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우리를 버리실 때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먹힐 양 같게 하시고 열방 중에 흩으셨나이다”(시 44:9-11).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기고 그리고 구원을 받고 그리고 우리를 미워하는 원수들에게 수치를 베푸시고 하는 그 승리와 감사의 이야기가 나온 다음에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고” 이렇게 등장하는게 이게 무슨 의미냐 이거죠. 그래서 이제 어떤 사람들은 42편, 43편, 44편 이것들이 전부 그 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받아서 요단 건너편으로 도망갈 때에 쓰여진 것이다 이렇게 보죠. 그래서 42편과 44편은 고라의 자손이라 고라의 자손의 마스길이란 제목이 함께 붙어 있어요. 물론 이제 이 표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것을 그 믿을 만 하냐 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는 이제 절대적으로 성경과 꼭같은 수준으로 믿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어지는데 어쨌든 42편 43편 44편이 전부 다 하나의 상황에서 같이 쓰여졌다고 보는 거죠. 그렇다고 한다면 어 이 오늘 우리가 읽은 구절 이하의 이 내용은 어 아주 당시의 상황과 아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거죠. 그래서 예전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꿈꾸는 것 같은 승리를 자신들에게 주시고 너무나 놀라운 일을 행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참 크고 놀라운 기적들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는데 지금은 원수들이 온 나라를 차지하고 자신들은 쫓겨났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적인 맥락에서 이것도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보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나라를 빼앗기고 먼 이방의 땅에까지 망명을 와야 되는 일, 원수가 득세해서 온 나라를 차지하고 있는 이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 그러면 여기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과 지금 나라를 빼앗기고 망명을 온 것 사이에는 어떤 연속성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는 거죠. 그걸 통해서 그런 사건을 통해서 이제 이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자기를 다루시는 다양한 방법과 섭리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거죠. 예전에는 하나님이 자신들 편이시고 그리고 자기들에게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언제나 언약 백성으로서 자기의 백성들이 자기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큰 은혜와 자비를 베푸실 것이라고 하는 신념만이 있었어요. 그러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향해 가지고 계시는 다루시는 방법들을 보니까 절대 그렇지가 않고 하나님께서 아주 강력하게 자신들을 붙들고 계셔서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에 의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다루시는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래서 뭐냐 하면 어 우리는 활도 칼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싸우고 구원 받은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렸습니다. 우리가 전쟁터에서 돌아서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싸우다가 패배해서 도망가는 걸 상징하는 거거든요? 묘사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싸우다가 결국은 적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을 치며 후퇴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원수 앞에 우리는 흩어진 양처럼 되어서 결국은 맹수에게 양이 아무런 항거함도 없이 먹히듯이 그렇게 저 원수들의 밥이 되었나이다..고백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왜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의 백성들을 이렇게 원수에게 내어주어서 그래서 욕을 당케 하시고 전쟁에서 패배하게 하시고 흩어진 무리들이 되어서 원수에게 기꺼이 삼킬 수 있을 정도로 힘 없는 백성들이 되게 하시는가..라고 하는 거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잠시 언약 백성들을 도우시기를 역사 속에서 그치심으로써 하나님을 떠날 때에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언약 백성의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사람은 정신병자가 아닌 한 자기를 의지할 수 있으니까 하나님을 덜 의지하는 거예요. 다시 말씀 드릴까요? 사람이 정신병자가 아닌 한 자기를 의지하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에요. 만약에 자신 안에서 아무런 소망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의지하든지 절망하고 죽어 버리든지 둘 중의 하나일 거예요. 그런데 자신을 상당히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덜 의지하는 거죠. 그래서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던 모든 왕들은 그 하나님 없이도 자기의 힘으로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는 교만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때로는 창이나 칼, 군대의 숫자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마음을 먹든지 아니면 계속해서 모든 일들이 형통하게 되어 가는 가운데 그런 마음을 먹든지 혹은 수많은 보물과 나라에 있는 큰 재산 때문에 그런 마음을 먹든지 어쨌든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덜 의지하고 교만해졌던 거죠.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심으로써 결국은 나라가 큰 위기를 만나게 되고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가지고 계시는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 소중한 분이시다 라는 것은 언제 느끼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살아갈 때, 눈 뜨는 아침이면 항상 하나님이 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분이신가 하는 것이 떠올라요. 그리고 또 다른 때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시련과 위기를 만났을 때 그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아요. 그러나 그것 말고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잘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부딪히는 어려움들이 특별한 어려움이 아니라 그저 늘 있는 일상적인 어려움이고 자기의 자원으로 자기의 힘으로 이것들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에 그 때에 커다란 그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결국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이신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는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하나님의 큰 계시..여기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 주세요.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알게 하시는 거죠. 그래서 존 오웬 목사님이 한때 그런 글을 썼어요. 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데도 그렇게 깊은 영적인 침체 속에 빠져서 죄의 지배 속에 들어가게 허락을 하실까..여러 가지 답변을 하는 가운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일의 소중함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그걸 알게 하기 위해서..왜냐면 그것을 알아야지만 인격적인 신앙이 가능해져요. 그거에요. 방탕한 아들이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도 유산을 청구하여 먼 나라로 떠났어요. 그리고는 돌아왔어요. 떠나기 전에도 아버지와 함께 있었고 방탕하여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허비하고 난 후에도 돌아와서 아버지 앞에 있었어요. 그런데 처음 아버지와 함께 있을 동안에는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의 가치를 몰랐어요. 그러나 두 번째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동거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그 아버지를 떠나면 모든 것이 죽음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아버지의 집의 품꾼 하나로 그렇게 받아들여지면서까지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고 싶어 했던 거죠. 그런 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방황하는 것을 허락하신다는 거죠. 훌륭한 믿음은 실행해 보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좋으신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며 사는 것이에요. 그 속에서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며 그 분의 은혜를 누리며 그 분의 은혜 때문에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성도의 진정한 복이에요. 하나님을 떠나면 어디에도 참된 행복과 안식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