예요 그사람이 그러니까..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고 또 네가 어찌하여 내 언약을 네 입에 주는냐 ..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께 탄핵 받고 있는 이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믿으라고 전하고..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아 난 하나님께서 나에게 언약을 맺으신 사람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맺은 약속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많은 은혜를 주시지. 그리고 나에게는 이 언약 안에서 하나님이 이런 저런 것들을 나에게 보증해주셨다 라고 되뇌면서 살아가는 모양이에요.. 하나님께서 “네가 내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뒤로 내팽개채지고, 그리고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한 자와 친구가 되고. 네 입을 악에게 주고 혀로 괴사를 지으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을 비방한다 이게 무슨말이예요? 가족관계부터 벌써 다 깨트려져서.. 이기심이 발동해서 형제들간에 다투고.. 한마디로 말해서 삶으로서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거죠. 그런데 어째서 너는 마음으로 그렇게 악을 품으면서 어떻게 내 율례를 전하고 어째서 입술에는 어떻게 나와 맺은 언약을 말하느냐 이거예요. 왜그러겠어요? 마음에는 하나님 향한 진정한 경외심도 없는데 율법을 얘기하고 그리고 나는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와 하나님은 특별한 관계다라고 얘기는 하는 동기가 무엇인가 하면.. 결국은 자기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예요. 이런 현상들이 이미 구약시대에도 비일비재 했던 것 이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율례를 얘기하지만 자기에게 불리한 것을 얘기하겠어요? 남의 돈을 사취하는 사람이 악을 행하여 남의 것을 빼앗지 말라는 율례를 얘기하겠어요? 간음하는 사람이 간음하지 말라는 율례를 이야기 하겠어요? 하나님의 율법 전체를 놓고도 제 마음에 드는 것만 곶감 빼듯이 빼서 믿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형성한 하나님은 우상이에요. 하나님이 아니 예요. 자기가 원하는 성경구절을 뽑아서 만들어낸 하나님. 그게 하나님이냐는 거예요 ?.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전부 우상이에요.. 그 우상에게 예배하고 경배하는데 형식은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 형식을 비는 것이에요. 하나님에게는 견딜 수 없는 모욕이 되는 것이에요. 만약에 너무 원색적이어서 그렇지만.. 만약 여러분들의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뜨겁게 안아주면서 마음속으로는 다른 남자를 상상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은 안아주는 그것이 모욕적이게 생각 들지 않겠어요? 차라리 가만히 앉아서 그냥 평범하게 행동하면 모욕은 안 느끼죠.. 그런데 뜨겁게 끌어안고 입을 맞추면서 마음속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남성을 생각한다면 끔찍하고 더러운 것 아니 예요? .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다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집어 치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곶감처럼 걸려있는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한번씩 찔러보고 자기한테 맛있는 것만 빼 가지고 그것을 꿰어 여기에서 그려내고 있는 하나님이 바로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경배했을 때 하나님은 그런 경배 받지 않으신다 이거죠. 믿든지 말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그렇게 하는 것은 안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께는 아주 모욕스럽고 불결하고 더러운 것이예요. 그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네가 어떻게 그러냐..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탄핵하시는 거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이런 일을 계속했는데.. 내가 잠잠했다.. 잠잠 하시는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겠어요? 어떤 사람 둘이서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자와 무신론자가 얘기를 합니다. “너는 나에게 하나님 살아있는 증거를 못되지만, 난 너에게 하나님이 살아있는 증거를 많이 댈 수 있다.” 그러면서 내가 앞으로 10분 동안 하나님을 욕을할것인데 하나님이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 봐라.. 10분 동안 하나님을 계속 욕했다. 끝났어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봐라 이렇게 하나님을 욕하는데도 하나님 없지 않냐? 하나님이 없는 증거이다..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 난 그게 하나님이 있은 증거라고 생각한다. 왜?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잠잠한 거예요.. 그래도 자기와 언약을 맺은 백성인데 ‘깨닫고 돌아오겠지’ 하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잠잠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 때문에 마음 놓고 악을 행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님을 자기 스스로 그려내는거죠 자기에게 편하게 그랬더니 내가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구나.. 그게 뭐예요? 언약 안에 있다고 떠들고 그리고 하나님의 율례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러면서 결국 그렇게 전하면서 살기만 하면.. 삶하고 그렇게 말하는 것과 뒤집혀도 하나님은 별로 문제 안 삼는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주일날 얘기했듯이 제사를 드리니까.. 자신이 이런 삶을 살아도 하나님 앞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뇌물을 드렸으니까. 삶으로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화합지 못해도 그래도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니까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씻어주실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는 거죠. 난 절대 너 같은 인간이 아니다.. 너라면 그랬을 것이다.. 너라면.. 그렇게 너에 대해서 악을 행하고 나쁜 짓을 했을지라도.. 와서 뇌물을 바치면 그것에 헤헤하면서 결국은 그 사람의 대한 공정한 도덕적인 평가를 접어버렸겠지만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내가 너와 같은 줄 아느냐” 결국 진실하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알아요. 그리고 고난가운데 섬기는 사람들은 그 하나님이 언제나 인간의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판단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안다 이거죠. 사랑하는 사람은 그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은 자기 맘대로 하나님을 그려내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 없는 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이것이 구약에 의하면 결국 우상숭배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하시는도다. 오랫동안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맘대로 살던 사람들은 결코 자기의 죄와 악을 알 수 없수 없어요... 왜냐하면 이미 그 안에 가득 찬 죄가 그 자신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볼 수 없도록 그의 눈을 어지럽히는 거죠. 죄는 우리 안에 들어와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우리의 전 영혼에 영향을 미쳐요.. 그래서 우리의 의지는 하나님께 굴복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은 육욕에 불타게 만들고 우리의 지성은 그 죄가 더럽혀서 혼탁하게 만들어서 마치 유리창을 통해서 늘 밖을 들여다보는데 거기에다 흙을 잔득발라 유리창은 있고 모든 것은 있는데 밖을 볼 수 없게 하는 것과 같아요. 그것이 죄의 역할이에요. 그런 삶을 살면서 도저히 깨닫지 못하니까 이런 언약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하나님의 보복이라 생각하면 안 되요.. 보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가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는 것 보다.. 그의 영혼을 사랑하시니까. 징계를 내리셔서 그 영혼을 깨어나게 하시는 것이에요.. 깊은 잠에 빠질수록 더 많이 흔들어야 되죠. 우리 어렸을 때,, 고등학교 다닐 때보면 친구들이 가끔 같이 자잖아요. 일어나라고 해도 안 일어나요. 나중에 막 따귀를 때려 일어나라고 해도 안 일어 나요.. 그렇게 곤하게 자요. 결국은 깊이 잠들면 잠들어도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하여도 그 말씀에 대해서 깨어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음을 깨우기 위해 흔들어 깨우시는 장면이에요.. 때리는 거예요. 마음을 일깨우게 하시는 것이에요.
그러니 악인에게 무슨 평강이 있겠어요?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그렇게 모욕하듯이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의 삶에 복을 달라고 하는데 후환무치한거죠..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의 얼굴에 침 뱉고, 존 오웬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신자가 죄를 짓는 그 순간 그는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수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 분의 면전에 침을 뱉으면서 그 침이 마르기도 전에 나를 좀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이죠.. 그건 후환 무치죠..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기대하라 네가 어떤 죄가 있는지 네가 볼 수 있도록 하나씩 하나씩 너에게 보여주리라 큰 심판이 이스라엘백성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는 백성을 향해 가지고 계시는 그 은혜가 있어요.. 그게 무엇인가 하면.. 무한한 죄의 용서와 선을 행하며 살기 원하는 백성들에게 주시는 무한한 은혜의 공급이에요...... 그러나 그런 용서를 구하지 않는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이 용서 하셨어도.. 큰임없는 정죄 의식 속에서 살아가야 되는 거죠..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 받은 우리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의 용서를 얻은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끊임없이 죄를 지으며 살면서.. 입으로 짖어대기를 교리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믿는 순간.. 우리의 지난 죄뿐만 아니라 현재 짓고 있는 죄, 미래의 죄까지 용서해 주셨어.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는 단번에 영원히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죠.
정확하게 맞았지요. 정확하게 맞는데.. 문제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얘기하지만.. 동기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돌아가고 섬기기 위한 용서가 아니고 계속 자기 갈 길을 가기 위한 용서예요.. 그게 바로 죄가 그 사람을 속여서 부패한 추론에 이르게 하는 거예요. 분명히 입술로는 그렇게 말했고.. 교리적으로 전혀 틀린 게 없는데 그의 양심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정죄아래서 괴로워하며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예요. 그래서 오죽했으면 하나님이 내가 가령 줄인다고 하자 그래도 내가 네게서 제물을 받겠느냐.. 왜냐하면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다 내 것이다.
신앙의 근본은 하나님을 맘에 두는 것이에요. 그것이 신앙의 근본이에요..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살피며 정말 내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그래서 그 하나님을 계속 마음에 두고 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은혜를 구하고 도움을 구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