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건지시는 자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자체하지 마소서”(시 40:17).
이제 마지막 드리는 탄원이죠. 그리고 또 아마 예전에 드렸던 간절한 기도에 대한 회고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는 먼저 자신의 상태를 고백을 하는데, "나는 가난하고 궁핍합니다."라고 라는 고백이죠. 이 시가 왕이 된 다음에 쓰여 졌을 수도 있고, 안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왕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 여기 구체적으로 안 나오니까요. 어쨌든지 간에 그가 왕이 된 뒤에도 즐겨서 시편 안에서 고백하는 바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라고 하는 이 고백이에요. 그러면 여기에 나오는 "가난하다", "궁핍하다"라는 이런 고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어요? 물론 그는 왕이 되기 전에 쫓겨 다니면서 매우 가난하고 궁핍한 삶을 살았어요. 그래서 끼니를 이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받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가난하고 궁핍하다"라고 하는 이 말은 그것보다는 훨씬 더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왕이 된 뒤에도 그는 이런 고백을 하나님 앞에 많이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하다"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외부로부터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죠. 어느 시대고 어느 나라에나 아무리 뜻을 임금이 잘 펼쳐도 사회 자체가 공정한 배급사회가 아니라 경쟁사회이기 때문에 항상 처지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민주사회 자유국가에서는 어차피 살다가 보면 경쟁이 생기고 경쟁이 생기다 보면 거기에서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우리들이 가르쳐야 할 것을 경쟁하는 법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화합하고 함께 살아가는 그런 타협과 공존하는 상생의 삶을 아이들에게 먼저 가르쳐야 되요.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고 그것을 먼저 잘 가르치면, 결국 자기가 이 사회 속에서 살다보면 결국은 경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때에 근본이 되는 정신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지고 낙오자가 된 사람들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해 줘야 된다 이런 얘기에요.
근데 그렇게 가난해서 결국은 사람들에 동정심에 기댈 수 없을 그 때에, 결국은 나라에서 사람들을 돌봐줘야 되는 거죠. 그것이 나라의 아주 중요한 임무에요. 이 시인이 이미 왕이 되기 전에도 자기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후에 생겨나지 않습니까? 빚지고 억울한 자, 도망친 자, 이런 사람들이 다윗의 왕권을 창출하는데 기여를 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한 결 같이 자신의 힘으로 자기를 지탱할 수 없어서 외부로부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이 시인이 그렇게 깊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 견딜 수 없을 그 때에 자기가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말하는 것은 육체적인 환경과 삶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상태를 이야기 하는 거죠. 이웃은 우리에게 한모금의 물과 한 덩어리의 빵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영혼을 진정으로 평안하게 하고, 그리고 굶주리고 목마른 내 영혼을 해갈시키고 기근을 모면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거죠. 먹고 나면 다시 배고프고, 마시고 나면 다시 허기진 그런 상황을 모면할 수 없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시인이 나는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절절히 고백을 하고 있는 거에요.
이렇게 하나님께 간절히 빌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한 이유는 자기에게 필요한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는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죠. 우리에게 대부분 기도의 제목이라는 것이 결국은 무엇 때문이에요? 자원의 부족 때문 아니에요. 우리의 육체는 지상의 자원을 필요로 하고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천상의 자원을 필요로 해요. 그런 자원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거죠. 그런 자원들을 하나님 앞에 필요로 하는데, 그런 절실하게 필요한 이 자원들을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하는 이유는 주님이 이것들을 우리에게 충분히 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믿음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고 지금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하늘로부터 부어주실 수 있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런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덜 의지하며 살아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면서 매일 매일 살아가는 삶,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마지막으로 시인이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오. 건지시는 자 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입바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살아온 모든 인생이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은 인생이었고 자기가 이제껏 겪은 수많은 환란 속에서 멸망되지 않고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그것이 수시로 하나님이 자기를 건지시고 도와주셨기 때문이라는 그 고백을 하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 이렇게 절실한 상황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과거에 하나님께로부터 인생의 위기 가운데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기억들이 떠오르게 되었을 거에요. 그래서 결국은 내 인생을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거죠.
정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신자의 마음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는 그런 신자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삶, 그것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에요. 그 의존의 마음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게 하고 주님을 붙들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자기를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사라들은 하나님을 향한 이런 의존의 마음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고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