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호를 기도함
“여호와께서 저를 보호하사 살게 하시리니 저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저를 그 원수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시 41:2).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사랑 때문에 빈약한 자들을 찾아가서 돕고 위로하는 사람이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니죠. 그랬다면 아마 많은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모순들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은 진심으로 자기를 믿고 경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오히려 확인하시는 거죠.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시인이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권고한다는 말은 지난번에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찾아간다." 그런 뜻입니다. 빈약한 자를 찾아가서 그를 돕고 위로하는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것이죠.
죄가 들어온 다음부터는 이 세상에서 생기는 모든 질서들이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 앞에 올바른 그런 질서들이 생기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은 질서들이 자꾸 생겨나기 때문에 이것들을 통해서 올바르게 살려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되는 거죠. 고통이라고 하는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질서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고통이에요. 그런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리고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하도록 만들어주심으로써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도록 격려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저를 보호하사 살게 하시리니 저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요."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가장 큰 복은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과 친근한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허락을 하시는 것이죠. 그것이 이 땅에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행복이에요.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이 세계와 인간들을 향하여 정하신 창조의 목적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것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을 경험하며 살게 해주시는 거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시고 당신이 정하신 창조의 목적도 선해요. 그러니까 그 선을 따라서 살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당신 자신이 정하신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같은 방향에 서 있는 거에요. 마치 바람을 등지고 항해하는 배처럼, 그 바람에 밀려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그 인생이 앞으로 가게 되는 거죠. 물론 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종종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르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것은 언제나 잠시 있는 일이고 그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모든 것들이 평정되어져서 그래서 평안하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질서대로 돌아가는 거죠.
이런 믿음을 성경에서는 악인의 번성함이라고 하는 것을 순간으로 보고 그리고 하나님의 선을 영원한 것으로 보는 것,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런 계획들을 나타나죠. 악인은 번성하는 것 같지만 벤 풀에 무성함 같고 아침에 풀 베어 놓을 때에는 살아있는 풀과 다름이 없지만, 한 낮에 빛을 받고 나면 그러면 이 벤 풀이 전부 시드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다름이 아닌 악인의 말로다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올바르지 않은 질서가 생겨나서 오히려 믿음으로 살려고 할 때 고통이 생기고 신앙 안에서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려고 해도 왠지 그것이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 같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이 나타나지 않는 것 같은 때에도 그것은 모두 악인들이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르는 잠시 있는 일이고 결국은 하나님은 당신의 질서대로 이 모든 만물들을 움직이시고 계시다고 하는 그 믿음이 요구되는 거죠.
그래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다."하고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이에요. 그래서 이 땅을 사는 동안에는 불행하게도 죄악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의 질서들이 때로는 대세를 이루기도 해요. 그래서 큰 파도처럼 밀려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 그 자신은 그 밀려오는 파도 위에 뒤움치는 아주 작은 배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거죠.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우리는 가슴에 새겨야할 교훈이 바로 그것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서 계명대로 살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을 믿지만,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악인의 모든 인생은 이 세상에서 시작에서 세상으로 끝나지만, 우리의 생명은 지상에서 시작되었으나 그러나 영원을 향해 잇대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인생의 가장 큰 숙제는 "고난을 받느냐, 평안한 삶을 사느냐? 이 시간의 세계 속에 있느냐, 아니면 이 시간의 세계가 끝나고 영원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느냐?"라고 하는 것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모든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그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인생을 살아서 그 하나님을 자신을 즐거워하느냐에 달린 것이죠.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주여 저를 그 원수의 뜻에 맡기지 마옵소서." 라고 비는 것이죠. 시인도 때로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도 있었지만, 그러나 애매하게 고난을 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신 것 같고 악인들은 처처에 횡행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모든 사상에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이 권세를 잡은 것 같은 세상 모두가 그들의 질서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그 때에도 시인이 그런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 그래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하나님은 견디기 힘든 인생의 이 고통, 악인을 인하여 당하는 말할 수 없는 수모, 그리고 견디기 힘든 괴로움들을 통해서 그것들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하나님의 뜻들을 시인의 인생에서 아름답게 수놓아 가는 것을 자기의 살아온 인생을 회고하면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환경은 어떠하든지 간에, 자신의 인생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에요. 그래서 환경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랑, 눈에 보이는 모든 환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 가운데 좌정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고 그분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그 신앙이 바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믿음이에요.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유일한 위로이고 또 힘이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