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시 43:3).
이때까지는 하나님의 집이 장막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원래 이 장막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이동식 성전을 짓도록 명령하신 그 규례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이거든요. 그렇게 돼서 지어졌는데, 광야생활 중에는 한 곳에 정착할 수 없고 계속해서 행진을 하는 상황이니까, 만약에 그렇게 이동식 성전이 아니라면 곤란했겠죠. 그러면 이제 가나안으로 들어오게 되어서 정착을 한 후에는 성전을 지었어야 되는데, 이제 그때까지, 다윗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장막의 형태로 남아있던 거에요. 그래서 여기에서 이것을 장막, 히브리말로 하면 '고엘', 텐트라고 되어 있는데, 그런 장막을 여기서 이야기 하고 있는 거죠.
이제 주의 성산과 장막이라고 했는데, 이 성산은 예루살렘을 싸고 있는 산지를 가리키는 거에요. 그래서 이게 시온이라고 하는 명사가 바로 그런 산지를 가리키는데, 이건 하나님의 선택하신 나라,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왕국, 이런 것에 대한 상징이에요. 그러니까 만약에 주의 성산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나라와 백성의 개념이라고 한다면, 뒤에 나오는 장막은 하나님이 그들 속에 임재해 계시는 성전으로서의 이 장막을 이야기 하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는 민족적인 선택의 개념이고 하나는 종교적으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재해 계시는 심장부를 가리키는 것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민족적인 일치를 이루게 되었던 중요한 구도가 바로 이 성소,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배하는 장소의 일치에요. 그것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된 연대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 나갔던 것이죠.
성경을 보면, 자기가 맞닥뜨린 삶의 상황이 어떠하던지 간에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공통적으로 모두 하나님의 성소를 바라보게 되요. 그래서 그 성전을 중심으로 자신의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해결해 가는 거에요. 그런 신앙을 오늘 여기에서 엿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신 것 같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빌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모습이 그래서 "주의 성산과 장막에 나를 이르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되면 어떻게 해서 자신의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것이죠? 거기에 바로 위대하신 하나님, 당신의 백성을 위해, 당신 자신의 이름을 위해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그 하나님이 거기 계신 거죠. 그래서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행하셨던 그 위대하신 하나님, 그리고 또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는 거죠. 그래서 그 하나님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의 모든 역경과 어려움에서 구출을 받는 거에요. 그러니까 시인이 42편에서 말하기를 "내 영혼이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했을 때에 그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했던 그 마음, 그 마음이 시인으로 하여금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비는 거에요.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신앙생활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여호와의 장막은 단지 하나님 앞에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그 이상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을 중심으로 자신의 인생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도 또한 하나님의 성산에 찾아와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께 감사하는 거에요.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와도 하나님이 그 성소에서 주님의 능력과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히로애락 그 모든 것이 이 성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거죠.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이 세상, 보이는 환경 속에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인 것이에요.
그런데 오늘 시인은 그런 하나님의 집을 향한 간절한 사모함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어 달라고, 이르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소원하는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주의 빛과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이것은 또 무슨 얘기에요? 지금 상황은 원수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망명을 떠나와서 무시를 당하며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멸시를 당하는 이런 상황인데, "원수를 죽여 버려 주십시오, 원수를 처단하여 주십시오, 왕국을 돌려주십시오, 우리로 하여금 그 나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자기가 다스릴 왕국을 다시 찾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였어요. 그러니까 이 시인의 꿈이 나라와 왕권, 통치, 이런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것을 그리워하게 된 거에요. 그런 상황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큰 고난, 왕위를 잃어버리고 신하들과 함께 쫓겨서 다윗 왕이 이방의 땅에 망명을 오는 이 과정을 통해서 이 시인이 아주 절실하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언제든지 주님께 제사를 드리며 살아가는 그러한 삶의 행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우리는 이렇게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종교의 자유를 누리며, 전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어요. 이렇게 완벽할 정도로 종교의 자유를 누리며, 한없는 자유 속에서 언제든지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 나아오고 그분을 경배하고 한 이것,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이 완성이 되어서 그래서 이렇게 장소에 매이지 않고 어디서든지 영으로 우리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거의 감격하지 않아요.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깊이 반성 해야 될 일이에요. 이렇게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싫어버린 까닭에 하나님을 못 만나는 것이지, 언제 어디서든지 주님의 이름을 자유롭게 부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곤고한 일이 있을 때나, 시련이 있을 때나, 유혹을 받을 때나 언제든지 하나님의 집에 나와서 주님의 얼굴을 구할 수 있게 된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인은 "주의 빛과 진리를 보내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주의 빛'과 '주의 진리'라고 하는 것은 같은 말의 반복이에요. '주의 빛', 곧 '주의 진리'라고 하는 의미죠. 우리의 길이 캄캄하고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완전히 암흑과 같은 상황에서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어두운 인생길에 빛이 되어요. 그래서 무지한 사람의 마음에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오면, 그의 마음에 빛이 들어와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어떻게 믿고 살아가야 할지 지혜가 생겨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마음에 들어온 등불은 우리의 인생에 길을 비추는 빛이 되어서,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실족치 않게 하고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거에요.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이에요. 그게 우리의 믿음생활이에요. 그래서 시인이 시편 119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내 길의 빛이요. 내 발의 등불입니다."라고 고백을 했던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께서 빛이신 진리의 말씀으로 영혼을 깨우게 될 때, 마음의 이렇게 예루살렘으로부터, 하나님의 성소로부터 추방된 가운데서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섬겨야 될지, 마음에 지혜를 갖게 되고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의 길이 어떻게 하나님에 의해서 인도받게 되는지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진리는 어두운 마음에 빛이요. 알 수 없는 인생의 길에 등불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인생의 가장 시련의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가장 인생의 고난이 가득한 그때에 진리의 말씀을 꼭 붙들고 의지하며 살아가요.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이죠. 그게 우리의 인생의 어려움을 풀어나가는 비결이에요.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이 힘들고 어려운 난관에 부딪치게 되면, 우리의 삶의 현실을 주목해요. 삶의 현실이라고 하는 것이 의미를 알기 힘들 정도로 꼬여있고 복잡한 거죠. 그래서 여러 분들이 시험에 들고 인생의 어려움을 만나면, 머리가 복잡해져요.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게 되면 복잡할 게 하나도 없어요. 의미는 너무나 명료해지는 거죠.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아주 분명하게 왜 이런 상황을 만나게 되었는지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세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배우고, 또 만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결국은 삶의 상황과 맞닥뜨려서 혼란이 느껴질 때, 사실 문제의 해결은 그 문제 안에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럴 때일수록 주님의 말씀을 꼭 붙들고 그리고 주님을 대면하리라는 마음을 갖아야 되는 거에요. 그때에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기뻐하시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인생의 길이 보여요. 그렇게 해서 믿음의 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