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의지하는 자의 승리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시 44:4-5).
성경에 보면 야곱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이것이 개인의 이름을 가질 때에는 물론 야곱이지만, 이것이 공동체를 지칭할 때에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야곱을 이스라엘 가리키는 말로 사용할 때, 그 핵심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실 백성, 그런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에 일생을 보면, 이 야곱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과는 어울리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잔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대명사였어요. 그런데도 결국은 야곱이 남다른 인물이 될 수 있었고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늘 함께 달고 다닐 수 있는 그 근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에 기초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미 에서와 함께 뱃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형은 미워하고 아우는 사랑하리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약속을 받고 태어났죠.
그렇지만 신앙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제 가족의 곁을 떠나 마지막으로 라반의 집에 가는 그 철저하게 고립된 순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고 조상의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자기를 강권적으로 찾아오셔서 영광을 보여주시는 하나님께 서원을 올리게 되죠. 그 이후로부터 하나님은 자기의 제주로 살아가려고 하는 이 야곱에게 사람은 변해도 그 사람을 붙들고 계시는 언약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고 하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셨는데, 그것을 잘 보여주신 도구가 역설적으로 아주 신앙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이삭이나 이러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인간의 잔재주로 살아가려고 하는 야곱이었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신기하게 이 야곱이라는 이름이 공동체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신 이스라엘 백성, 이런 의미로 사용된 거죠.
그러니까 그런 전통을 알고 있는 이 시인이 "나의 왕이시여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했으니까 그것이 결국 "나의 왕이시여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그런 뜻이죠. 이 기도는 아주 의미심장한 기도죠. 단순히 그냥 구해주십시오. 이런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을 구원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야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와 맺으신 언약이 불변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야곱을 구원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처럼 우리는 지금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부족한 것이 많지만, 야곱에게 언약을 맺으셨고 거기에 충실하셨던 것처럼, 우리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우리를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으니, 우리를 보지 마시고 당신 자신의 충실한 성품을 따라서 우리를 구원해주시옵소서 라고 하는 탄원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표현 그 자체가 자기는 공로가 없지만, 하나님이 한번 맺으신 언약의 충실하시는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의지하면서, 그의 긍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기도에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우리 자신이 대견스러울 때가 있지만, 우리도 우리 자신이 아주 부끄러울 때가 있는 거예요. 그 때에 우리는 안팎으로 어려움을 당해, 밖으로는 우리를 에워싼 많은 난관과 어려움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파리해지고, 안으로는 "네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그렇게 살아? 그러고도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을 거 같아? 너는 이미 끝났다." 그런 소리를 우리 안으로부터 끊임없이 듣는 거예요.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은 무엇이라고 했죠? 절망이라는 병이에요. 그 절망은 반드시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그 원망을 내포해요. 그래서 마지막 절망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절망의 마지막 끝이 결국은 우리를 거기로 데려가는 거예요. 그것은 참 성령님이 시키시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사랑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소망을 줄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그 대상 안에서 끊임없이 소원을 갖게 하는 기능이 있어요. 그래서 어떠한 난관과 어려움이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사랑이 사람들을 살게 하는 거예요.
옛날에 우리 부모들을 보면, 남편이 일찍 죽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그 근대화에 시대에 보면, 사실 인생에 무슨 희망이란 게 없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런데도 그 어머니들이 그렇게 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강했던 것이 아니죠.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많이 들어봤죠?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어요. 어머니이기 때문에 저절로 강한 게 아니라, 여자는 더 이상 사랑할 사람이 없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사랑할 수 있는 자식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그를 아주 강하게 만드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강함은 사랑에서 오는 거예요. 왜냐하면 사랑하고 있는 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도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랑을 이야기 했던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며, 바란다는 그 말이 소망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던 거죠.
그래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를 넘어서 자기의 구원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거예요. 나를 둘러싼 어떤 좋고 행복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만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을 깊이 의지하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신앙이에요.
이때에는 기껏해야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건져주신 출애굽 사건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하신 성품을 읽어야 했지만, 우리는 그 출애굽 사건보다도 더 큰 사건을 그리스도의 성육신 안에서 만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를 깊이 앎으로써 그러면서 전심으로 그 그리스도 예수를 향하여 소망을 가짐으로써 우리들이 주님을 더 의지하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바로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 그 자체가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상태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우리와 맺으신 언약의 충실하심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공로가 있어서 바로 그때에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혀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었습니까?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죠. 그냥 예수님이 오시던 시대가 덜 타락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많았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에 하나님은 인간들의 상태와 상관없이 당신의 계획에 따라서, 언약에 충실하신 당신의 성품에 따라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죠.
그러면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이 시인이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하는 이 구원이 어떤 것이었을까? 문맥을 보니까 원수들에게 짓밟히고 있는 거기에서 자기를 구해달라고 하는 그러한 간증이었어요. 그러면서 시인은 말하기를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 이다." 이 "밟는다."라는 이 표현은 대적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 말로 성경에서 아주 많이 나와요. 결국은 싸움에서 이기고 원수를 밟는다는 의미는 결국은 원수가 땅에 엎드려졌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땅은 가치 없고 허무한 것을 가리키기도 해요. 그래서 땅에 원수들이 엎드려진 모습은 원수들이 땅과 같이 무가치 하고 하찮은 것이 되어 버렸다. 라고 하는 그런 뜻이에요. 그것을 밟으니 그 승리는 완전한 승리를 가리키는 거죠. 다시 재기할 수 없는 완전한 승리, 그런 승리를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위하여 이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한다.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왕이시고, 그리고 자신들이 야곱이고, 그리고 자신들이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대적들을 누르게 된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비록 자신들이 원수들에게 밟히고 고통을 받아도 이 모든 권세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온 땅의 질서를 주관하시는 분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이 확고하게 서는 거예요. 그러니까 뭔가 자신이 원하는 질서대로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이 주권자이신 것 같지 않은 때조차도 하나님은 친히 이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그 하나님은 당신과 언약을 맺으신 그 당신의 언약 백성들에게 신실하신 분이며 언약의 백성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백성들이다. 하는 공식이 성립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언약관계의 위대함을 경험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분을 마음 깊은 곳에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때로는 우리가 더 이상 아무것도 자신을 위해 할 수 없을 그때에 주님이 위대한 일을 행하셔요.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나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행한 위대한 일을 보라."고 말씀하시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존할 때 가장 순수하고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그런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변함이 없는 언약을 맺고 계시지만, 그 맺은 언약의 위대함의 나타남은 하나님을 향한 전심의 의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던지, 우리가 단지 주님께 의탁되어 있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전적인 의존함, 그 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위대한 일들을 행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마음이 녹는 것처럼 주를 의지하는 마음이야 말로 주께 가장 잘 순종하는 마음이고 자기를 낮추고 주님의 주권과 계획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마음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온 땅과 이 온 세상 안에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지만 그러나 결국은 그 온 땅과 하늘을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다른 마음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의존하는 마음 안에서 친히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