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와 정의를 찬송함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영히 견고케 하시리로다 (셀라) 9.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10.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나이다”(시 48:8-10).
시인이 그렇게 하나님이 큰 위험 가운데서 공동체로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것을 깊이 경험하면서 그러면서 과거를 돌아본 거예요. 그랬더니 지금 일어나고 있는 그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이 크고 놀라운 일들이 오늘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 과거에도 많이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시편에서 오늘 8절에서 이야기를 우리가 들은 대로, 우리가 들은 바와 같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우리의 성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어떤 큰 능력이 있는 어떤 일이 과거에 일어난 그 어떤 많은 일들과 연속성 상에 있다라고 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뭘 보여주냐 하면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향해 일정한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 일정한 뜻을 가지고 계시다라고 하는 그 일정하시한 뜻이라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베푸시는 어떤 특별한 보호와 인도, 그리고 시편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시는 큰 일들, 이 모든 것들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영원한 지혜와 사랑으로서 창조하신 것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인도하시고 이끄시는 그 모든 것들도 또한 하나님께서 그 특별한 권능으로 행하시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지혜와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리고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해 주시는 행동으로 견고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여기에서 견고하다 라고 하는 것은 나무 같은 것들이 깊이 뿌리를 박고 자라서 바람이나 어떤 자연적인 재해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 자체가 큰 힘이거든요. 큰 힘을 필요로 하거든요. 그 힘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신앙이 어릴 때에는 열심이 있는 것 같아도 뿌리가 얕아서 흔들리고 그리고 넘어지죠. 그러나 오래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께 붙들리면 웬만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이 됩니다. 그것이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함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9~10절 사이에서는 시인이 대조가 되는 두 하나님의 성품을 찬송 제목으로 삼고 있는 것이에요. 그 첫 번째 성품이 뭐냐 하면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생각하는 것이에요. 근데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생각하는데 그것이 바로 주님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럼 왜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수많은 나라의 군대를 흩트리시고 그 배를 깨뜨리시고 왕들을 속히 도망치게 하시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능력으로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심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갈 때 세상사람 보기에는 아주 연약하고 어려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곧 멸망당할 자들 같으나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살아있는 것이에요. 그들은 매우 약해보이고 아주 힘이 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있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표현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이 세상에서 환란과 시련을 당하고 여러 가지 많은 일로 곤고하고 괴로움을 당하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가운데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이 시인에게 그 이스라엘을 에워싸고 공격하는 많은 나라들을 무찌르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신앙은 바로 그런 선택된 백성인 자기를 지극히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인자와 사랑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진정한 행복인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비록 부모가 자식을 낳아도 자식의 마음에 부모를 향한 진정한 그 효심이 없으면 그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해도 그 관계가 진정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렇게 큰 자비를 우리에게 베풀어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그 주님의 자비를 감격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주님의 자비하심 앞에서, 인자하심 앞에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이 크신 사랑을 받는 다는 것 때문에 감격하는 내면의 세계가 없으면 그건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자기가 살아가는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통해서 그래서 이렇게 승리를 주시고 기쁨을 주시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푸시는 그 인자하심을 찬송하고 또 환란과 시련과 어려움을 만나면 그 하나님의 자기를 자비하게 대해주시는 성품을 생각하면서 그 고난과 어려움의 때를 주님의 품으로 피하면서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 그게 신앙이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에요.
그러면서, 근데 그러한 자비를 어디에서 생각하게 됐냐 하면 ‘주님의 전 가운데서 생각하였나이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는 산지예요. 그리고 그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하나님의 크신 자비를 생각하는 것이에요.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제일 큰 기능이 무얼까요? 제사예요, 제사. 그러니까 이 제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신을 깨닫게 하시는 아주 훌륭한 교육의 방식이었어요. 그렇게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내면서 그러면서 자기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깊이 아는 거죠. 누구예요? 죄인이에요. 속죄의 제사를 제사장 개인을 위해서도 드리고 이스라엘 전체를 위해서 드리면서 하나님의 크신 인자와 선택된 백성이면서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죄악을 대비시키는 거예요. 그걸 성전에서 드리면서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그 탁월하신 인도, 그 비범하신 사랑과 자비와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 수시로 범죄하면서 살아가는 그 현실을 대비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지금 여러 주째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잖아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용서를 통해서 경험이 되는 거예요, 용서를 통해서.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고 큰 복을 주셔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어요. 그게 무엇이었을까?
(찬송)그러나 한 가지 잊지는 말아라 죄인된 너희를 구원하신 여호와를
그것을 잊지 말아라, 그것을 잊지 말아라 하고 신신당부하신 거예요. 그런데 이제 그 성전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서 그렇게 감격하면서 그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니까 이게 뭐냐 하면 온 땅에 하나님의 정의가 충만한 거예요.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려고 하는데 큰 국가적인 시련과 어려움을 만나요. 그런데 그것이 당장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 같은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해치려는 많은 나라들을 흩어버리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정의를 그 속에서 보는 거죠.
그 정의는 무엇이에요? 인자는 가치없는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이지만 정의는 하나님의 뜻을 어긋나게 행동하는 자들을 벌하시고 심판하시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사람들을 복주시고 그들에게 갚아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예요. 그래서 이 정의는 상 주시는 정의와 벌 주시는 정의로 생각될 수가 있는 거죠.
그들은 악한 나라의 많은 왕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지만 그것은 짧게 보면 나라의 전쟁이지만 더 멀게 보면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나라를 없애려고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나라를 정복하여 자신의 노략물로 삼으려고 하는 하나님께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악을 행하는 사람을 향하여 우리들이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악을 행하는 사람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셔요. 그러니까 오히려 원수를 향해서도 우리들이 긍휼히 여기며 주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의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의 가장 큰 의무는 올바르게 살아야 해요. 결론은 그래야지만 하나님의 정의가 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고 또 그러한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질 때 그 하나님 앞에 자비하심을 입은 자들이 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하면서 온 땅과 하늘 위에 가득한 하나님의 두 성품, 택한 백성들을 향한 인자와 그리고 이 온 누리에 가득히 하나님이 그 어떠한 나라와 민족도 통치하지 않는 나라가 없이 당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서 정의를 행하시는 그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