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즐거움의 근원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시 45:6-7).
구약에서 왕이 되거나 선지자가 되거나 선지자가 될 때에 하나님이 기름을 붓게 하여 그로 하여금 그 직무를 감당케 했습니다. 이 기름부음은 하나의 상징인데 그 기름은 바로 성령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그 기름부음이 있을 때 충만한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성령님이 충만하게 오셔서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래서 성령 안에 있게 하시고 또 그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어떤 한 순간에 아주 특별한 그런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게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그렇지가 않고 어떤 한 사람이 하나님께 특별한 사명을 받을라치면 그에게 임하셔서 그 섬김에 필요한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주시고 그 사명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두어 가는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다윗이 이 기름부음을 세 번 받게 됩니다. 첫 번째 사무엘이 와서 기름을 부었을 때 그 때에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충만하게 임하게 됩니다. 그 후로도 두 번을 더 기름부음을 받게 되는데 여기에서 바로 그 기름부음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즐거움의 기름부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비록 하나님이 어떤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 충만한 능력을 부어주시기 위해 기름부음을 주시지만 거기에는 즐거움의 효과가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거기서 오는 아주 특이한 기쁨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도구였다 하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것을 감당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는데 그런 즐거움의 기름을 하나님이 왕에게 부어주셔서 그가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이 왕과 비슷한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바꿔 놓으시고 변화시켜 주셨던 것이에요. 이러한 하나님의 특이한 은혜가 왕으로 하여금 자기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도록 하는 요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왕에게 이렇게 남들에게는 주시지 않는 큰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 주셔서 그래서 말할 수 없는 행복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만들어 주셨을 까 그게 바로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이것이 답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친교의 즐거움과 큰 영혼의 행복을 주시냐 하면 그게 바로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자. 무슨 뜻이냐 하면 한 나라를 통치함에 있어서 이 세상의 임금은 자기의 생각과 뜻을 펼치는 것, 그리고 거기서 자기가 만족과 기쁨을 얻는 것이 통치의 궁극적 목적이지만 그래서 자신이 나라의 목적이 되지만 이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인 왕은 정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치의 질서들이 세워지는 거에요. 그게 정의에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치의 질서들이 세워지는 거에요. 이게 정의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 인생을 살다보면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쟎아요. 똑같이 죽인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것과 고양이를 죽이는 것은 틀리겠죠. 그런데 그런 질서들이 정확하게 세워지고 그리고 그 질서들을 사람들이 존중하면서 그 질서대로 살아가는 게 정의에요. 그러니까 정의가 무너지는 이유는 잘못된 사랑 때문에 정의가 무너지는 거에요. 그렇죠? 사람보다 고양이를 더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고양이를 죽인 것이 사람을 죽인 것 보다 더 큰 사건이 될 수 있쟎아요. 그러니까 정의는 잘못된 사랑에 의해서 무너지는 거에요. 정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질서가 세워지는 거에요.
그런데 왕은 그러한 질서를 만드는 시발점이고 그 질서를 통해서 얻는 그 모든 영광과 만족의 마지막 목적이 왕이에요. 그런데 여기 경건한 왕은 그렇지 않아요. 자신도 한 나라의 왕이지만 하나님이 펼치시는 정의의 한 부분으로 속해 있는 거에요. 그래서 다윗의 시에 보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끊임없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을 하고. 지금이야 실감이 안 나지만 당시 문맥에서 보면 노예 아니에요? 노예일 뿐이고 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렇게 주님 앞에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주님 앞에 고백을 하는 거죠. 그런데 바로 이 왕이 한 나라의 왕이면서도 하나님의 정의를 사랑하고 그 정의를 허무는 악을 미워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분신처럼 나라를 다스려서 그래서 나라를 통치할 대권은 자신에게 있지만 그러나 자신이 그 대권을 행사하는 것이 이 세상 나라의 임금과 같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의 대권을 행사하시는 훌륭한 수단이 되는 것이에요.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즐거움과 기쁨을 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적으로 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의 정의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며 사는 것이에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던지 아니면 아주 하찮은 잡부가 되었던지 상관없이 그 질서를 따라 살 때에 그 때에 하나님의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나요.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과의 끊임없는 교통과 즐거움을 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시는 것이에요.
그런데 6절에 보면 ‘주의 보좌는 영영하고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홀이라고 하는 것은 왕이 어명을 내릴 때 사용하는 지시봉이에요. 이렇게 하라고 내미는 거에요. 그러니까 통치의 상징이죠. 홀이 영영히 떠나지 않는 다는 것이 왕권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그 홀을 가지고 다스리는데 주님이 보좌는 영영하며 그랬어요. 하나님의 보좌는 영영하며. 하나님의 보좌는 흔들리거나 사라지지 않고 영원한 것처럼 하나님의 통치도 또한 그렇게 영원한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며 자신의 왕권을 행사하는 이 경건한 왕을 하나님이 복 주셔서 그 나라를 흔들리지 않게 하신다는 뜻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보좌가 영영하고 그 나라의 통치가 공평하고 영원하기 때문에 경건한 왕이 다스리는 이 나라는 세상 나라가 아니에요. 그 하나님의 나라의 그늘아래 있기 때문에 이 나라는 영원하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나라. 이것이 바로 이 시인이 왕을 칭송했던 이유다 하는 것이죠.
우리는 비록 한 나라의 왕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가 또한 그렇게 하나님의 정의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내 삶 속에서 구현해 나가는 것이 나의 인생의 목적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즐거움의 기름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왕의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소멸하는 것처럼 그래서 파멸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