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사라질 때
“무수한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내게 미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이다”(시 40:12).
이것도 회상하는 거거든요. 회상을 하는데, 이제 큰 재앙이 일어나서, 재앙이 한 둘이 아니라 아주 많은 재앙이 일어나서, 그것들이 시인으로 하여금 그 재앙을 피할 수 없도록 에워싸고 있습니다. 이게 시인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것과 관계가 있는 거죠. 여기서 재앙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아마도 여러 가지 환경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자기를 둘러싸고 계속 일어나는데 이런 어려움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데, 이런 속에서 더 큰 어려움은 무엇이냐 하면, 죄가 이 사람에게 미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환란과 많은 환경적인 어려움이 우리에게 어려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은혜가운데 살아가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사실 그것을 통해서 살아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더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죠. 그래서 좋다고 까지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일단, 환란과 어려움이 있을 때 내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나를 자극해서 하나님께 떠 매달리게 만들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게 만들죠.
그런 점에서 좋다 나쁘다고를 말하기 이전에 그렇게 되기 때문에 일단 내안에서 영적인 생명이 역사하고 있는 거죠. 물론 좋다 이런 것은 나중문제 아니겠어요? 환란이 막 닥쳐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도와달라고 막 매달리는데 좋다 나쁘다는 나중문제 아니겠어요? 그런 생명의 반응이 나타나는 거에요. 살아있는 것들이 하다못해 벌레 한 마리라고 하더라도 고통을 가하면 움직이면서 꿈틀거리고 자기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라고 하는 것을 드러내잖아요. 말하자면 그런 거거든요. 그런데 시인은 그러지를 못했어요. 그리고 그런 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서 이 시인으로 하여금 피할 수 없이 자기를 에워쌀 때에 죄가 자신에게 미치게 된 거에요.
근데 오늘 성경은 "나의 죄가 미치고" 이랬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지은 죄가 자기에게 미치는 것은 환란이 되겠지만 그런 환란과 시련을 당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고통이 주어지는데, 그 속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게 되는 거에요. 그 죄가 자신에게 미치니까 우러러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우러러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실은 신자의 일생이잖아요. 근데 환란을 만난다던지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아니고는 누구한테 매달릴 수 있겠어요? 그렇죠? 시련과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 아니면 누구한테 매달려서 도움을 구하고 간구할 수 있겠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하나님 이외에 다른 분에게 그렇게 매달리고 의지할 데가 없거든요. 그런데 죄악이 자신에게 미치게 되니까 그 하나님을 우러러볼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우러러본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위해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그러니까 대게 절망이라고 하는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죄의 영향이에요. 그러니까 자신 안에 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구김이 없고 하나님을 온전히 앙망할 수 있으면,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내 안에서 계속 솟아나는 소망을 발견하게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믿음과 사랑이 없는 곳에는 소망이라는 것이 생겨날 수가 없는 거에요.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면 절망이 스며들어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깊이 낙심하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시인은 다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덧붙이는데, "죄가 내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죠. 처음에는 환란과 시련을 많이 만날 때에는, 환란과 시련에서 벗어날 시도들을 하는 거에요. 만약에 환란과 시련이 닥치면 누구든지 얼른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그 고통 속에서 계속 머무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환란과 시련을 당할 때에 거기에서 속히 벗어나고 싶어 하는데 하나님이 무엇인가 이 사람을 이 환란과 시련을 통해서 고치고자 하실 때에는 결코 하나님께서 그렇게 당신에게 매달리는 일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써 신속하게 벗어나게끔 그렇게 안 하시는 거죠. 그래서 그런 환란과 시련을 만날 때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기 전에 자기를 성찰하게 되는 거에요.
근데 그렇게 살던 자신이 자기의 죄악이 자기에게 미치고 그리고 자기는 많은 죄 때문에 우러러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죄가 머리털보다 많기 때문에 마음조차 사라져버리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거에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이 고백을 드리고 있는 거죠. 여기에서 그러면 마음이 사라졌다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이 구약성경에서 마음, 히브리말로 '레브' 혹은 '레바브'라고 하는 단어는 인간의 지성과 그 다음에 의지, 이것이 들어있는 인간의 중심부를 가리켜요. 무슨 뜻이냐 하면, "내 마음이 사라졌습니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내가 없습니다"라는 이야기에요. 그것은 죄 때문에 생겨나게 된 극도의 혼란의 상태를 가리키는 거죠.
우리들이 거룩한 사랑은 우리의 삶에 질서를 부여해요. 사랑과 지식, 이 두 개가 우리의 삶에 질서를 부여해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명확히 알게 되면 우리의 삶에 질서가 생겨나게 되는 거에요. 무엇을 먼저 해야 되고 나중에 해야 되는지, 그리고 어느 것이 중요하고 어느 것이 사소한 일인지, 그리고 일생을 살면서도 무엇이 궁극적인 목표이고 어떤 것이 사소한 목표인지에 대한 이 질서가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의 충동에 빠지고 또 하나님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혼란 속에 있게 되면 이 모든 순서들이 뒤죽박죽이 되는 거죠. 죄가 하는 일이 바로 그렇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영혼과 마음, 우리의 삶에 있어서 질서는 결국 하나님 홀로 온전한 질서를 만들어 주실 수가 있는 거죠. 물론 우리도 하나님 없이도 질서가 생길 수 있죠. 근데 그 질서는 결국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가져다주지 않는 질서가 되는 거죠.
여러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보통 끊기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예전에는 없던 많은 일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우선, 담배를 비우게 되면 호주머니에 잔돈이 남아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루에 한 갑씩 담배를 사야 되니까 그게 적은 돈이 아닙니다. 호주머니의 잔돈이 남아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지저분해집니다. 호주머니 어디를 뒤져보면 담배가루가 나오고 몸에서는 담배냄새가 납니다. 잇 사이에 니코틴이 끼기 시작하고, 하면서 담도 나오기 시작하고 많은 변화들이 옵니다. 일단 그것이 자기에게 인에 박히게 되면 그 담배를 피워야 하는 욕구가 그 많은 무질서들을 이깁니다. 그래서 그것이 우선순위 1번이 되고 그 다음에 그것에 입각해서 나머지 것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지저분하다 뭐다 해도 나는 나대로 질서가 생겨서 지저분하고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해도 양치를 한번 더하면서라도 나는 담배를 피워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질서는 대부분 질서가 잘 잡히면 잡힐수록 자신의 건강에 큰 어려움이 오게 됩니다. 말하자면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는 피우더라도 이거 냄새나는 것도 싫고 잇 사이에 색깔이 변해가는 것도 싫고 기침하는 것이 싫고 이 모든 것들이 견디기 힘든 것이 되면, 다시 말하면 이 질서가 적응이 안 되면 언젠가는 흡연을 끊게 되는데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죄는 죄대로 자기 나름대로 질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 회심을 하려고 하니까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이 소리를 치는 거에요. "이제 정말 나를 버릴래? 네가 나 같은 이런 좋은 죄의 즐거움을 버리고도 살 수 있을 거 같아?" 이러고 자기에게 도전하는 거에요. 그런 것들이 이 안에서 질서가 생겨나는 거에요. 그렇게 될 때에 질서가 생겨나게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비취게 되면, 이 질서가 잘못 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거에요. 그런 속에서 오는 혼란이에요. 죄는 그렇게 죄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우리의 지성을 혼란시키는 일이에요. 그래서 은혜가운데 있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그 때에 우리는 모든 것들이 질서 잡히게 돼지만 거기에서 멀어지게 되면 우리가 올바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서 혼란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시인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라고 고백하는 곳이 바로 이런 외적인 환경과 내적인 어려움의 상태였습니다. 이런 속에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좋은 것은 우리가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욕망을 끊임없이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면서 질서로운 생각과 그리고 질서로운 마음을 가지고 일상을 대하며 하나님을 대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에요. 거기에 신자의 진정한 행복이 있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