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인생보다 아름다운 이유
“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 왕에 대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혀는 필객의 붓과 같도다 왕은 인생보다 아름다와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영히 복을 주시도다”(시 45:1-2).
왕에 대해서 지은 찬송시거든요. 이스라엘에서 이 왕은 다른 나라에서 왕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독특한 왕의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각 나라마다 왕이 모든 권력의 끝이에요. 그러니까 각 나라마다 왕의 권력이 끝인데 그래서 이제 각 나라마다 왕이 그 모든 권력의 끝이기 때문에 모든 나라의 질서가 그 왕을 중심으로 해서 그 파문처럼 수립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왕이 그 모든 나라의 중심인거죠. 사실 그러니까 왕 아니에요? 왕은 어떤 의미에서 법 위에 있죠. 그리고 또, 법 그 자체도 왕이 자기가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통치의 의지를 반영하죠. 그러니까 아주 정확하게 말하면 왕은 그 나라에서 하나님이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왕이에요.
중국을 가서 한번 그 유적을 보는 가운데 인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 게 왕들이 입는 옷이었어요, 왕의 옷인데. 여러분 왕은 옷을 빨아 입지 않았던 거 아시죠. 항상 진솔만 입고 그 다음에 버렸어요. 왕의 옷인데 아주 정교하게 자수가 놓여 있어요. 근데 거기 설명이 나오는데 아래 위도 아니고 우리로 말하자면 자켓같이 생기는 거 하나를 만드는 데 4년 반이 걸린대요. 몇 사람이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 어쩌면 한 사람이 만들 수도 있고 두 사람이 만들 수 있고 그렇겠죠. 왕의 자켓 하나에. 근데 4년 반이 걸려요. 그럼 그 사람의 인생은 그걸 입고 왕이 몇 번쯤 입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뭐, 그저 대여섯 번 입으면 버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인간으로 태어나서 왕의 자켓을 만들 정도니까 그 기술을 익히려면 어느 정도 했겠어요? 그래도 뭐 열 서너 살에는 못 만들었을 거 아니에요? 최소한 뭐 스물 댓 살 되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이제 일생의 그런 재킷 한 10벌을 만들면 인생을 접는다는 거죠. 그리고 왕은 그걸 가지고 한 두 세달 입겠죠.
그러니까 왕국의 모든 역사를 보면 온 세상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하여 있는 거예요. 두 사람도 아니고 딱 한 사람을 위하여 모든 사람은 존재하는 거예요. 그게 왕이에요. 그런데 이제 황제의 경우에는 그거보다 위엄이 더 크지 않았겠어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위엄이죠. 이게 좀 그 허망하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중국에 가면 만신전이라고 있는데 어느 나라에나 있어요. 신들을 모셔놓은 신당. 거기에 가면 엄청나게 높은 건물, 근데 그거를 나무 기둥이 떠받치고 있어요. 몇 개나 되려나, 그저 한 10개는 넘겠네요. 한 20개 정도니까 어마어마하게 높아요. 뭐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죠. 가만히 아 이거 이 시대에 기계도 없었던 시대에 이걸 어떻게 갖다가 놓을까? 근데 설명을 하는데 보니까 중국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나무는 아무데나 없다는 거예요.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근처에 있으면 가서 베 오면 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죠. 그래서 재미있는 게 그런 기둥을 찾기 위해서 사람을 전국으로 보내는데 그 기둥 하나를 거기에 세울 기둥이 될 만한 나무 하나를 잘라오기 위해서 천명이 길을 떠난답니다. 그거는 몇 백 명이 들어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니까. 예를 들면 기둥을 이만한 거를 세웠다 그러면 실제 나무크기는 얼마나 크겠어요. 위, 아래를 다 잘라버려서. 그래서 그거를 산 어디든지 간에 그 나무가 있는 데에 올라가서 그래서 그거를 잘라서 쓰러뜨린 다음에 그 수많은 가지를 잘라내고 위를 잘라내고 그리고 그것을 그 산꼭대기에서 들고 나와야 되니까 보통 어려운 일인 게 아니겠죠. 그게 뭐 오십 리 백리 길도 아니고 한없이 먼 길이면 그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그거를 들고 와요. 그래서 그 나무를 공사장까지 들고 오고 나면 그 한 개를 구하기 위해서 천명이 떠나는데 돌아오는 사람은 오백 명에서 600명 정도, 나머지는 병에 걸려 죽거나 사고가 나서 죽거나 물에 떠내려가거나 이렇게 해서 결국은 죽는 거예요. 그런 것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왕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게 왕이었어요.
근데 이스라엘은 그걸 하나님이 허용을 안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왕은 하나님이 왕 제도를 이스라엘이 세우려고 하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셨죠. 그래서 호세아서에 보면 ‘분노함으로 내가 왕을 주었고 진노함으로 그 왕을 폐하였노라’ 그래서 그 왕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왕이 없어요. 그러니까 모든 백성들의 마음속에 하나님 홀로 왕이시다 라는 사상을 가지고 그리고 왕도 그 하나님이 중심축에 계시고 그 하나님이 중심축에 계시고 중심축에 계신 그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의 그 질서를 당신의 마음에 맞게끔 펼치시는데 그 보이시지 않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당신의 나라를 통치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신 것이 율법이에요. 그래서 그 율법 안에 하나님의 이 통치의 이 질서들이 제정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들을 펼쳐 나가시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에요.
그렇게 당신의 통치를 펼쳐나가시는데 그 통치의 질서가운데 순응하는 한에서 왕이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질서가 더 잘 잡히도록 이바지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이 왕이었고 그 한도 내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권위를 주세요. 그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게 역사적으로 보면 쉽지는 않지만 만약에 그게 그럴 수만 있다면 최고의 정치체제예요. 왕이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을 매우 경외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왕에게 부여된 권한을 가지고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아주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한다면 최고죠. 그 왕의 권위로서 백성들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살아라 명령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리스의 역사를 보면 이 왕은 철학자들이 생각해요. 왕은 기본적으로 이 철학자여야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이 나라를 잘 다스려서 무엇이 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해요. 지금은 그런 개념이 별로 없지요. 그냥 외적으로부터 이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들이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살게 하면 그것으로서 만족이지요. 그러나 그 사람들은 이미 벌써 아주 풍부한 식량과 좋은 자연 조건 속에서 넉넉하게 식량의 염려 없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만을 가지고는 행복할 수 없다고 믿었거든요. 그 이상의 무엇을 자기 백성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왕이어야 해요. 그러니 왕이 임금이나 되어가지고 후궁이나 거느리고, 바람이나 피우고, 그 다음에 금,은, 보석이나 좋아하고, 기름진 음식이나 좋아하고 노래나 좋아하고 이래가지고는 자기 자신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건지를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인간은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니 이 정치 지도자들의 부패라고 하는 것은 항상 할 수도 없는 일이었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 아주 독특한 존재가 되는 거죠. 그래서 다윗같이 훌륭한 임금의 경우 하나님 앞에 매일 고백하는 게 뭐냐 하면 ‘나는 이 나라의 왕입니다’가 이게 아니라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나는 당신 앞에 비참한 인생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주시는 거죠. 그러니까 오늘 여기에서 뭐라고 하냐하면 왕이 인생보다 아름다운 이유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왕이 인생보다 아름다운 이유가 왕이라고 하는 지위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 나라의 왕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왕이 모든 인생보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음 때문이었습니다. 자 얼마나 놀라워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자존감이 바로 그런 거예요. 돈 많은 사람 앞에도 굴하지 않는 당당함, 권력이 큰 사람 앞에서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꿎꿎함, 그 이면에 그 뭐가 있어요.
인생의 참된 아름다움이 이 세상의 영광과 물질이 아니다 라고 하는 사상,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영혼이 아름다음입니다 사상, 그래서 왕이 아름다운 이유는 큰 나라의 임금이기 때문입니다 아니에요. 왕의 아름다운 이유는 왕이 거느린 수많은 군사들 때문입니다. 아니에요. 왕의 아름다움은 나라 안에 넘치는 경제적인 부업, 왕궁의 보물 때문입니다. 아니라는 거죠. 왕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면 신앙이 아주 돈독해서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은 임금들은 아주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그 임금들은 왕이기 때문에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은혜 때문에 아름다웠어요. 그렇게 은혜 때문에 아름다운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위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명예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주 훌륭한 수단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했던 왕, 그리고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은혜를 받았던 왕들은 왕이기 때문에 경건한 백성들에게 찬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칭송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한 나라의 왕으로서 그 모든 나라를 통치하고 다스리고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 왕 위에는 보이지 않는 만왕의 왕 하나님이 계셨죠. 신앙이 뛰어나고 깊으면 그 하나님이 계속 눈에 들어오고 보이고 그리고 신앙이 별로 좋지 아니하면 그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그러면서 이제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그런 이치예요.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물질도 더 많이 소유하고 싶었고, 지위도 더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해요. 근데 우리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 때문에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야, 우리를 정말 아름답게 하는 것은 오늘 이 찬송시에서 나오는 왕이 인생보다 아름다운 은혜를 머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때문에 우리가 그래서 나는 항상 나를 주인으로 삼고 나를 임금으로 생각하는 그 모든 삶을 포기하고 그리고 주님을 의지하고 붙들면서 사는 그것이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 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왕이 아름다운 것이 그 높은 지위나 소유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받은 그 은혜 때문에 아름다운 자가 되어서 저희도 끊임없이 우리의 인생의 주인 되려는 마음을 포기하고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통치의 질서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시는 의지에 복종해 많은 나라,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펼치시는데 저희들이 이바지할 수 있도록 복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