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중에 붙드시는 하나님
“나의 원수가 승리치 못하므로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나의 완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영히 주의 앞에 세우시나이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지로다 아멘 아멘”(시 41:11-13).
보복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어떤 의미인지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한 성품을 여기에서 회상하면서 그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나의 원수가 승리하는 것을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습니다."라는 고백이죠.
신자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잃어버릴 때에 겪게 되는 가장 큰 고통은 바로 이런 기도를 드릴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신자가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멀어지고 범죄 하게 되면 이 양심에 송사와 율법의 정죄, 이것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 라고 하는 이 고귀한 확신을 상실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이 나와 맞서시고 나에게 징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이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나와 하나님이 한편이 되고 그리고 나의 대적 자들이 나와 하나님을 향해 맞서는 이런 식의 구도들이 마음속에 확신으로 다가오지 않는 거죠. 보다시피 이 시인은 범죄 한 자신의 그 상태에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시인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미끄러지고 범죄 하여서 그래서 그런 고귀한 확신을 상실했던 적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리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 거치는 것들로 인해서 죄를 지은 그런 상태였단 말이죠. 근데 어떻게 이렇게 담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의 원수가 이기는 것을 당신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어요? 이것이 바로 언약관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이에요. 그래서 비록 자신이 죄를 지었고 잘못했지만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참회하고 다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게 될 때에, 그 때에 자신의 많은 허물과 죄 때문에 주님이 자신을 징계하실지라도 하나님이 악인이요, 원수들인 자기의 대적 자들에게 자신이 파멸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게 결국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택하신 언약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축복이죠.
쉽게 이야기 하면 여러분이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가 잘못해서 조금 팼습니다. 이렇게 해서 되겠느냐 하고 팼습니다. 그런데 옆집사람이 와서 이렇게 패서 되겠느냐고 하고 한대를 때리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면 “아이고,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하시겠습니까? 내 새끼가 내 맘에 안 들어서 나는 패도 다른 사람이 와서 패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의 관계가 그런 거죠. 그래서 뭔가를 잘못해서 하나님은 그를 징계해서 책망하시고 때리실지라도 원수가 두들겨 패는 것은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가 없는 거죠. 그런 것을 이 시인이 깨닫게 된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원수가 나를 이기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거에요. 그러면 "나의 원수가 나를 이기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고백하게 된 배경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가 비록 하나님 앞에 잘못해서 주님께 책망을 받지만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고 그리고 나는 그의 사랑을 받는 한 가족이다 라고 하는 것이 있지만, 원수가 악을 행하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에 의해서 꺾일 수 있는 사람들은 악인이 아니에요. 악인은 패망하면서도 그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꺾임이 없어요. 여러 분들이 신앙생활 해 나가면서 죄도 안 짓고, 특별히 다른 사람 괴롭히지 않고, 그렇게 신앙생활 해 나간다고 칩시다. 그게 잘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어떤 청교도 목사님은 말하기를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은 잘 길들여진 짐승으로써 사는 거라고 했어요. 짐승들도 보면 길들여지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니에요. 때로는 하나님 앞에 잘못할 적이 있고, 혈기로 살 때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꺾이는 사람, "내가 잘못됐구나!" "이것은 아니구나!", 그리고 "내 생각이 틀렸구나!", "내 의지가 너무 강했구나!" 그리고 꺾어지는 거에요. 그것이 신앙생활이에요.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 보면, 처음 주님을 믿을 때에는 잘 꺾어요. 그런데 예수를 믿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 휘기는 하는데 꺾이진 않아요. 휘는 거 하고 꺾이는 거는 틀린 거에요. 휘는 건 휘어진 거 같은데 놓으면 다시 제자리에요. 대나무를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휘어지잖아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죠. 놓으면 그대로 돌아가는 거에요. 그게 생명이 없는 신앙생활이에요. 절대로 그 안에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요. 교회라고 하는 문화, 그리고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 온 교회, 그리고 자기 일, 거기에 나름대로 굳어져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그거에요. 그리고 그런 개개인의 꺾여 지지 않는 완고함이 있을 때, 그 사람의 본성과 충돌하지 않는 삶의 상황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반항이나 이런 것들이 나타나지 않지만, 그 사람의 본성을 건드리는 상황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을 때, 거기에는 절대로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없는 거에요. 어느 정도까지는 참지만 그것은 순종이 아니에요. 창피하게 채면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꺾임이 없는 거죠.
거기에서는 참다운 하나님을 향한 사랑, 하나님을 향한 참다운 사랑, 이것이 동기가 되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은 결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을 맞서는 것이에요.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니까 결국은 점점 더 마음이 굳어지고 완고해지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친밀함 그리고 내가 비록 범죄하고 때로는 넘어질지라도 하나님은 내 편이시라는 고백,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은혜, 나를 버리지 않고 붙드시는 하나님의 큰 자비, 이런 것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아주 담대하고 아름다운 확신, 이런 것들은 없는 거에요. 그것이 이제 문제가 되는 거에요. 그게 신앙생활에 가장 큰 문제에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신앙생활이 뭐냐 하면, 머리가 하얗게 되어도 자기 꺾임이 있는 신앙생활이에요. 거기에서 많은 향기가 흘러나오는 거에요. 오늘 시인은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는 중에 있어요. 원수를 만나서 원수에게 멸시를 당하고 고통을 받는 중에 있는 모든 것 것조차도 어쩌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섭리 속에서 하나님 앞에 혼나고 있는 중이에요. 그럼에도 이 시인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는 거에요. "하나님 나의 원수가 이기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원수는 악인입니다. 악인은 영원히 하나님 당신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도, 이 원수들이 이기도록 내버려두시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고백을 드리는 거죠.
이 시인 다윗이 죄를 짓고 자기의 욕망을 따라서 살아 봤더니 마지막 도달하는 결론이, "하나님을 대신할 것이 없다." 즉,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버리면서까지 얻어야 할 것이 없다."라고 하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 죄에서 돌이키고 난 후에는 일생을 사는 동안에 허물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인구조사를 하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는 것 같은 그런 끔찍한 죄에 대한 기록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요. 우리가 거기에서 얼마나 커다란 깨달음과 그리고 변화를 받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면서 오늘의 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 거죠.
우리가 정말 소중한 것은 잃어버리기 전에는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그래서 존 오웬 목사님은 자기의 책 속에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 사랑에서 미끄러지도록 내버려 두시는 이유는, 하나님 사랑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무리 일러 주셔도 인간은 실감하지 못해요. 그런데 잃어버리고 나서는 비로소 그것을 아주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거에요. 마치 불을 보기만 했던 아이는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호기심을 그칠 수 없지만, 한 번 불에 데여본 아이는 그 불을 두려워하게 되듯이 경험하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큰 섭리 속에서 그렇게 하도록 허락을 하시는 거죠. 놔두시는 거죠.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 시인도 그렇게 해서 깊이 깨닫게 하시는 거에요.
그러면서 이 시인이 아주 의미심장한 고백을 하나 덧붙여요. 그게 뭐냐 하면, 주께서 나를 붙드시는데 언제부터냐면, "주께서 나를 완전한 중에 붙드시며, 영영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그러니까 단지 고통을 받고 원수들에게 시달린다는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범죄 했지만 그래서 원수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완전함을 지키는 가운데 하나님이 그를 붙들어 주시는 거죠.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살면서 주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며 당신은 내 편이십니다. 그렇게 기도할 수 없죠. 또 그렇게 기도한 들 의미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복종,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무제한의 헌신, 그 속에서 자신은 없고 주님만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나의 완전한 중에 주께서 나를 붙드심이니이다."
시련과 고난, 그리고 핍박과 환란, 그리고 배신과 갈등, 이런 것들은 죄악 된 세상이기 때문에 언제나 있는 일이에요. 심지어는 나를 사랑하던 사람이 발꿈치를 들고 나의 가슴에 칼을 찌르는 그런 괴로운 일들은 이 세상에 언제나 있는 일이에요. 그런 일들이 늘 있는 그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 수 있는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내 편이십니다."라고 하는 그 고백, 그 고백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붙어있고 하나님 자신의 모든 삶에 있어서 온전해 지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거에요. 그래서 그 주님과 함께 동행 하며 살아갈 때,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보호하셔요.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그 인간들을 붙드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일하게 하시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