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진리를 보내소서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시 43:3).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철저하게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삶이었어요. 그래서 이 성전은 단지 살아가다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필요한 장소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과 모든 신앙, 그리고 자신들의 슬픔과 기쁨, 이 모든 인생에 있어서 경험의 중심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성전은 그들에게 있어서 단순한 종교의 기능을 하는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삶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삶이 보이는 성전, 혹은 성소 중심의 신앙생활로 나타났던 거죠. 그래서 개인적인 슬픔과 고통이 있을 때에도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거기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고, 나라의 큰 위기가 있을 때에도 바로 그 성전에 나아와서 하나님 앞에 자기를 돌아보며 회개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기도 했던 것이죠.
그런데 지금 이 시인은 이렇게 여전히 마음속에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그런 심정인데, 그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또 자기가 직면하고 있는 이 모든 슬픔과 고통스러운 상황을 하나님께 호소해야 하는데, 그런데 이런 성전으로부터 말하자면, 유리당한 거죠. 이런 성전으로부터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기도하고 할 수 있는 그런 상황들을 박탈당한 거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지금 호소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여기에서 장막은, 이때까지만 해도 성전이 지어지지 않고 성막으로 성소를 삼던 때이니까, 그러니까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 성소에 다다르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비는 거죠.
사실, 나라를 잃어버리고 남의 나라 땅에 쫓겨 왔으니까, 어떻게 보면, 사실 더 간절한 기도제목은 성소에 이르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왕궁에 이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시인은 왕궁에 이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성소에 이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요. 비록 하나님의 큰 섭리가운데서 징계를 받고 내 나라에서 쫓겨나 이방의 나라의 땅에 와 있으나, 시인의 마음속에서 불타고 있는 것은 왕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소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 이것이 가장 시급한 소원이 되었던 거죠.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만날 때, 그런 큰 위기와 어려움을 만나면서, 그 위기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가? 그것은 대답은 하나에요. 그것은 하나님을 뵈옵는 생활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왜 이런 시련을 만나고 고통스러운 인생의 위기를 겪고 있는지, 하나님 안에 대답이 있고 또 우리들이 얘기치 못했던 행운이 주어저도, 그 행운 때문에 교만하지 않고 우리에게 이렇게 큰 축복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큰 복의 계획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주님의 계획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 그런 변화가 우리에게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모든 계획, 그리고 이러한 모든 하나님의 섭리, 이런 것들을 염두 해 두면서 그는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빌고 있는 것이죠. 한쪽은 반란에 성공해서 나라를 차지했으나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고, 한쪽은 반란에 패배해서 나라를 잃어버리고 남의 나라 땅에 도망을 갔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시인의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성산과 장막에 이르도록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군대와 마병을 통하여 하나님이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신 것이 아니라,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주시면, 그 주의 빛과 진리의 손에 이끌려서 그래서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된다. 라고 하는 고백을 하고 있는 거죠.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이미 땅을 악한 무리들이 차지하고 있고 병거와 무기가, 병사가 아니면 그들을 누를 수가 없고 그들을 제압하지 않으면, 그 땅에 한발자국도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는 완전히 패배한 상태에요. 그런데 시인은 칼과 병거, 그리고 말과 군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왕국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의 빛과 진리를 통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말하는 거죠.
여기서 주의 빛과 진리라고 하는 말은, 같은 말의 반복이에요. 그러니까 빛이 따로 있고 진리가 따로 있다기 보다는 '주의 빛, 곧 주의 진리를 보내어' 그런 정도의 뜻이죠. 성경에서 이 빛은 진리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상징어로 많이 사용됩니다. "주의 말씀은 내 길의 빛이요. 내 발의 등이니 이다."에서 등이 바로 그런 거죠.
인생의 길은 어차피 캄캄해요. 그 캄캄한 것은 그 어두움 자체가 이 세상의 물리적인 어두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혼 안에 있는 어두움이에요. 영혼이 어두움이 있으니까 그 캄캄한 어두움은 무엇으로도 물러나지 않아요. 물리적인 어두움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빛을 비추면 어두움은 힘없이 물러가고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내 앞에 환하게 비취어요. 그러나 영적인 어두움은 그렇게 해서 해결될 리가 없죠. 영혼 안에 어두움이 가득하게 되면, 마치 밖에 환한 대낮인데도 눈을 뜨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불안하게 길을 걷고, 넘어지고, 다른 길로 가기 쉽듯이, 영혼의 어두움이 가득하면 그 어두움의 원인이 자기 안에 있기 때문에 물리적인 빛이 환해도 자기가 올바른 길을 걷지 못하는 것이죠. 이 영혼 안에 있는 어두움을 물리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그 영혼에 빛이 들어오는 것이죠. 진리의 빛이 그 마음 안에 가득히 비취게 될 때, 그 마음 안에 있는 찬란한 빛을 통하여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그 진리를 따라서 빛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게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그 진리의 빛을 비추면, 그러면 지혜가 생겨나게 되고 명철해지게 되죠.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되겠죠. 자기가 왜 이런 환란과 시련을 당하게 되고 악한 원수들이 승리하게 되는 지도 알게 되겠죠. 그런 모든 과정들을 통해서 결국 자신의 삶은 하나님 앞에 사는 삶이 될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기름부음 받은 자기의 왕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소에 다시 이르게 할 것이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인생의 많은 문제가 꼬이고 그리고 복잡해지고, 시련과 환란이 일어나고, 악한 자들이 잠시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결국 그 모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이 모든 상황을 종식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으로 가게 만드는 그 모든 힘은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영혼의 눈이 어두운 가운데 끊임없이 몸부림치면 그것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별로 그런 곳이 우리나라에서 많지는 않지만, 종종 이제 아주 연한 진흙들이 있는 수렁에 빠지게 될 때가 있어요. 발이 계속 깊이 빠져 들어가요. 그때 나오기 위해서 마구 몸을 움직이게 되면 진흙과 몸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서 몸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죠. 그래서 아주 신중하게 판단을 하면서 움직여야지만 거기서 나올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외부에서 줄을 던져주어서 끌어내어주지 않으면 헤어 나올 수가 없는 거죠.
우리 인생의 많은 시련과 어려움들은 대부분 그 원인이 우리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대부분 그 원인이 우리 안에 있어요.
(예화) 최근에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난리입니다. 심지어 3만5천명 이상 지진ㅇ로 죽고 아마도 5만 명은 훨씬 넘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매몰되어있는 사람들이 엄청납니다. 그 지역에서 학교만 7천 채가 무너졌다고 하니까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어린 학생들이 거기 다 깔렸다고 합니다. 전부다 부정입니다. 우리나라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전문가들이 가서 보고 5층짜리 빌딩을, 위에는 수천 톤의 물탱크 시설물들이 들어섰는데 그것을 버치고 있는 철근이 2층 연립주택을 짓는데 쓰는 철근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주저앉은 것입니다. 제가 이 건물 수리하면서 제일ㅂ먼저 한 것이 3층에 있는 물탱크를 1층으로 끌어내린 것입니다. 건물이 그렇게 지으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거기도 다 뇌물 먹고 그렇게 해서 일제히 지은사람들을 다 조사한다고 하는데 크게 벌을 받을 것입니다. 모든 학교가 제일먼저 무너졌다고 합니다. 싹수없이 주저앉아서 수만 명의 학생이 거기 깔린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생각 있는 사람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예견되었던 지진입니다. 장강을 많아서 산샤댐을 건설했는데 그 물양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그렇게 안하면 농사를 짓는데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니까 그랬을 것입니다. 지구의 자전축이 움직일 정도로 물을 부었답니다. 공사시작 할 때부터 몇몇 학자들이 그렇게 댐에 물을 부으면 지진이 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양의물이 지각을 눌러서 지각을 누르게 되면 지각의 변동이 오고 어디서든지 지진이 터져서 중국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현실화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진도 5.3의 여진이 있으면서 계속 흔들리는 것입니다. 한 800개정도 되는 댐이 다 금이 갔다고 합니다. 산샤댐도 위험하고, 토사가 흘러내려서 강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큰 호수가 생겼는데 하루에 2미터씩 수위가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흙덩어리로 되어있으니까 한번만 흔들려서 한 번에 쏟아지면 어마어마한 물이 다 밀어버리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몇 십만 명이 대피를 하는데 이것이 모두다 자연의 뜻을 거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오늘날의 이 상황은 참 중국적이지 않다. 원래 중국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무분별하게 개발을 해서 결국은 인민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봉사하던 사람들도 200여명 가까이 깔려서 매몰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정말 바보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 바깥에서 행복해 보려는 데 있어요. 자연에 순응하면서 물이 흘러가는 것을 이쪽으로 가게, 저쪽으로 가게 할 수는 있지만, 그 어마어마한 물을 지구가 흔들릴 정도로 가두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잖아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고, 하나님 바깥에 있는 행복을 꿈꾸지 말고, 하나님 안에 있는 약속된 행복을 꿈꾸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야지만, 그것이 바로 진리에 순응하는 삶이고 거기에 인생의 행복과 안정이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의 참된 기쁨을 진리의 말씀에 두고, 진리의 말씀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