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엄위하신 하나님을 찬양할까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찌어다 지존하신 여호와는 엄위하시고 온 땅에 큰 임군이 되심이로다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열방을 우리 발 아래 복종케 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셀라)”(시 47:1-4).
이건 전형적인 찬송시에 속하죠. 찬송시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찬송을 그 내용을 하고 있는 그런 것입니다. 탄원하는 시에도 찬송의 내용이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은 대체로 그 주제가 고통과 시험 속에서 건져주시기를 원하는 그런 간구들로 주종을 이루고 있다면 찬송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그리고 찬양이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손바닥을 친다’라고 하는 것은 극도의 기쁨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너희 만민들아 극도로 기뻐하면서 그리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찌어다. 그 외치는 내용이 머냐하면 다음과 같이 외쳐라 이것이죠. 지존하신 하나님을 엄위하시고 온 땅의 임군이시다. 그러니까 단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 온 세계를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그 온 땅의 임금. 주인이고 또 통치하는 대왕을 가리키는 거죠. 그렇게 이 온 땅을 다스린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이 땅의 모든 나라를 당신의 나라로 여기시고 다스리신다.
그러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원수된 행동을 하고 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배역 무도한, 이 땅에 있는 많은 이방 나라들과 백성들은 어떤 의미를 하나님께 대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인데 원래 자기의 왕을 몰라보고 패역하게 행하는 자들이니 하나님이 그들도 다스리시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오게 하시고 또 복종케 하셔서 결국은 ‘왕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준다’라고 하는 그러한 포괄적인 선교관을 여기서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나라와 그리고 만민들이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열방 나라와는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땅이 아닌 이방 사람들의 땅과 더불어 싸우신다라기 보다는 원래 하나님을 모두 알 수 있도록 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은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반역하여 버렸기 때문에 마치 반란이 일어난 영토를 평정하셔서 다시 당신의 나라를 회복하시는 것 같은 구도속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해하라는 그런 선교적인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여기에 보면은 손바닥을 치면서 즐거워해야 될 이유가 있는데 ‘지존하신 하나님은 엄위하시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죠.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 하는 ‘엄위하다’라는 뜻은 결국 뭘 의미하나? 엄격, 엄격한 위엄을 뜻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지존하신 하나님으로서 모든 만민과 백성들에게 그런 분으로 인정을 받으시고 또 당신이 세우신 엄격한 도덕적인 통치를 따라서 모든 만민과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렇게 엄격한 도덕을 따라서, 도덕적 가치를 따라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의미는 거기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형벌이 있음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도덕적으로 통치 하신다’라고 하는 것은 아주 분명하게 거기에는 상과 벌이 있는 것이죠.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도덕적으로 통치하시는 방법이에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엄위하심 거스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벌을 받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 인생이 끝날 때에 그 최종적인 심판을 받게 하시고 영원한 심판에 처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보이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이 시인은 이렇게 엄위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거죠.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조건은 하나예요. 누구도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러나 충분히 하나님께 순종해서 마음속에 적어도 양심으로써 자기가 하나님의 이 공의를 거스르고 있다고 하는 가책이 없게 되는 것 잠자는 양심속에서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깨어 있는 양심속에서 자기가 알지 못하는 많은 죄악이 자신 속에 있지만 그러나 선명한 양심으로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으며 그러나 그 외에 보이지 않는 불순종이라도 드러날 경우에는 언제든지 그것을 꺽고 하나님 앞에 복종하고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잠재적인 마음이 그 안에 가득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여전히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선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지존하신 하나님의 엄위를 찬양하기에는 충분하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 하나님의 엄위를 찬송하게 되는 거예요. 주께서 엄위를 행하실 때에 자기가 그 긍휼이 여김을 받는 대상 속에 있다고 선언하기 전까지 결코 하나님 앞에 이 엄위하심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할 수가 없는 것이예요. 악을 행하고 하나님께 거역하는 인간들에게는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을 따라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다스리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높게 붙들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이 엄위하심이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는 것이죠. 왜?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 이유를, 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삶을 불의와 함께 기뻐하는 삶보다 더 좋아해야할 이유를 그 하나님의 엄위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악인에게 고통을 당하고 무도한 자들에게 박해를 당하고 원망과 원한과 많은 슬픔이 잇을 때에 하나님의 엄위하심은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는 위안이 되는 것이죠. 모순과 갈등 그리고 부단한 정의의 굽음 이 모든 것들은 순간에 지나가는 것이죠. 결국은 하나님이 당신의 엄위를 펼치시리라 하는 소망 그것 때문에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이죠. 그것이 신앙이예요.
또 하나의 찬송의 이유는 뭐냐하면은 만민과 열방을 우리의 발아래에 복종케 하셨다 이거죠. 그렇게 하나님의 엄위를 찬송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를 여기서 발견하는 거죠.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거스리며 살았을 때에는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이방의 나라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욕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고 그들을 섬겨야 했는데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기뻐할 수 있는 그러한 신앙을 가지고 살 때 하나님께서 자기들보다 훨씬 더 큰 나라를 그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자기들 보다 훨씬 더 큰 민족들을 발아래 복종시키셔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셨던 것이죠. 그러니까 그렇게 하신 이유는 단지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사랑하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열방의 삶을 바라보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엄위로 통치하신 덕분이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실때 너희가 의로워서 주는 것이 아니라 저 백성들의 죄악이 관연해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너희에게 그 나라를 붙이시는 것이다 그걸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어요. 그게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지만 부당하게 편들 것을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앞에 의롭게 살아라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마지막에 찬송의 제목은 하나님이 기업을 택하시는 거죠. 이 기업은 머냐하면 땅이예요. 땅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열방을 발아래 복종시키신 다음에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히 부쳐 먹고 살 수 있는 땅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거예요. 이건 가나안 정복을 염두에 두고 그려낸 묘사에요. 아직까지도 가나안 원주민이 살고 있는데 요단강 저편에서 제비뽑기를 하면서 하나님이 각 지파별로 땅을 나누어 주셨어요. 짤라 주셨어요. 그리고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그것을 가지고 이제 승리를 확신하고 가서 그들과 싸워서 그 땅을 정복해 나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원수를 심판하시는 그것은 그들의 땅과 유업을 이스라엘에 주시는 것을 의미했어요. 이것이 신앙이예요. 이것이 바로 믿음이고 이것이 바로 신앙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법과 그리고 당신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대우해 주셔서 원수는 강하나 주님이 붙드셔서 그 강한 원수를 이기게 하시고 유업을 주셔서 손바닥을 치며 즐거운 소리로 주님을 찬양하게 하시는 거예요. 결론은 그거예요.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들만이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들만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다. 고난을 당해도 기뻐할 수 있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인하여 찬양하게 될 것이다.